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가 신희의 첫번째 장편소설 『해머링 맨』. 친구인 세 남자(인디고, 그린, 블루)가 하루 반나절 동안 겪게 되는 낯설고 기이한 경험들을 통해 현대사회 속 인간의 존재와 허무를 낱낱이 드러낸 소설이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어느 날, 인디고는 그린의 집에서 열릴 조촐한 랍스터 파티를 기다리며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계속해나간다. 하지만 새로 출시된 냉장고의 소비자 반응을 알아보고 회사로 돌아가던 중, 갑작스러운 피로감을 느낀다. 늘 근사하게만 보였던 도시의 풍경들조차 아무런 생명도 깃들지 않은 사막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차들로 붐비는 도로 한가운데서 푸르른 빌딩 옆에 서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는 타이탄처럼 커다란 거인을 목격하게 된다.
신 희
저자 : 신희
저자 신희는 2010년 계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에 단편 「제(祭)」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3 젊은 소설에 단편 「아직 오지 않은 거리」가 선정되었다.
인디고, 몸을 누이고 울다
그린, 개와 함께 잠들다
블루, 길 위에서 아내의 이름을 부르다
작가의 말
“낯설고 이상한 미시감에 빠져들다……”
해머링 맨의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면
매혹적이면서도 섬뜩한 환상이 펼쳐진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어느 날, 인디고는 그린의 집에서 열릴 조촐한 랍스터 파티를 기다리며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계속해나간다. 하지만 새로 출시된 냉장고의 소비자 반응을 알아보고 회사로 돌아가던 중, 갑작스러운 피로감을 느낀다. 늘 근사하게만 보였던 도시의 풍경들조차 아무런 생명도 깃들지 않은 사막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차들로 붐비는 도로 한가운데서 푸르른 빌딩 옆에 서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는 타이탄처럼 커다란 거인을 목격하게 된다.
거인은 아직도 손에 활을 들고 있었다.
흐린 하늘 저편을 향해 활을 천천히 올리고 또 올렸다.
(……) 음악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를 그 거인 연주자는,
이 거리에서 몹시 고독해 보였다. (12쪽)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거인이 사실은 쉼 없이 망치질을 반복하고 있는 대형 조형물(해머링 맨)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인디고는 이상한 미시감에 빠져들게 된다. 항상 드나들었던 회전문 안에 갇히는가 하면, 건물의 비상계단이 드넓게 펼쳐진 들판으로 뒤바뀌는 환상적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가까스로 도착한 사무실에서 인디고는 머리와 양팔이 떨어져 나간 채 자신을 비웃는 듯한 동료들의 기이한 모습과 마주한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환상적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출구 없는 잿빛 도시 안에 갇힌 세 사람
인디고와 마찬가지로 그린, 블루도 현실 사이로 수시로 침범하는 낯선 경험들을 하게 된다. 그린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레스토랑에서 “나는 악의에 차 있고 완고하고 인간을 혐오하는 악종 인간이 아니란 말이에요. 난, 억울해요”(86쪽) 하고 울부짖는 베토벤과 만나게 된다. 블루 역시 랍스터 파티에 가지고 갈 와인을 고르기 위해 와인 가게에 들렀다가 유리창의 사각 프레임이 엔젤피쉬와 키싱구라미들이 헤엄쳐 다니는 관상어들의 세상으로 뒤바뀌는 환상을 경험한다.
장면이란 게 정지되는 법은 없었다. 거리에 사람들이 자꾸 흘러가듯이, 장면도 자꾸만 이동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되돌아갈 집이 있었고, 장면도 어디론가 도착하기 위해 자꾸만 몸을 뒤트는 것 같았다. (165쪽)
이처럼 『해머링 맨』에서 현실은 끊임없이 몸을 바꾸며 환상에서 또 다른 환상으로 이어진다. 그 낯선 장면들 속에서 인디고, 그린, 블루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욕망 또는 지독한 외로움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내면의 극심한 변화들이 현실의 삶마저 일그러뜨리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예측 불가능한 환상들은 랍스터 파티를 유예시킨 채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해머링 맨』이 자아내는 환상적 분위기가 우리에게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슬픔이나 고독 따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지 못한다. 이 소설 속 인물들 또한 치열한 경쟁사회에 내몰린, 그래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대도시는 문명의 공간이면서 생명이 깃들기 어려운 사막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나는 생명의 빛깔인 그린, 블루, 인디고를 떠올렸다. 그리고 만남이 약속된 그 하루의 반나절만큼이라도 그들의 억눌린 욕망이 굴절된 방식으로나마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 인물들 역시 근본적으로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