책 소개 | 피어나는 봄, 시작되는 하루
반짝이는 상상력으로 펼쳐 낸 3월 2일의 다섯 가지 모습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5권, 『3월 2일, 시작의 날』이 출간되었다. 『3월 2일, 시작의 날』은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시리즈 속 시리즈,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이다. 3월 2일이라는 하나의 시간적 배경에서 일어나는 신비롭고 혼란스러우며 가끔은 희한한, 하지만 언제나 다정한 짧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는 청소년과 성인에게 있어 ‘특히 의미 있는 날’, 혹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날’에 벌어지는 일들을 판타지, 스릴러, SF, 리얼리즘 등의 다채로운 장르로 경험해볼 수 있는 신선하고 색다른 기획이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든 독자가 공감하며 읽을 수 있도록 청소년문학 작가와 성인문학 작가가 한 주제에 함께 참여하는 구성 방식을 선택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시리즈에서 나온 앤솔러지들은 물론,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앤솔러지들과도 명확한 차별점을 두었다. 2024년 1년 동안 남은 세 계절, 여름, 가을, 겨울에 어울리는 세 권의 소설집이 더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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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 책의 첫 페이지를 펴듯
싹을 틔우는 새로운 시작의 목소리들
사람들은 3월을 종종 “두 번째 새해”라고 부른다. 물리적인 새해인 1월은 지났지만, 새로운 사회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완전히 초면인 이들과 부대끼게 되는 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3월 2일은 개학, 개강을 하는 날이다. 대학교 1학년이 새로운 학교에 첫발을 디디는 날이자 고3이 고등학교에서 새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해의 시작인 날. 19살 청소년들과 갓 성인이 된 20살들은 이런 특별한 날을 어떤 마음으로 보낼까?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앤솔러지 『3월 2일, 시작의 날』은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의 시작이자 ‘봄’을 담당하는 책이다. 호러, 미스터리, 청소년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범유진, 박에스더, 설재인과 청소년 소설가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작가, 이선주와 한정영이 참여했다.
첫 번째 단편인 범유진 작가의 「3월에 벚꽂색 입히기」는 대학교 입학식 날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악착같이 공부해 엄마의 소원이었던 선생님이 된 ‘영우’가 교생실습에서 겪는 사건을 그려 낸 리얼리즘 소설이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이들 모두가 서툴 수 있음을, 그리고 이 시작을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도록 서로 보완해 주는 것이 사회의 역할임을 우리가 잊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건, 나를 위한 테스트이기도 해.’ 영우는 현관으로 향하면서 식탁 위에 놓아둔 엄마의 휴대폰 속 영상을 재생했다. 신발을 신는 영우의 등 뒤에서 영상 속 엄마가 외쳤다. “딸! 엄마 진짜 소원은 딱 하나야. 네가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거. 알지?”
_본문 중
이선주 작가의 「여러분은 분명 실패할 겁니다」는 시작부터 실패한 탓에 청춘이라는 말에 유독 진저리를 치는 두 재수생과 한 대학생이 ‘성공했지만 실패한’ 괴짜 노교수의 말을 듣고 각자의 소중한 무언가를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조금씩 나아가는 성장 소설이다. 한 수상 소감에서 영감을 받은 이 이야기는 세속적인 실패만이 우리가 겪는 실패의 전부인지,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실패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을 십 년 후에도 이십 년 후에도 삼십 년 후에도 간직할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도 없이 살고 싶지 않았다.
_본문 중
깨지지 않는 우정부터 로맨스릴러까지, 수많은 장르를 넘나들며 빚어낸 다섯 가지 이야기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와 삶을 살아가는 누구나 가질 수 있을 만한 힘듦을 짚으면서 그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조용히 토닥여주는 두 단편에 이어, 세 번째 단편부터는 이 앤솔러지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장르소설이 가진 묘미들이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설재인 작가의 「메모리 카드」는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17살에 대학교에 입학한 미성년자 대학생 ‘아민’이 20살 성인이지만 고등학교 1학년인 ‘유정’의 과외를 맡으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저자는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이들을 쉽게 불쾌하게 여기고 배척하는 현실을 학교폭력과 유정의 머릿속에 있다는 메모리 카드의 존재를 통해 꼬집는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에 설레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날이 누군가에게는 열이 올라 뜨거우면서도 가슴속에 쌓인 시림을 풀어낼 수는 없는, 다른 의미로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수도 있다는 ‘시작’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가끔 공부가 아주 힘들 땐 과 건물 옥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면서 바지 주머니 속의 칩을 만지작거렸다. 봄은 하나도 시작하지 않은 것 같았다.
