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 소설가가 외모지상주의에 날리는 유쾌한 한 방의 장편소설 『천하일색 김태희』.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비호감 외모, 태권도 공인 3단에 수락산 날다람쥐라는 별명을 가진 주인공 김태희. 지하철 변태에게조차 비웃음거리가 되는 그녀지만, 당당함만큼은 천하일색 이상이다. 그런 그녀 앞에 외모, 학벌, 집안, 재력 모든 것을 갖춘 성형외과 의사 찰스 리가 나타난다. 김태희에게 열렬한 구애를 퍼붓는 그의 진짜 속셈은…?
김범
1963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2001년 조동선 소설 창작반에서 소설 공부를 시작했다. 90번에 가까운 낙방 끝에 2009년 단편소설 「치즈버거」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 『할매가 돌아왔다』는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자신의 일생을 인정받기 위한 할머니의 투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재미로만 따지면 최고”, “한국의 오쿠다 히데오”라는 평가를 받으며 출간 즉시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판권이 모두 계약되는 등 이례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할매가 돌아왔다』는 SBS 주말드라마 ‘떴다! 패밀리’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그 밖의 작품으로 장편소설 『공부해서 너 가져』(2014)와 『천하일색 김태희』, 『5번 교향곡』(2013년, 전자책) 등이 있다.
천하일색 김태희
작가의 말
이 시대의 진정한 미의 기준이 바뀐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모두가 천하일색 김태희에게 열광하게 될 것이다
‘뚱뚱한 여자’에게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화가 루벤스. 루벤스에게 그가 ‘또 하나의 비너스’라고 찬탄해 마지않던 ‘엘렌 푸르망’이 있다면, 찰스에겐 세상의 불합리에 언제나 당당히 맞서는 ‘천하일색 김태희’가 있다.
‘그 태희가 웃으면 심장이 저리고 이 태희가 웃으면 똥꼬가 저린다.’
‘그 태희는 여신 이 태희는 뚱신.’
밤늦은 시간 도서관을 나설 때면 대여섯이 벤치에 앉아 있다가 일제히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천. 하. 일. 색. 김. 태. 희!’ (40쪽)
외모를 비하하는 거침없는 조롱 속에서도 김태희는 성형으로 자신의 삶을 손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성폭행한 계부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닥터 지바고〉 영화 속 라라처럼 그들의 저열함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그 당당함의 아우라에 찰스도 김태희의 매력에 넋을 놓게 되는데…….
“천하일색? 그런 거 개나 줘버려!”
무차별적 웃음 공격 뒤에 찾아오는 진한 페이소스……
신데렐라 앞에 계모가 있다면 김태희와 찰스 리의 사랑 앞에는 찰스의 어머니 강유정 대표가 있다. 강유정 대표는 교묘하고 집요한 방식으로 그들의 사랑을 방해한다.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던 김태희지만, 결국 강유정 대표가 만들어놓은 계략에 걸려들고 만다. 왜? 찰스를 사랑하니까. 그녀는 찰스를 구하기 위해 그동안 그토록 거부했던 성형수술을 받아들이고 진짜 천하일색으로 거듭난다.
“여러분.”
잠시 광분이 가라앉는다. 난 찬찬히 방청석 남자들을 살핀다.
오로지 미모만 쫓아다니는 바보들. 미모면 다 된다고 믿는 쓰레기들.
“사랑해요.”
난 얼굴에 함박웃음을 담고 천천히 가운뎃손가락을 올린다.
카메라가 정신없이 터진다. 다 끝났다. 시원하다. (269쪽)
김태희는 과연 강유정 대표의 손아귀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위기에 빠진 찰스와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이처럼 『천하일색 김태희』에는 성형을 하듯 교묘히 외형을 바꿔가며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는 폭력에 저항하는 작가의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다. 전혀 진지하지 않은 방식으로. 아니, 작가 특유의 입담으로 유머러스하게.
‘작가의 말’ 중에서
세상이 아무리 개혁으로 나아가도 폭력은 조금도 그 크기를 줄이지 않는다. 폭력은 교묘한 성형으로 그 외모만 바꿀 뿐 여전히 인간을 괴롭히고 사회 위에 군림한다. 그 위풍당당함에 작은 돌 하나라도 던지기 위해 오랜 산고 끝에 마침내 이 글을 세상에 내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