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승병의 총수가 되어 평양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운 ‘서산대사’의 생애를 그린 최명익 장편 역사소설. 평양 출신의 작가의 작품으로, 해방을 전후로 한 문학적 변모 과정에서 한국 근대문학의 특수성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 준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작품은 민중의 자발성이 자유롭게 표현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동시대성을 포기하고 역사소설로의 전환을 결심한 시점에서 집필되었다.
이 책은 유ㆍ불ㆍ도 3교 통합설의 기반을 마련하고 교종을 선종에 포섭한 승려이자, 조선의 백성을 위해 왜적과 맞서 싸운 서산대사의 영웅적 면모를 조명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 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조선 민중의 투쟁과,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한 승병과 의병들의 평양성 해방 전투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 자모 역사소설 시리즈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쓰고, 북한에서 출간된 작품들을 소개한 시리즈.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와 <서산대사>를 시작으로, 북한 측과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출판권 양도 계약을 체결한 작품들을 계속 펴낼 예정이다.
최명익
최명익 1902년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 고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부친이 설립한 사립학교를 다녔으며,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던 당시 3?운동에 참여했고 이로 인해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학업을 중단했다. 1926년 양은경과 결혼하고 평양에서 살면서 유리 공장을 경영하였다. 세 자식 중 두 딸이 병으로 죽은 이후 문학에 전념하게 되었다. 1928년 홍종인과 함께 순문예 동인지 『백치』를 펴내고 ‘유방(柳妨)’이란 필명으로 습작 소설을 쓰다가, 1936년 5월 『조광』에 「비 오는 길」을 발표하여 등단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37년에 발행된 동인지 『단층』과 교류하며 활동하였으며, 식민지 시대 말기에는 평안남도 외가에 은거하였다. 해방 후 9월에 평양예술문화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1946년 3월에는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에 가담하여 중앙상임위원, 평남도위원장을 맡았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주로 역사물의 창작에 전념하면서 임진왜란을 그린 『서산대사』(1956)를 발표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는 평양문학대학에 재직하면서, 1957년에는 항일 무장투쟁 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집필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그의 몰년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960년대 말이나 1970년대 정도로 추측된다.
1. 이야기의 시초
2. 석장군 앞의 전주복이와 중 법근이
3. 노루 꼬리가 ‘있다’, ‘없다’
4. 평양 거리의 생불
5. 두엄 냄새 구수한 소발통
6. 함구문 밖의 고충경이네 집을 찾아서
7. 승검술 법근이의 검
8. 인민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
9. 대동관의 왕과 조정 대신들
10. 장사 임욱경과 평양 사람들
11. 팔씨름
12. 서산대사
13. 왕 선조와 서산대사
14. 대동강 상의 담판 결렬
15. 일본 사무라이의 원흉 풍산수길의 몇 가지 문건
16. 행궁 앞의 평양 인민들
17. 동대원의 일본군
18. 대동강 싸움에 나선 고충경
19. 차돌이와 보패
20. 영명사에서
21. 을밀대 아래 집결한 우리 군사들
22. 동대원의 전투
23. 서산이 울다
24. 평양성을 떠나는 사람들
25. 잡약산 마을의 서산
26. 사창의 쌀이 터졌다
27. 평양성 내의 간장 탕수
28. 사창고 앞에서
29. 서산대사의 편지
30. 불씨는 살아 있다
31. 황 서방의 함지 이야기
32. 마을 사람들의 모임
33. 전주복이네 부자의 시
34. 따라온 편석대사
35. 왜적이야!
36. 잡약산 마을의 첫 싸움
37. 복수의 칼을!
38. 리순신 장군 앞에 제압된 소서행장
39. 소서행장과 가등청정
40. 파탄된 일본군의 작전 계획
41. 이 나라는 조선 사람의 나라
42. 서산대사와 사명당
43. 달밤의 초금 소리
44. 앞으로 백성들은 이전 백성이 아닐 게다
45. 보통벌의 추수 준비
46. 전촌 장거리
47. 소금
48. 한 하늘을 이고 같이 살 수 없는자
49. 군량이 문제
50. 우리 농민들
51. 한밤중의 보통벌 추수
52. 한밤중의 보통벌 전투
53. 우리 닭과 비둘기도 싸웠다
54. 이 아침에 조국의 산머리에서 뜨는 해
55. 파멸 전야의 일본군
56. 백절불굴하는 우리 사람들
57. 보패와 계월향
58. 김응서와 계월향
59. 오늘 일은 틀리는가!
