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동경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힌다.
이상은 왜, 동경에서 그렇게 죽었을까? 죽기 전에 누구를 만나고 어떤 세상을 눈에 담았을까? 『이상은 왜?』는 요절한 천재, 우리 문학 사상 가장 이채로운 존재로 평가되는 이상의 마지막 4개월을 추적해가는 역사추리소설이다. 작가는 이상이 바라보았을 식민지 조선의 모습, 그가 겪어야 했을 동경에서의 상황들을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내며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이 결합된 흥미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이상은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근무했다는 확실한 신분이 있고 폐결핵까지 앓고 있었다. 작가는 그런 그가 왜 체포되어 긴 시간 구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치밀한 자료 조사와 파괴적인 상상력으로 1936년 가을과 1937년의 봄의 ‘이상’을 만들어낸다. 특히 그는 작품 속에 자신의 분신격인 소설가 ‘정문탁’을 등장시킴으로써 이야기를 더욱 입체감 있게 풀어낸다.
1936년, 이상은 폐병을 앓는 몸으로 동경으로 건너간다. 그는 한발 떨어진 타국에서야 비로소 조국 조선의 식민지적 현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고, 천황 암살을 위해 잠입한 ‘까마귀’를 만나면서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는 처지가 된다. 한편 2009년, 정문탁은 이상이 왜 동경에서 체포되어 죽었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도쿄로 가고, 그의 자취를 더듬어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그의 죽음에 얽힌 비밀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치밀한 자료 수집과 방대한 관련 지식을 동원해, 탄탄한 구성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조화롭게 엮어낸다. 그는 이상과 정문탁, 두 사람이 휘말리게 되는 사건들을 긴장감 있게 그리며, 그 속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는 무엇이며, 이를 딛고 만들어가야 할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고민해보도록 한다.
임종욱
1962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문경 동로에서 자랐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소설 창작에 뜻을 두었으나, 이후 창작은 포기하고 비평을 공부했다. 학교 신문사에서 주최한 학술상 비평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한문학으로 바꾸고 민족문화추진회와 유도회에서 한문을 공부했으며, 50여 편의 논문과 10여 권의 저서, 역서를 냈다. 주로 여말선초 한문학을 연구했고, 고려 말기의 시인 원천석의 시세계를 조명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전자불전문화콘텐츠 연구소 연구교수와 역경원 역경위원, 포은학회 정보이사로 활동하면서 불교 문집 번역과 소설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운곡 원천석의 시문학 연구』,『고려시대 문학의 연구』,『한국한문학의 이론과 양상』,『중국의 문예인식』,『중국문학에서의 문장 체제 인물 유파 풍격』이 있고, 편저로 『고사성어대사전』,『동양문학비평용어사전-중국편』,『한국한자어속담사전』,『동양학 용어사전』 등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 『화담집』,『초의선집』,『논어』,『몽구』,『명심보감』,『천자문』 등이 있다. 현재 일본 교토로 건너가 도슈사이 샤라쿠로 변신하여 교토와 에도에서 활동했던 김홍도의 경험담을 소재로 한 역사추리소설 『샤라쿠, 새라쿠』를 집필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 일본을 오가면서 활약한 포은 정몽주의 발길을 되밟는 여행을 하면서 그의 삶과 사상, 문학을 조명하는 『정몽주 평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소설로는, 공자 시대 학당을 중심으로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소정묘 파일 1, 2』과 지족선사와 황진이 사이의 질긴 인연의 끈을 추적한 『황진이는 죽지 않았다』가 있다.
제1권 : 그해 겨울의 까마귀
● 1936년 9월 상순 어느 날 경성
● 1920년 10월 중순 어느 날 만주 간도
● 2009년 늦가을 어느 날 일본 도쿄
● 나는 거기서 앵무가 노한 것을 보았느니라
● 나의 육신은 그런 고향에는 있지 않았다
●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 하나가 있소
● 두통은 영원히 비켜서는 수가 없다
● 날개 축 처진 나비는 입김에 어리는 가난한 이슬을 먹는다
● 아내는 낙타를 닮아서 편지를 삼킨 채로 죽어가나 보다
● 나는 홀로 규방에 병신을 기른다
● 파란 정맥을 절단하니 새빨간 동맥이었다
● 사람은 광선보다도 빠르게 달아나라
● 이런 춘풍태탕한 속에서 어쩌다가
● 한 무더기 비둘기의 떼가 깃에 묻은 때를 씻는다
● 세상의 하고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이 아닌 이가 있으리까?