_본문 중
네 번째 단편인 박에스더 작가의 「언제나 평생에 한 번」은 새로운 몸에 영혼을 이식해 거의 영원히 살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발전한 미래에서도 처음 한 사랑은 잊을 수 없으며, 빛바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래’와 ‘그 애’의 끊임없는 이어짐으로 보여주는 SF-환상소설이다. 저자는 이러한 ‘첫-’의 감정과 기분을 1년마다, 즉 ‘언제나’ 돌아오지만 그날의 온기와 흐름은 ‘평생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는 3월 2일이라는 날에 빗대어 표현한다.
이곳은 여전히 옛날 방식이 그대로 적용되는 세계다. 보존 행성이니까. 아무리 바깥 우주가 빠르게 바뀌어도 여긴 아니니까. 그러니 예전 방식 그대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 안타까워하고 첫사랑에 아파하고 흔들리고 불안해할 수 있다.
_본문 중
앤솔러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한정영 작가의 「오늘부터 1일!」은 고등학생의 발랄한 목소리로 좋아하는 이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3월 2일, 시작의 날』에서 가장 부드럽게 느껴지는 단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주인공의 스토커가 등장한 후로 장르가 미스터리·스릴러로 바뀌고, 주인공과 주인공의 남자 친구가 겪은 놀랍고도 슬픈 과거가 풀리는 등 달달함에 빠져 있던 독자들이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반전이 있다.
너무 억울해. 얼마나 오래 이 순간을 기다렸는데. 이 년? 삼 년……? 아니, 내 가슴속의 시간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흘렀을 거야. 다시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했어. 친구들과 여행을 가지 말았어야 했어.
_본문 중
3월의 많은 날 중에서도 그 새로움에 첫발을 내딛는 3월 2일은 ‘시작의 시작’과 같은 날로, 누구에게나 그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이 책, 『3월 2일, 시작의 날』을 읽으며 땅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움트는 새싹 같은 마음을 얻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시작의 날을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곧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책을 읽으신 분들에게, 이 글이 봄 같은 만남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_범유진, 작가의 말 중 |
지은이 | 박에스더
기억에 남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미카엘라』로 비룡소 마시멜로 픽션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매소녀』 『정원의 계시록』 『벽사아씨전』 등 다양한 소설을 집필하였다.
범유진 창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우리만의 편의점 레시피』 『친구가 죽었습니다』 『I필터를 설치하시겠습니까?』 『내일의 소년 어제의 소녀』 등이 있다.
설재인 불행했던 시간 덕분에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힘든 경험이 생기면 언젠간 꼭 이걸 소설에 써먹고 말겠다며 칼을 간다. 그런 일이 꽤 많았던 건지, 장편 소설 열몇 권(어느 순간 세지 않기 시작했다)과 소설집 두 권, 에세이 한 권을 썼다.
이선주 『창밖의 아이들』로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는 청소년 소설 『맹탐정 고민 상담소』 1, 2, 3, 『열여섯의 타이밍』 『단지 커피일 뿐이야』 등이 있다.
한정영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연구교수를 지냈다. 『빨간 목도리 3호』 『나는 조선의 소년 비행사입니다』 『변신 인 서울』 『히라도의 눈물』 『아빠는 전쟁 중』과 같은 청소년 소설을 썼고, 『동화 작가를 위한 논픽션 글쓰기의 모든 것』 『어린이·청소년 소설 쓰기의 모든 것』과 같은 창작 이론서를 썼다. |
차례 | 범유진_3월에 벚꽃색 입히기
이선주_여러분은 분명 실패할 겁니다 설재인_메모리 카드 박에스더_언제나 평생에 한 번 한정영_오늘부터 1일! |
책 속에서 |
영우는 가게 옆의 좁은 골목 안쪽에 기대어 섰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아, 기분 좋아.” — 여보세요. 듣고 계십니까? 그제야 떠드는 소리에 묻혔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아, 예. 누구세요?” — 경찰입니다. 진영우 님 맞으시죠? 김영미 님이 어머니 맞으시고요. 단숨에 술이 깼다. 김영미. 엄마의 이름이다. _14쪽
“우리 애는 같은 반 친구가 수업 내용 때문에 상처받을까 봐 한 말이었다고 했어요. 그렇게 다정한 아이에게 모진 말을 하다니요? 당신 같은 사람이 교생이라니 믿을 수 없어요. 당신은 선생님이 될 자격이 없다고요!” 황태현의 어머니는 괴수였다. 사람의 말이 통하지 않고 입에서 불을 뿜는 괴수. 교장이 달려 나온 후에도 괴수는 불 뿜기를 멈추지 않았다. 영우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서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었다. 그러나 죄송하다고 말해야만 했다. 교장이 그것을 바랐으니까. _28쪽