60. 적장 소서비의 목이 떨어졌다
61. 적아 간의 정세 개관
62. 서관 대로상에서
63. 명나라 후원군이 왔다
64. 리여송과 서산대사
65. 평양성 해방
어휘 풀이
정식 계약으로 출간되는 첫 북한 소설
‘자모 역사소설’ 시리즈는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북한에서 출간된 것을 모았다. 이 시리즈를 구성하는 역사소설은 2006년 1월 16일 북한 측과의 저작권 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출판권 양도 계약을 체결하면서 발표한 작품들과 검토 중인 작품들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소개된 북한의 저작물은 정식으로 출판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이거나 중국을 통한 3자 계약 형태였다. 그러나 자음과모음에서 출판된 이 작품들은 출판하기에 앞서 출판권을 미리 양도받은 첫 케이스 중 첫 출판물에 속한다는 데 의의가 크다.
‘자모 역사소설’ 시리즈를 구성하는 작품들은 임진왜란 때 73세의 노구로 평양성을 수복해낸 휴정 서산대사의 활동을 형상화한 최명익의 《서산대사》, 풍진 시대를 건져낸 선각자이며 동북아 평화와 안녕을 도모한 민족주의자 안중근을 그린 림종상 각색의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국내 순기술의 무기를 발명한 최무선의 활약항을 그린 강학태의 《최무선》, 고구려 건국의 시조인 고주몽의 일대기를 형상화한 소설로 2005년 평양출판사에서 발행한 김호성의 《주몽》, 17세기 일본에 맞서 독도를 지킨 울릉도 거주 조선 수군 안용복의 일대기를 형상화한 리성덕의 《울릉도》 등이다.
또한 자음과모음에서는 ‘자모 역사소설’ 시리즈 외에도 북한의 저작물을 계속해 출간할 예정으로, 《백두산 옛전설》, 《묘향산 전설》, 《금강산 전설》, 《칠보산 전설》, 《구월산 전설》 등의 도서들이 북한 쪽과의 정식 계약이 진행되고 있으며 성사 후 ‘어린이를 위한 북한의 전설 시리즈(가칭)’로 묶일 것이다.
연구자를 위한 북한 문학이 아니라 누구나 읽고 감동할 소설들
북한 소설이라고 하면 월북 작가들을 떠올리고 이어서 문예사조의 하나인 카프 문학의 작품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카프 문학의 작품들 중 홍명희의 《임꺽정》과 이기영의 《고향》, 강경애의 《인간문제》 정도가 독서가들의 입에 오르내릴 뿐, 1900년대에 이루어졌던 해금 후에도 그다지 대중화되지 못하고 연구자들 위주로 그 문학성만 평가되어 왔다. ‘자모 역사소설’이 그런 카프 문학과 달리 대중소설을 지향하는 것은, 이 시리즈의 소설들에서 카프 문학이 추구했던 계급성을 담보한 정치투쟁이라는 목적성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거부감 없이 읽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역사적 인물들과 그들의 활약은 가공된 요소와 유기적 관계 속에 충분히 개연성을 획득하고 있다. 1980년대 ‘북한 최고의 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의 작가로 소개되었던 박태원이 한때 역사를 위조하라는 북한 정부의 명을 거역하였다는 죄과로 함흥 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되어 작품 활동을 금지 당했다는 말도 있으나, ‘자모 역사소설’ 시리즈의 소설들에서 위조된 역사란 없으며 단지 주인공의 주변 인물이 국사를 이끌던 정승이나 인텔리이기보다 민중이라는 점에서 조금 달라 보일 뿐이다.
이번에 출간된 최명익의 《서산대사》에서 특히 그런 부분이 두드러지는데, 이름 한 자도 따로 내뱉지 못한 채 낫을 들고라도 왜적과 싸우는 민중의 모습을 ‘만일 이때가 낮이였다면 처처에서 벌어진 격투 중에서 우리는 가지가지의 장렬한 장면들과 용감한 사람들의 행동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용감한 행동들을 다른 사람이 볼 기회는 없었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나 ‘우리 닭과 비둘기도 싸웠다’고 제목을 단 53번째 이야기, 74번째 이야기 ‘서산이 울다’에서 아수라가 되어버린 평양성을 산에서 내려다보며 우는 서산의 통곡 장면에서처럼 그것이 각기 따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가슴 뭉클한 감동을 불러일으켜 북한 문학이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문화적 격차 따윈 생각할 겨를도 없게 만든다.
단지 북한과 우리가 같은 한글 자모를 사용하지만 그것을 읽는 것부터 조금씩 차이가 있고 맞춤법에서 몇 가지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일러두기’에서 그런 부분을 밝혀 두었다. 또한 하나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리 식으로 옮기는 것은 부적합하다는 것과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면 북한의 입맛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띄어쓰기를 우리의 실정에 맞춘 것 외에 원본를 훼손하지 않았는데, 북한말 또는 북한말이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은 ‘용어 풀이’를 두어 정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