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의 주 배경인 ‘삼벌레고개’는 삼악산의 남쪽을 복개하면서 산복도로를 만들고, 그 시멘트도로 주변으로 지어진 마을과 그 골목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집 사는 사람, 전세 사는 사람, 월세 사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 주인공 ‘안 원’에게는 언니 ‘영’과 동생 ‘희’가 있다. 이 세 자매는 주인집에 세들어 살고 있으며, 주인집 아들 ‘은철’이와 마을의 비밀을 조사하는 스파이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원이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감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무성히 돌았으며, 아버지는 세 아이들의 이름처럼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인혁당 사건’을 연상케 하는 이 소설은 ‘토우가 되어 묻힌’ 사람들의 자리, “토우의 집”이다.
권여선
1965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하대 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상처와 일상의 균열을 해부하는 개성있는 작품세계로 주목받고 있다. 2007년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도 제32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사랑을 믿다’는 남녀의 사랑에 대한 감정과 그 기복을 두 겹의 이야기 속에 감추어 묘사하여 호평을 얻었다.
저서로는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 숲』, 『안녕 주정뱅이』, 『아직 멀었다는 말』, 장편소설 『레가토』, 『토우의 집』, 『레몬』, 산문집 『오늘 뭐 먹지?』가 있다.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리문학상,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1. 삼벌레고개
2. 김이 탄 날
3. 안바바와 다섯 명의 도둑
4. 네 이웃을 사랑하지 말라
5. 죄와 벌
6. 토우의 집
작가의 말
오래전 이곳에 삼악산이 있었지
남쪽은 산을 파내고 큰 길을 뚫어
골목마다 채국채국 집을 지었지
산꼭대기에 바위 세 덩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 ‘삼악산’이다. 그 남쪽 면은 경사도 완만하고 바위도 적어서, 산복도로를 내었다. 그리고 애벌레처럼 그 도로 옆으로 집들을 지었다.
우물집 둘째 아들인 은철이네 집에 새댁네 식구가 이사를 오기로 했다. 새댁네 가족은 ‘안 영’, ‘안 원’ 두 딸까지 넷이었다. 새댁은 마을 여자들의 샘을 사는 일이 빈번했다. 예쁜 필적, 분첩 대신 핸드백에 들어 있는 펜대, 펜촉 잉크병. 그리고 으레 “애들을 격일제로 두들겨 패지 않고 남편을 몹시 사랑한다는 이유”였다.
‘은철’과 새댁의 둘째 딸 ‘영’의 직업은 ‘스파이’. 마을의 우물에 빠져 죽은 처녀들의 수가 왜 ‘구십삼’인지 밝혀내고, 벽돌을 갈아 만든 독약으로 누군가를 벌하기도 하며, “새댁” 혹은 “누구엄마”로 부르고 불리던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낸다. ‘개발기술’과 ‘귀밝이술’의 발음이 똑같은데 어떻게 어른들은 그걸 구분해내는지, 어른들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마을 사람들의 고민은 비슷한 듯하지만 다르고, 다른 듯하지만 비슷하다. 커가는 아이들, 남편의 월급, 새로 이사 온 새댁의 가족사 등. 마을 여인들의 하루 이야깃거리가 되었다가 인생의 큰 고비가 되었다가 운수패를 두고 나면 다시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마을에서는 남자들이 한 명씩 끌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번번이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삼벌레고개는 작게 진동한다. 그리고 원이네 아버지 ‘덕규’가 양복 입은 사내들과 함께, 곧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남쪽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토우가 사람 집에 들어가 산다네
그래 봤자 토우의 집은 깜깜한 무덤
원이네는 막내딸 ‘희’가 태어나면서, 다섯 가족이 되었다. 딸들의 이름을 이어붙이면 ‘영원희’가 되었다. 다섯 식구는 행복했지만 행복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김밥을 몇 줄 살뜰히 챙겨 산에 오르려던 어느 날, 덕규는 처음 보는 사내들의 부름에 따라 갔고 원이가 교복 입을 나이가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스파이가 되고 싶던 원이는 어느새 스튜어디스를 꿈꿨고, 원이네 아버지가 실종은 새살림을 차려 돌아오지 않는다는 등의 소문으로 흐려졌다.