“이 대학에 들어온 걸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을 겁니다.” 그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직 바람이 쌀쌀한데도 목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었다. 추위보다 패션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무신경한 사람 같았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은 꼭 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분명 실패할 겁니다.” 그의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농담인가? 실패할 거란 소리를 들으러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_52~53쪽
이 학교 학생은 떠나고, 이 학교 학생이 아닌 나와 보람만 학교에 남았다. “너는 왜 여기 오고 싶어?” 보람이 물었다. 내가 댄 이유는 뻔했다. 명문 대학교 학생증이 갖고 싶고, 이왕이면 취업 잘되는 과에 가고 싶다. “너는?” 보람은 답이 없었다. 나는 그 침묵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 가장 곤란했던 질문은 꿈이 뭐냐는 것이었다. 난 하고 싶은 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래도 되는 걸까? 이제 스무 살인데! 청춘인데! 솔직히 말하면, 무섭다. 나만 청춘이 없을까 봐. 나만 이대로 늙어 버릴까 봐. _69쪽
“쌤 집도 없고, 어머니도 편찮으시잖아요. 다른 알바 하기에는 아직 성인이 아니라 힘들고. 게다가 과외만큼 돈 많이 주는 알바도 없을 거고.” 아민은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가, 다시 한번 더 쥐었다 펴 보았다. 유정에게 제 사정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 전혀. 전혀 없었다. 다만 어쩌면 알아줬으면, 하고 바랐을지도 모른다. 굳이 유정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누구라도 자신의 힘든 상황을 알아줬으면,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지나치게 버거운 일들을 겪고 너무나 무거운 짐들을 지고 있단 사실을 알아줬으면……. _96쪽
“아직 안 피지 않았나? 벚꽃은 4월 초쯤 피는 거 아닌가?” “그럼 꽃이 피기 전에 비가 많이 오는 건 꽃 피는 거랑은 상관없는 거예요?” 아민은 알지 못했다. 한 번도 벚꽃 같은 것에 신경을 쓴 적이 없었으니까. 다만, 유정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 처음이어서, 그리고 그곳에 아민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서, 그래서 만약 꽃이 피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가혹하고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 정도는 누릴 수 있지 않은가. 쟤도, 나도. _114쪽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진짜 파도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차가운 파도 대신 나를 덮친 것은 아득한, 그리움. 뭐지. 이게 뭐더라? 그리워할 게 없는데도 그 기분만큼은 명확했다. 마음과 몸을 쓸고 나가는 아련한 파도의 끝자락. 셀 수 없이 많은 모래 알갱이와 조개껍질과 발자국 들을 전부 쓸고 지나가는 섬세한 움직임. 뭐더라, 이게. 이게…… 뭐더라. _134쪽
명령과 함께 전달받은 건, 기밀 사항이라는 것. 까마득하게 높으신 분들이 내린 명령이란 정말 잘 지켜야만 하는 거다. 하지만 지금 나는 열아홉이고, 아직 책임이라는 걸 모르는 미성년이고, 이제 막 첫사랑에 빠진 혼란스러운 수험생이다. 이 모든 걸 모으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대답한다. 그래서 했다. “오늘 네 몸과 영혼에 새겨진 판결 주문을 가져오라고 했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_159쪽
계단식 강의실은 뒤편의 창에서 햇볕이 쏟아지고 있어서 밝고 환했어. 학생들이 이삼십 명 정도 띄엄띄엄 앉아 있었지. 혹시 몰라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남자 친구는 아직 안 왔나 봐. 나는 출입문에서 멀리 떨어진 앞자리에 앉았어. 앞을 보니 대형 화이트보드와 그 위편의 둥그런 시계가 눈에 띄었어. 아홉 시 오십 분. 곧 남자 친구가 들어올 거라 생각하니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 _178쪽
그래, 스토커는 내가 여행을 다녀오고부터 나를 쫓아다니기 시작했어. 더 나쁜 건, 내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남자 친구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는 것. 집에 사정이 생겨서 급하게 군대에 가야 한댔어.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더라고. 이것도 언니한테 들은 이야기야. 나는 기다렸어. 내가 아니면 언니한테라도, 아니, 엄마에게라도 연락해 올지 모르니까. 하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어. 남자 친구도 나타나지 않았고. 꽤 긴 시간이 흘렀어. 그러다 비로소 남자 친구와의 약속을 떠올리고 그를 찾아 나선 거야. _19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