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등번호 9번에 윙포워드, 머루, 차콜그레이 그리고 인터섹스다.”
소수자에 대한 한국문학의 새로운 감수성, 김멜라 첫 소설집
김멜라 작가의 첫 소설집이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2014년 “풍부한 현실 감각과 강렬한 생명력의 매개자”(황광수 문학평론가)라는 평을 받고 등장한 작가는 연이어 문제작을 발표해오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표제작인 「적어도 두 번」은 “당대 사회의 가망과 한계를 동시에 건드리는, 그래서 그 사회에서 이미 굳어진 익숙한 가치판단과 해석의 방식을 물음에 부치는”(인아영 문학평론가, 문장 웹진 2018년 9월호) 문제작으로 호명되며 소외된 주체들을 적극적으로 문학사에 기입하려는 2020년대의 흐름에서 주요한 작품으로 논의되었다. 표제작 외에도 소설집에 수록된 총 일곱 편의 단편은 각양각색의 이채로운 매력을 품고 있는데, 소수자에 대한 한국문학의 새로운 감수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차라리 인간 따윈 그만두고 로봇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로봇은 남자 여자 구별 없이 그냥 로봇일 뿐이니까”(「호르몬을 춰줘요」)라는 소설 속 발언을 이어나가며 작가는 생물학적 신체성으로 젠더 범주를 재단하려는 시각을 전복한다. 이성애로 한정된 삶을 강요하고 그 외부를 허용치 않는 가족주의적 생애 모델을 인간의 숙명으로 설명하는 언어 또한 뒤집는데, 일상 곳곳에서 퀴어적 생활과 퀴어적 정동, 퀴어적 삶의 방식과 인식을 발견하고 창출하는 시도가 매혹적이다. 아울러, 김멜라 소설은 여성이 겪는 삶과 여성들의 연대를 때론 얼음 같은 문장으로 때론 유쾌하고 무구한 시선으로 들려준다. 우리가 어떤 목소리에만 익숙한지 되돌아보게 하고, 어떤 새로운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넌지시 일러준다. 여기 한국문학에 새롭고 낯선 목소리가, 김멜라의 소설이 지금 도착했다.
김멜라
저자 : 김멜라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호르몬을 춰줘요
적어도 두 번
물질계
모여 있는 녹색 점
에콜
스프링클러
홍이
해설 얼어붙은 결정론적 세계를 깨뜨리는 방정식_김건형(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세상의 어둠 속에서 미량의 빛을 포집하기 위해 확장되는 예민한 동공, 김멜라 첫 소설집
“나는 등번호 9번에 윙포워드, 머루, 차콜그레이 그리고 인터섹스다.”
소설가 구병모 추천!
작가가 제기하는 이의들?보편적 인식 앞에 송곳니를 드러내는 그 지독한 질문들 한가운데 던져진 당신은, 손쉬운 치유나 희망이나 화합이 보이지 않음에도 끝내 좌절에 매몰되지 않는 인물들에게 자기도 모르게 악수를 청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구병모(소설가)
자신의 정체성 숫자를 스스로 만들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설명하는 방정식. 운명이 아니라 여정으로서의 삶. 저들이 확정해둔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관계성과 수행성을 충실히 살아가면서 스스로가 되는 삶. 김멜라의 소설은 방정식의 답을 이렇게 아름답게 써냈다.
– 김건형(문학평론가)
“나는 등번호 9번에 윙포워드, 머루, 차콜그레이 그리고 인터섹스다.”
소수자에 대한 한국문학의 새로운 감수성, 김멜라 첫 소설집
김멜라 작가의 첫 소설집이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2014년 “풍부한 현실 감각과 강렬한 생명력의 매개자”(황광수 문학평론가)라는 평을 받고 등장한 작가는 연이어 문제작을 발표해오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표제작인 『적어도 두 번』은 “당대 사회의 가망과 한계를 동시에 건드리는, 그래서 그 사회에서 이미 굳어진 익숙한 가치판단과 해석의 방식을 물음에 부치는”(인아영 문학평론가, 문장 웹진 2018년 9월호) 문제작으로 호명되며 소외된 주체들을 적극적으로 문학사에 기입하려는 2020년대의 흐름에서 주요한 작품으로 논의되었다. 표제작 외에도 소설집에 수록된 총 일곱 편의 단편은 각양각색의 이채로운 매력을 품고 있는데, 소수자에 대한 한국문학의 새로운 감수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차라리 인간 따윈 그만두고 로봇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로봇은 남자 여자 구별 없이 그냥 로봇일 뿐이니까”(『호르몬을 춰줘요』)라는 소설 속 발언을 이어나가며 작가는 생물학적 신체성으로 젠더 범주를 재단하려는 시각을 전복한다. 이성애로 한정된 삶을 강요하고 그 외부를 허용치 않는 가족주의적 생애 모델을 인간의 숙명으로 설명하는 언어 또한 뒤집는데, 일상 곳곳에서 퀴어적 생활과 퀴어적 정동, 퀴어적 삶의 방식과 인식을 발견하고 창출하는 시도가 매혹적이다. 아울러, 김멜라 소설은 여성이 겪는 삶과 여성들의 연대를 때론 얼음 같은 문장으로 때론 유쾌하고 무구한 시선으로 들려준다. 우리가 어떤 목소리에만 익숙한지 되돌아보게 하고, 어떤 새로운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넌지시 일러준다. 여기 한국문학에 새롭고 낯선 목소리가, 김멜라의 소설이 지금 도착했다.
“차라리 인간 따윈 그만두고 로봇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로봇은 남자 여자 구별 없이 그냥 로봇일 뿐이니까.”
