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국문과와 프랑스 엑상프로방스대를 졸업했다. 1988년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을 다룬 중편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문학과 사회》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 『회색 눈사람』 『속삭임, 속삭임』 『열세 가지 이름의 꽃향기』 『첫 만남』, 장편소설 『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 『겨울, 아틀란티스』 『마네킹』 『오릭맨스티』, 중편 『파랑대문』, 수필집 『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을 출간했다.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197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2008년 「정류장」으로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2010년 「새벽의 나나」로 제18회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으로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자정의 픽션』,『끄라비』이 있다.|||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2009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위저드 베이커리』는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문장력과 매끄러운 전개, 흡인력 있는 줄거리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기존 청소년소설의 틀을 뒤흔드는, 현실로부터의 과감한 탈주를 선보이는 작품이었다. 청소년 소설=성장소설 이라는 도식을 흔들며, 빼어난 서사적 역량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적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는 평을 받았다. 작품을 지배하는 섬뜩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도 이야기가 무겁게 얼어붙지 않도록 탄력을 불어넣는 작가의 촘촘한 문장 역시 청소년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집에서 뛰쳐나온 소년이 우연히 몸을 피한 빵집에서 겪게 되는 온갖 사건들은 판타지인 동시에 절망적인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며, 일반문학과 장르소설의 묘미를 적확한 비율로 반죽한 이 작품만의 특별한 미감은 색다른 이야기에 목말랐던 독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했다. 또한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마법사의 눈에 비친 현대인의 비틀린 욕망은 무시무시하고,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헨젤과 그레텔』 같은 ‘잔혹동화’의 바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이들의 문법을 절묘하게 전복시킨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어 화제가 되었다.
구병모 작가는 한 인터넷 웹진에서 ‘곤충도감’ 이라는 작품을 연재했다. 이름을 가리고 봐도 구병모 작가의 작품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용서에 대한 것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2015년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로 오늘의작가상과 황순원신진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단 하나의 문장』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파과』, 『아가미』, 『한 스푼의 시간』이 있다. |||박범신, 공지영, 황현산 등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된 작가. 1981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이사를 자주 다녀서 어딜 가도 내 집, 내 고향 같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소설은 쓰고 싶었다. 낮엔 일하고 밤엔 글 쓰다가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등단 2년 후부터 낮엔 글 쓰고 밤엔 푹 잤다. 다음 생엔 적은 돈으로도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 혹은 행성에 태어나고 싶다. 은근히 열정적으로, 다음 생의 우주를 치밀하게 준비 중이다.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비상문』, 『이제야 언니에게』, 『겨울방학』, 소설집 『팽이』, 단편 「비상문」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동행 – 최윤
어떤 고요 – 박형서
자칫 – 최진영
이창 – 구병모
교활한 아버지 – 야오어메이
후원칭전 – 웨이웨이
함박눈에 갇혀버린다면 – 쉬저천
고깃덩이 – 둥쥔
해설 – 서로를 비춰 보는 거울
〈한중걸작단편선〉을 보면, 두 나라 작가들의 문학적 관심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과거보다는 생활현실 면에서 많이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 작가들이 개인적 삶의 미세한 단면들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데 비해 중국 작가들은 함께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천착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 문학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관계의 풋풋한 정을 음미할 수 있고, 그들은 우리 문학에서 자본주의의 과잉으로 인해 단자화된 개인들이 겪을 수박에 없는 삶의 의미와 가치의 상실을 눈여겨볼 수 있을 것이다.
– 조정래(소설가)
한국의 K들
단자화된 개인, 핏줄조차 타인이 되는 시대의
한국의 대표 단편 소설 네 편
첫 번째 작품인 최윤의 「동행」은 타자의 타자성을 극단의 심연까지 파고든 동시에 그 부분에 대한 이해만으로 결코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통시통역가인 남편과 아들 하나를 두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나’의 가정에 아들 지훈이 투신자살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지훈의 죽음과 관련하여 경찰이 ‘어떻게’에 집중한다면 ‘나’와 남편은 ‘왜’에 초점을 맞춘다. ‘어떻게’가 형식 논리에 바탕한 법의 문제라면, ‘왜’는 윤리에 바탕한 죄의식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얼마 후 이 가정에 겨우 이름만 기억날 뿐인 동창부부가 여자아이 J를 데리고 나타난다.이 여자아이는 아들과 같은 또래이고, 아들의 이름과 첫 자가 같다. ‘나’는 J에게서 지훈을 발견하고, 이 발견은 ‘나’에게 신경안정제 없이도 잠들 수 있는 평화를 가져다준다.
