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을이 도시에서 폐허가 되기까지의
빛과 어둠의 연대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를 쓴 전 세계가 인정하는 옌롄커의 신작 장편소설! 제1회, 2회 루쉰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문학상을 수상하고, 해마다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호명되는 옌롄커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작렬지』가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 『사서(四書)』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중국 현실을 정면으로 다뤘다는 이유 때문에 금서로 지정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출간 즉시 15만 부 이상 팔리면서 다시 한번 작가의 저력을 확인시켜주었다.
『작렬지』는 옌롄커 작가가 직접 역사지리서의 편찬을 맡아 작성한 것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자례’라는 허구의 마을이 점차 대도시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 구체적 연대기를 통해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든 “그 길은 발전과 부귀, 영웅과 승리자로 나아가는 지혜의 계단”으로 받아들여지는 중국 현실에 대한 첨예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옌롄커
1958년 중국 허난성에서 쑹현에서 태어났다. 스물한 살 때부터 28년을 군인으로 살았다. 1978년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다수의 장편소설과 중단편소설, 산문 등을 발표했다. 1979년 군대 내 문학창작반에서 활동하던 중 [전투보]에 단편 「천마 이야기(天麻的故事)」를 실으며 데뷔했다. 그후 1985년 허난대학 정치교육학과를 거쳐 1989년 해방군예술대학 문학과를 졸업했다.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지금까지 11편의 장편소설과 8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비롯한 다수의 수필과 산문을 발표했다.
작가의 주요 작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출간 즉시 당국으로부터 판금조치와 함께 전량 회수된 일화로 유명하다. 2005년 봄 광저우의 문예지 [화청 花城]에 게재된 이 작품은 마오쩌둥의 사상과 위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출간 되자마자 출판,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을 할 수 없는 이른바 ‘5금(禁)’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강압적인 탄압이 국내외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오히려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켜 자국 내에서는 온라인을 통해 몰래 돌려보는 금서로, 국외로는 미국과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 전 세계 10여 개국에 소개되었다.
세계 여러 매체들에 의해 ‘가장 폭발력 있는 중국 작가’라는 극찬을 받는 한편, 주요 작품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정신오염’과 같은 수상한 명분으로 수차례 판금조치를 당해, 문단과 정치문화계를 뒤흔들며 ‘중국에서 가장 쟁의가 많은 작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제1회, 제2회 루쉰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문학상, 2014년 프란츠 카프카상을 비롯하여 이십여 건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온 중국의 대표 작가다. 현재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고등연구원 교수, 중국인민대학교 문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며, 여러 나라를 돌면서 문학 강연 및 포럼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중국 평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으며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현재 옌롄커는 중국작가협회 위원, 북경시 작가협회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여름 해가 지다(夏日落)』, 『일광유년(日光流年)』, 『물처럼 단단하게(堅硬如水)』, 『레닌의 키스(受活)』,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 『사서(四書)』, 『작렬지炸裂志』, 『풍아송(風雅頌)』 등이 있으며, 산문집 『나와 아버지(我與父輩)』, 『그녀들(?們)』 등이 있다.
1장프롤로그
2장지리 연혁 1
3장개혁 원년
4장인물편
5장정권 1
6장전통 풍습
7장정권 2
8장종합 경제
9장자연 생태
10장심층 혁명
11장대결
12장방위사업
13장포스트 군수산업 시대
14장지리 연혁 2
15장문화, 문물 그리고 역사
16장인물의 변화
17장지리 대변혁 1
18장지리 대변혁 2
19장편집장 후기 (에필로그)
작가의 말
화산 폭발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터진다’는 의미의 작렬하는 마을!
그 폭발적인 번영의 시작과 끝이 불러온
폐허의 시간에 관한 기록
『딩씨 마을의 꿈』이 에이즈에 점령당한 지독한 현실을 이미 죽어 땅에 묻힌 열두 살 소년의 시선으로 그려낸 리얼리즘과 판타지가 결합된 작품이라면, 『작렬지』는 작가 옌롄커가 자신의 고향 땅인 ‘자례’의 역사지리서를 맡아 쓰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의 작품이다. 이처럼 허구를 가장한 사실(중국의 현실)을 통해 작품과 현실을 더욱 단단히 밀착시킨다.