소설집을 여는 『호르몬을 춰줘요』부터 작가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여온다. 이 소설은 인터섹스인 도림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태어날 때부터 의사나 부모의 판정에 의해 특정 성별로 ‘지정’되어 등록되며 그렇게 신체를 ‘개조’당하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낙인찍히는 인터섹스. 사춘기가 되면서 튀어나온 ‘버섯’ 때문에 고민에 빠져 있는 도림 역시 그 삶 속에서 이제 남자가 될지 여자가 될지 결정해야 한다. 이분법적 성 규범이 그 자체로 계급이자 시민권으로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림은 그 누구보다 씩씩하다. 축구부에서 정체성 숫자 9를 등번호로 정한 도림에게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보다는 정강이뼈의 단단함과 왼발을 쓸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이 누구인지 대답해줄 사람들을 찾아 이태원으로 모험을 떠나며 소설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아마 도림에게 가장 적절한 말을 해줄 사람은 ‘레사’일 것이다. 소설 『물질계』에서 ‘나’는 논문을 끝내지 못한 연구실 조교다. 집안을 ‘말아먹’을 팔자를 타고났다는 무당의 저주를 피해 과학의 물리법칙 세계로 도망쳤지만, 그럼에도 “대학원에서 젊음까지 말아먹”었다. 여성 혐오적인 가십과 노동력 착취가 일상인, 여성 학자들의 미래를 유리천장으로 제약하는 곳에서 버티는 삶.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레즈비언 사주팔자’라고 쓰인 전단지를 보고 ‘레사’를 만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제 어디로 가요?”
나는 레사의 우산 아래 서서 물었다.
“불의 여자랑 물의 여자가 만났으니 뭘 해야 할까요?”(「물질계」, 117쪽)
『적어도 두 번』은 레즈비언 여성인 ‘나’가 시각장애인 여성 청소년인 이테에 대한 성적 접촉을 ‘변명’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문제작이다. 특히나 고백의 청자로 중년 남성이자 지식인 교수인 유파고를 앉혀두는 구도는 범상치 않은데, 이는 대타적이고 메타적인 기획이다. 윤리, 도덕, 정치적 올바름, 보편의 문제, 인간의 이기심, 위선 폭로를 다룬 지금까지의 한국소설을 아예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독해하도록 하는 논쟁적인 작품이다.
“저는 무엇이 잘났다고 이테를 동정했을까요. 데드존을 향해 달리는 한낱 인간 주제에 어떻게 서서 자는 나무를 불쌍히 여길 수 있을까요.”(「적어도 두 번」, 84쪽)
얼음의 문장과 그로테스크의 칼날,
세상의 어둠 속에서 미량의 빛을 포집하기 위해 확장되는 예민한 동공
김멜라 소설은 서늘하고 매혹적인 이미지들의 연속이다. 구병모 소설가가 추천사에서 밝혔듯, 보편적 인식 앞에서 ‘송곳니를 드러내며’ 지독한 질문을 던지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그 소름 끼치도록 기이한 이미지와 불안과 균열의 기미로 술렁이는 서사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모여 있는 녹색 점』에서 해연은 친구인 미아가 비행기 사고로 베네수엘라에서 실종된 후부터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남편 강투는 함께 고통을 겪으면서도 미아의 죽음으로부터 헤어 나와 일상을 회복하고자 하지만, 해연에게는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 한편, 예전에 강투는 미아에게 이상하게 불편한 감정을 느껴왔었다. 강투가 보기에 지나치게 기복이 심한 성격의 미아는 해연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를 감지했었다.
“여자들은 서로의 무릎이나 뺨에 자연스럽게 손을 대며 얘기했다. 다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는 창을 두들기는 빗소리와 함께 공간을 떠도는 여자들의 속삭임에 파묻혔다. 그들이 내뿜는 알 수 없는 분위기에 그는 완전히 넋을 놓았다. 여성과 여성은, 그들이 나누는 무언가는 그에게 신비로운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그 기억을 소중히 간직했고 해연과 미아 사이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다.”(『모여 있는 녹색 점』, 151쪽)
『홍이』는 ‘홍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동물들이 차례차례 잡아먹히는 과정을 도입부에 설화처럼 서술하면서 죽음과 폭력의 패턴을 그려낸다. 소설 속 주인공인 중경은 경찰인데, 그녀는 남성적인 집단에서 일하며 온갖 불쾌감을 감내해야 했다. 식사 자리에서 중경이 먹던 백숙을 직접 가리키며 닭에게는 ‘좆이 없다’는 것이 개와의 차이점이라고 말하는 선배들의 무례를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중경의 사촌동생인 홍이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홍이는 잔인하게 죽인 동물 사체를 전시하는 범죄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기원에는 개 농장에서 자신이 도살해야 하는 개들의 짖는 소리로 고통받으면서도 술에 의지해 버티던 삼촌이 있다. 작가는 성적 폭력과 밀접한 육식 문화, 그리고 윤리적 폭력과 밀접한 재현 문화를 젠더적 측면에서 조명한다.
김멜라 소설은 예민한 동공을 지녔다. 그 예민함으로 각각의 단편은 빛을 발한다. 소수성에 대해 날카로운 감수성을 드러내며 작가는 보편타당한 것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칼날을 들이댄다. 가장 이채롭고 가장 파격적이고 가장 독보적이고 문제적인 그러므로 가장 퀴어적인 소설들을 써냈다. 그리고 사회가 옭아맨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 관계성과 수행성에 충실히 살아가는 삶에 대한 소중한 인식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작가의 말에서 김멜라는 이 소설들을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한번 설명해보려고 한 시도들”이라고 밝혔지만 그 알 수 없는 것들로 우리가 안다고 생각해왔던 문학에 물음을 부치며 온전히 새로운 공간 위에 서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