J와 5개월을 보냈을 때 J는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둔 ‘J라고 이름 붙인 아들에 대한 자료 파일’만을 들고 사라진다. 그리고 J가 떠난 후에야 ‘나’는 ‘아들이 우리를 영원히 떠났다는 것을,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최윤의 「동행」은 타자의 이해라는 윤리의 근본명제를 심문한다. 내 핏줄조차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그 깨달음만으로는 결코 행복도 평화도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기에 이 작품은 윤리의 주장인 동시에 윤리의 비판으로도 읽어야 할 것이다.
박형서의 「어떤 고요」는 작가의 실제 삶이 별다른 가공 없이 거의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자전소설이다. 부모님이 교사였다는 것, 강원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것, 2000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는 것, 소설집으로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과 『자정의 픽션』을 출판했다는 것, 문예창작과 교수로 임용되었다는 것 등이 모두 사실에 부합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소설이다.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어떤 고요」에는 프로이드가 말한 ‘최초기억’에 해당하는 장면이 시작과 마지막에 하나의 거멀못처럼 놓여 있다.
시작은 ‘나’가 여섯 살에 경험한 청력 상실이다. 귀가 먼 직후부터 청력을 되찾게 되기까지 두 해 동안의 시간은 ‘나’의 삶을 기본적으로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력 상실의 경험은 2010년 겨울 크리스마스이브에 인도의 중부 벵갈루에서 남부 께를라로 가는 2등 침대칸에서 다시 찾아온다.
침대칸에서 ‘나’는 문학상을 받은 것과 문창과에 교수로 임용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차에 탑승한 직후 갑자기 귀가 먼 것 등 커다란 세 가지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세 가지 사건 모두 인생의 큰 문제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진정한 문제는 세 가지 고민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특히 일시적이지만 귀가 멀었다는 것은 향후 수 년 내에 청력을 완전히 상실할 것이라는 의사의 경고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일에 해당한다.
오랜 고민 끝에 하나의 원칙을 세우는데, 그것은 ‘내 몸과 내 역사에 대한 예의부터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선택이 시작된 첫날이면 언제나 경험하곤 하던 ‘어떤 고요’를 느끼는데, 이 고요는 모든 일의 시작에 앞서 우선 스스로에게 충실하겠다는 다짐의 육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최진영의 「자칫」은 현재 한국사회가 얼마나 비루한 욕망과 단조로운 일상으로 채워지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소설이다. K94, K96, K97, K98, K95 등의 초점화자가 번갈아 등장하며 초점화자에 따라 각 장이 나뉘어져 있다.
K94, K96, K97의 인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등장하는데, 그들의 고등학교 시절은 오직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이 삶의 목표이자 이유인 때로 그려진다. K94는 예쁜 애들이 많다는 이유로 교회에 가고, K96은 예쁜 애들이 많다는 이유로 독서실에 가고, K97은 예쁜 애들과 사귀기 위해 공부를 한다.
K94와 K96은 나름의 성장을 보이는데, 그것이 철저히 생존의 문제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성장으로 보기 힘들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근무와 휴식, 성실과 태만,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취업 못 하는 젊은이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중년이 된다.
최진영의 「자칫」에 등장하는 K94, K96, K97, K98은 지금의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장삼이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삶을 유기적으로 조합한다면 현재 한국사회의 전체적인 상이 떠오를 정도이다.
구병모의 「이창」은 아이러니적 풍자의 형식을 보이다가 마지막에는 토도로프가 말한 환상소설(the fantastic)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작품은 오지라퍼라고 불리는 ‘나’의 요설에 가까운 장광설로 이루어져 있다. 오지리퍼란 우리말인 오지랖에 ‘그 일을 하는 사람’ 내지는 ‘직업’을 뜻하는 영어 어미 ‘-er’이 붙어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남들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나’는 조금은 풍자적으로 그려진다.
오지라퍼 ‘나’가 어느 날 아동학대의 현장을 발견한다. 오지라퍼답게 ‘나’는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여자의 말만 믿고 그대로 돌아가 버린다. 그러나 1001호 여자가 아이를 폭행했다는 ‘나’의 주장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이 작품은 비정상적인 일(아동학대 사건과 결말)에 대한 독자의 망설임이 끝내 해소되지 않은 채로 끝나는 환상소설의 서사 문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