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오래된 흑백사진을 더듬어 30여년전 예천읍 장터로 떠나는 추억여행이다.이제 막 돌을 앞둔 아들을 업고 작은 목소리로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르는 어머니,편물점에서 일하던 봉자누나가 극장에 다녀왔다가 혼나는 대목 등 가난했지만 마음은 넉넉했던 지난날에 대한 향수가 짙게 묻어 나는 작품.
안도현
원래는 돋보이는 민중시인이었지만, 이제는 잔잔한 서정시인이자 `어른들을 위한 동화` 작가로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맑은 물에 물감을 개어 수채화를 그리면서 화가를 꿈꿨다. 집 안에 책이라곤 아버지가 읽다 만 『재클린과 오나시스』가 전부였으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탐독한 책이라곤 만화가게에서 본 무협지와 『철인28호』, 그리고 몇 권의 소설뿐이었다.
그러나 고교 입학을 앞두고 놀러 간 친구집에 가지런히 꽂힌 삼중당 문고를 접하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 웬만한 한국 단편을 모조리 섭렵하면서 안도현은 문학소년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고등학교 문단을 휩쓸며 `고교 최고의 시인`으로 군림하다 이리 원광대학에 문예장학생으로 진학했다. 1980년의 일이다.
그 해 5월, 계엄령이 떨어지고 광주에서 흉흉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수업을 안 하니 신난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착검한 채 학교에 진주해 있던 계엄군에게 걸렸다. `때가 어느 때인데 술이나 쳐 마시고 있으냐`는 소리와 함께, 교문 앞에 꿇어 앉혀진 채 개 패듯 맞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맞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학이라는 것이 골방에 앉아 혼자 끙끙댄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 이 곳`에서의 시를 쓰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런저런 곡절 끝에 태어난 그의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t은 80년대 민중시의 걸작편으로 꼽힌다.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꿈꾸던 그의 문제의식은 졸업 후 `인간교육`을 내건 전교조 활동으로, 그리고 해직으로 이어졌다. `전투경찰에 둘러싸여 투재앵 투쟁 목청 높이던 거리의 교사`가 되어, 학교 현장의 모순과 부딪히며 쓴 이 시기의 시편들 역시 민중시·민족시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해직 교사 시절을 마감하고 돌아간 교단은 전북 장수군 산서면 산서고등학교. 일종의 유배지처럼 산골로 배치 받았던 것이지만, 그곳에서 시인은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새롭게 깨우치는 체험을 했다. 산과 들, 개울과 나무, 잠자리와 버들치, 애기똥풀 따위와 만나고, 호박씨를 심은 후 몇 날 며칠씩 싹이 돋기를 기다리던 그 시절에 그는 마침내 `내가 세계의 중심임을` 깨닫는다.
더불어 그의 문학세계도 새로와졌다. 서정시인으로의 변신과 함께,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같은 책들에서 힌트를 얻어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썼다. 독자들은 그의 새로운 작품들을 사랑해 주었고, 안도현은 `연어 판 돈`(인세)으로 여유를 가지면서 정든 교단을 떠나 전업작가의 길로 나섰다.
그의 글에는 맑고 은은한 울림과 더불어 인생과 세상을 통찰하는 날카로우면서도 참으로 여유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낮은 목소리로 세상의 아름다움과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진실을 조근조근 얘기해 줄 때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안도현에 푹 빠진 독자라면, 어제의 안도현에도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 어떠한 정신적 고투의 과정을 거쳐 오늘의 넉넉한 글들을 쓰게 되었는지 이해한다면, 안도현의 글발들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서문
1. 추억이란 존재의 뿌리다
2. 국방색 바지에 대하여
3. 가장 오래된 술
4. 나를 키운 건 골목길이었다.
5. 플라스틱 시대
6. 내 첫사랑 봉자 누나
7. 가족 사진
8. 유선양복점을 아십니까
9. 달의 몰락
10. 잃어버린 카메라
11. 가족 사진
12. 사진첩을 덮으며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