시종일관 큰 요동 없이 차분하게 흘러가고 있는 이 소설은, 삼벌레고개 마을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 아래를 고요히 흐른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위태롭다. 밥을 먹는 것, 학교를 가고 출근을 하는 마을 사람 중 한 명으로 사는 것. 이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 내부로 균열이 오는 것 같은 고통을 가까스로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덕규가 양복 사내들을 따라 들어간 것처럼.
소설이 유지하고 있는 시선은 아프다. 원이네 아버지가 정말로 새살림을 차렸을지 아닐지, 마을 사람들은 모르는 듯하지만, 우리는 안다. 소설의 시선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모르는 진통을 소설의 시선은 아는 듯 말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소설 속 인물들이다. 원이네 가족들은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그들의 마음을 알 길이 없다.
가슴이 제일 먼저 흙으로 칠갑된 그들은 아직도 무덤가에 살고 있다. 흙으로 빚은 장정들이 우리의 집에 들어와 토우를 내쫓고 산다. 삼벌레마을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이 이야기는 “미완의 다리 앞에서 직녀처럼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본문 중에서
경사를 끼고 형성된 모든 동네가 그렇듯 삼벌레고개에서도 재산의 등급과 등고선의 높이는 반비례했다. 아랫동네에는 크고 버젓한 주택들이 들어섰다. 아랫동네 주민은 대부분 자기 소유의 집에 살았고 세도 안 놓았다. 마당도 넓고 자동차도 있고 식성이 까다로운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니 정원사에 운전기사에 음식 솜씨 얌전한 식모나 보모도 있어야 했다.(11쪽)
“들어나 보세요들. 우리 몸에 왜 기가 흐른다 하잖아요. 살기가 등등하다 취기가 돈다 할 때 그 기! 그 기가 들고 나는 쬐끄만 문이 우리 몸에 있는데 그걸 경락이라고 한다네요.”
“우리 몸에 그런 쬐끄만 문이 다 있대요 ”
사우디집의 말에 임보살이 자신만만하게 대꾸했다.
“있고말고! 그 문이 귀신하고도 통하는 문인걸.”
“그렇다네요. 그런 걸 연구소 차려가지고 공부한다는 게 말이 돼요 ”
계원들은 그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몰랐지만 계주가 말이 안 된다는 쪽으로 결론을 유도하리라는 예감은 들었다.(124쪽)
기름기를 많이 섭취한 육식이의 음성이 가장 감미로웠다. 재봉틀 의자에 앉아 낮은 허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던 새댁은 육식이의 바리톤이, 그리워라 안니 로리, 하고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미끄러져 내릴 때면 자신의 가슴마저 무너져 내리는 듯해 재봉틀을 구르던 발을 멈추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안니 로리가 사람 이름인 줄 모르는 원은 제멋대로 고쳐 불렀다.
옛날 거닐던 강가에 이슬 젖은 풀잎
사랑하네 아니 오리 언제나 오려나
아득히 지난날 가슴에 스민 꽃
그리워라 아니 오리 꿈속에 보이네(164쪽)
“그자들이 왔어요. 조사만 받고 바로 나올 수도 있고 아니면…….”
덕규는 말을 흐렸다. 새댁의 얼굴이 그다음 말을 하도록 해주지 않았다. 그는 기다렸다. 새댁이 말없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처음 그녀의 손을 잡던 십삼 년 전의 그날처럼 손에 땀이 배었다.
“다녀오리다.”
“다녀……오셔야 해요.”(254~255쪽)
작가의 말
나는 그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내 몸에서 나온, 그 어린 고통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고통 앞에서 내 언어는 늘 실패하고 정지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어린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의 온기를 위해 이제껏 글을 써왔다는 걸.
그리하여 오늘도 미완의 다리 앞에서 직녀처럼 당신을 기다린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