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복수를 상상하다”
치밀하진 않지만 치열한 일상의 복수극
배상민의 『복수를 합시다』가 자음과모음 새소설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조공원정대』, 『콩고, 콩고』, 『페이크 픽션』 등을 통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들을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방식으로 펼쳐왔다. 특히 소설 속 인물들이 문제적이면서도, 가장 보통의 우리의 모습과 밀접해 있다는 점에서 일상의 고투와 핍진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복수를 합시다』 역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보통의 복수’를 보여주고 있다. ‘직장상사의 자동차 브레이크가 고장 나는 상상.’ ‘나를 배신한 애인이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상상.’ 실제로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존재는 늘 곁에 있으며-가족이나 연인 또는 친구나 직장상사-그러므로 복수의 대상도 아주 가까이에 있을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나’ 또한 일상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런 항시적이고 일상적인 억압에 고통받아왔던 ‘나’는 마침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법적인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치밀하진 않지만 치열한 일상의 복수극을 펼치는 주인공의 분투를 통해, 우리는 쓰디쓴 농담처럼 공허하지만 통쾌한 복수의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배상민
1976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배상민은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소설 「어느 추운 날의 스쿠터」가 2012년 ‘젊은 소설’에 선정되었으며, 단편집「조공원정대」와 장편소설『콩고콩고』,『페이크픽션』등이 있다.
사연과 고통
르상티망
복수와 실제
가상의 복수
복수의 결과
분노의 필요성
불쑥 고개를 내미는 실재
진짜의 맛
실재와의 대면
에필로그
작가의 말
“가장 보통의 복수를 상상하다”
치밀하진 않지만 치열한 일상의 복수극
『조공원정대』, 『페이크 픽션』 배상민 신작 장편소설
“가장 보통의 복수를 상상하다”
치밀하진 않지만 치열한 일상의 복수극
배상민의 『복수를 합시다』가 자음과모음 새소설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조공원정대』, 『콩고, 콩고』, 『페이크 픽션』 등을 통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들을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방식으로 펼쳐왔다. 특히 소설 속 인물들이 문제적이면서도, 가장 보통의 우리의 모습과 밀접해 있다는 점에서 일상의 고투와 핍진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복수를 합시다』 역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보통의 복수’를 보여주고 있다. ‘직장상사의 자동차 브레이크가 고장 나는 상상.’ ‘나를 배신한 애인이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상상.’ 실제로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존재는 늘 곁에 있으며―가족이나 연인 또는 친구나 직장상사―그러므로 복수의 대상도 아주 가까이에 있을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나’ 또한 일상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런 항시적이고 일상적인 억압에 고통받아왔던 ‘나’는 마침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법적인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치밀하진 않지만 치열한 일상의 복수극을 펼치는 주인공의 분투를 통해, 우리는 쓰디쓴 농담처럼 공허하지만 통쾌한 복수의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쓰디쓴 농담처럼 공허하지만
통쾌한 복수의 맛
포털 사이트의 사연 게시판을 관리하는 ‘나’는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매일 가상의 사연을 창작해 올린다. 하지만 치정극에 가까운 자극적인 사연만으로는 부족하다. 치정극에는 언제나 복수가 뒤따르는 것처럼, 복수하는 후기를 올려야 수많은 조회수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실명조차 확인할 수 없는 ‘가상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사실’을 바라고, ‘진짜 고통’에 공감하길 원하며, 그들을 괴롭힌 사람들에 대한 ‘진짜 복수’를 바란다. 그렇게 ‘나’는 가상의 고통을 만들고, 가상의 복수를 하는 일을 매일 반복해나간다.
어쩌면 주작질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모든 것이 ‘진짜’여야 한다는 그들의 믿음을 배신했기 때문이 아닐까. 같이 분노해주었던 고통이,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복수가, 내가 받았던 위로가 모두 거짓이라면 게시판 사연에 쏟아부었던 나의 모든 감정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공허한 분노와 공허한 통쾌함만큼 공허한 게 또 어디 있을까.(20쪽)
하지만 ‘가상의 고통’은 ‘현실의 고통’이 가진 실재감을 이기지 못하는 법. 침대를 배달하기 위해 이사한 집을 방문한 가구배달원이 고등학교 3년 내내 자신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놈’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방을 가득 채우고 침대의 실물감만큼이나 생생한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나’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합법적인 방법으로 ‘놈’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지만, 결국 다시 무기력했던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모멸감을 느낄 뿐이다. 그러던 중 ‘나’는 함께 복수 계획을 세우는 가상의 모임으로부터 초대를 받는다. “뭔가를 상상해본다는 건 불법이 아니니까요. 그게 끔찍한 복수라고 해도 말이죠.”(67쪽)
만약 복수를 결심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용서를 할지 말지 택할 권리……
가상의 복수 모임에서 ‘놈’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나’는 또 다른 복수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회사가 웹하드에 불법 동영상을 올려 돈을 벌던 시절, 몰카 사건의 피해자였던 그녀가 ‘나’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저는 당신 회사에 복수하고 싶어요. 제 인생을 망쳐버린 곳이요.”(178쪽) 모니터 속에서 현실로 걸어 나온 듯한 실재감에 압도당한 ‘나’에게 그녀는 자신의 복수를 도와달라고 말한다…….
“살기 위해서는 돈만 필요한 게 아니었어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희망도 필요했죠. (……) 첫 번째 꿈은 영상을 팔아버린 남자친구를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겠다는 것, 두 번째 꿈은 당신 회사를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겠다는 것.”(183쪽)
이처럼 『복수를 합시다』는 개인들이 꿈꾸는 일상의 복수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단 한 번도 복수심을 품지 않고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나 불합리한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분노라는 감정이 존재하고, 복수라는 행동에 열광하는 마음 역시 존재한다면, 우리의 삶에 그것이 필요하다는 반증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에게 굴욕을 준 직장상사나 상처를 준 친구나 애인에 대한 복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자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의 태도를 전환하는 기회가 되어주기도 한다. 복수를 결심할 만큼 분노하지 않는다면 과연 변화하려는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또한 복수를 결심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용서를 할지 말지 택할 권리……. 그러므로 작가는 『복수를 합시다』를 통해 이런 말을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차하면, 복수를 합시다.”
■ 작가의 말
밤새 울분을 터뜨리다 당연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는데, 우리를 억압하는 대상은 시어머니, 시아버지, 장모님, 장인어른, 남편, 부모, 연인, 직장상사, 학교 동창 등 모두 우리 곁에 있는 존재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복수의 대상은 뜻밖에 가까운 곳에 있으며, 의외로 복수는 마음만 먹으면 시도해볼 수 있는 만만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 우리에게 분노라는 감정이 존재하고, 복수라는 행동에 열광하려는 마음 역시 존재한다면, 우리의 삶에 그것들이 필요하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