옌롄커가 써 내려간 이 역사지리서는 화산 폭발로 인해 생겨난 ‘자례’라는 작은 마을이 도시로 급성장하고, 다시 폐허가 되기까지의 빛과 어둠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작렬지』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역사리지서 편찬이라는 소설적 상상력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견고한 허구의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고, 가려진 진실을 들추며,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그려낸다”(656쪽).
이 작품은 ‘자례’라는 허구의 도시가 가진 역사를 풀어내고 있지만, 이야기가 가닿는 지점은 중국에서 도시가 형성되던 시기의 구체적인 연대기임을 알 수 있다. 송나라 시절, 화산 폭발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터진다’는 의미의 작렬하는 마을, 즉 자례(炸裂)가 생긴다. 시간이 흘러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자례에는 쿵씨와 주씨의 양대 파벌이 형성된다.
혼란의 시기에 주인공 쿵밍량의 아버지 쿵둥더의 옷에 중국 지도 모양으로 번진 새똥을 보고 누군가 촌장인 주친팡에게 고발하고, 결국 쿵둥더는 중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감옥에서 돌아온 쿵둥더는 네 아들에게 “모두 나가거라. 지금 당장 나가서 각기 동서남북으로 걸어가. 돌아보지 말고 계속 가다가 무엇을 만나거든 허리를 굽혀 주워라. 그 물건이 평생 너희의 운명을 좌우할 게다”(28쪽)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둘째 아들인 쿵밍량은 원수처럼 지내던 주씨 집안의 딸 주잉을 만나게 되고, 이 만남이 자례의 파란만장한 운명을 결정짓는다.
“한 도시의 번영이 그렇게 끝이 났다.
휘황찬란한 역사가 일단락을 고했다.”
은폐되었거나 함축되었거나
혹은 쓰이지 않았을 것들에 관한 기록……
쿵밍량은 마을을 지나는 기차 화물칸에서 물건을 훔쳐 부를 축적하고, ‘만위안호(연수입 1만 위안 이상인 부유한 가정)’를 육성하라는 정부 정책에 의해 새로운 촌장으로 추대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원수였던 촌장 주칭팡을 마을 사람들이 뱉은 침에 익사시켜 죽인다. 이 광경을 지켜본 촌장의 딸 주잉은 쿵밍량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자례를 떠나게 되고, 이후 마을 전체가 공모하여 기차에서 물건을 계속 훔치며 막대한 부를 쌓게 된다. 하지만 산업이 발전하면서 기차가 빨라져 자례 사람들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도시에서 유흥사업으로 큰돈을 번 주잉은 마을로 돌아와 쿵밍량과 쿵씨 집안 사람들을 위기에 빠뜨린다.
옌롄커 작가는 ‘촌’에서 ‘진’으로, ‘진’에서 ‘성’으로, ‘성’에서 ‘시’ 및 ‘초대형 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은폐되었거나 함축되었거나 혹은 쓰이지 않았을 것들”에 대해 기록을 계속해나간다. 그러나 한 마을의 흥망성쇠에 관한 기록은 쿵밍량 시장이 붙인 라이터 불에 불타고 재만 남게 된다. 이처럼 『작렬지』는 ‘허구이지만 허구가 아닌’ ‘불타 사라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이야기를 통해 중국의 현실과 지난 역사가 가진 문제의 본질과 근원까지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작가의 말
『작렬지』에서 드러내려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촉발하는 핵이었다. 혼란스러운 오늘날의 중국에서 소설이 삶에서도 보이지 않고 대지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거친 뿌리를 포착했다면, 토지와 삶의 표면적 진실이 어떤가가 과연 그렇게 중요할까? 『작렬지』는 어둠 속에서 ‘가장 중국적’ 원인을 찾으려 했다. 화가가 강물 깊은 곳 보이지 않는 강바닥의 형태와 굴곡을 그리려고 하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 강의 수면이 잠잠하다거나 물살이 세다거나 하는 합리성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