● 허위고발이라는 죄명이 나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
● 죄를 내버리고 싶다 죄를 내던지고 싶다
● 우아한 여적이 내 뒤를 밟는다고 상상하라
● 여자는 만월을 잘게 씹어서 향연을 베푼다
● 혹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내가 지각한 내 꿈에서 나는 극형을 선고받았다
● 사람의 숙명적 발광은 곤봉을 내미는 것이어라
● 나는 그것들을 조금씩 먹어보곤 깜작 놀랐다
● 춤추어라 깔깔 웃어버려라
● 나는 그냥 문고리에 쇠사슬 늘어지듯 매달렸다
● 여기는 어느 나라의 데드마스크다
● 한 마리의 뱀은 한 마리의 뱀의 꼬리와 같다
●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난 읽지 못한다
● 도회의 인심은 대체 얼마나 박하고 말려고 이러나?
제2권 : 박제를 넘어 영원으로 날다
● 군함이 구두짝처럼 벗어 던져져 있었다
● 성 베드로 군이 나에게 세 번씩이나 알지 못한다고 그런다
● 거울은 페이지의 그냥 표지
● 보이지 않는 묘혈 속에서 나는 들어앉는다
● 이것이 내가 참살당한 현장의 광경이었다
● 방대한 벽은 속으로 곪아서 벽지가 가렵다
● 사람들은 그 소녀를 내 처라고 해서 비난하였다
● 자조하는 표정 위에 독한 잉크가 끼얹힌다
● 그때 누가 내 경로를 디디는 이가 있다
●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도처에서 들킨다
● 신발을 벗어버린 발이 허천에서 실족한다
● 비껴 서는 악취에 허망과 복수를 느낀다
● 비누가 통과하는 혈관의 비눗내를 투시하는 사람
● 키가 크고 유쾌한 수목이 키 작은 자식을 낳았다
● 어디에도 행복은 없다
● 내 가벼운 무장에서 피가 좀 난다
● 검거된 사나이는 지도의 인쇄된 분뇨를 배설하고
● 나는 매일 허위를 담은 전보를 발신한다
● 까마귀는 흡사 공작과 같이 비상하여
● 산 사람의 골편을 보신 일 있수?
● 백골까지 내게 혈청의 원가상환을 강청하고 있다
● 이 도시는 몹시도 가솔린 내가 나는구나
● 그런데 Y 자는 죽었다. 정말 그 편지가 배달되자 죽었다
● 사태는 그 절정에서 폭발하였다
● 자, 운명에 순종하는 수밖에! 굿바이
● 나를 조금씩 조금씩 죽이려던 것일까?
● 1937년 4월 초순 동경 대학 병원, 이상의 병실
● 1937년 6월 하순 망우리 공동묘지
● 다시 2009년 늦가을 어느 날 일본 도쿄
● 남은 이야기
작가 후기
신화가 되어버린 천재, 李箱!
그의 죽음을 둘러싼 숨겨진 비밀
1937년 동경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박제가 되어버린 天才, 李箱죽음의 비밀이 밝혀진다
2010년은 사회 각계 전반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많은 해였지만, 문학계에서도 기념할 만한 해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문학상인 ‘이상문학상’의 주인공이자, 우리 문학 사상 가장 이채로운 존재로 평가되는 ‘이상’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상을 난해한 작품과 그의 짧은 생애 동안의 기이한 행동으로 기억한다. 사람들의 거친 항의로 ‘조선중앙일보’의 연재를 그만두게 되고, 경영하던 카페가 연달아 문 닫게 되면서 돌연 일본행을 결심한 이상. 하지만 1937년 죽음을 맞기 전 동경에서 보낸 6개월은 우리에게 알려진 바가 적다. 폐결핵을 앓는 몸으로 ‘반일 조선인’이라는 혐의로 34일간 옥살이를 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난 다음 달 4월 17일에 동경 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죽었다는 것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상은 왜, 동경에서 그렇게 죽었을까? 죽기 전에 누구를 만나고 어떤 세상을 눈에 담았을까?
죽음의 땅 도쿄에서 이상의 흔적을 더듬다
이 책은 치밀한 자료 수집과 방대한 관련 지식을 동원해 퍼즐을 맞추듯 매우 정밀하게 짜놓은 웰메이드 가상역사소설이다. 1910년 국권피탈이 되던 해에 태어나 일제의 횡포가 극에 달해가는 시점에서 삶을 마친 이상은 생각해보면 참 딱한 사람이다. 그는 온전한 조선을 살아본 적이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상이 “과연 무슨 생각과 어떤 행동을 하면서 식민지 시대를 살다 죽었던 것일까?”, “그는 왜 체포되어 긴 시간 구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이상의 행적을 추적했다. 특히나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근무했다는 확실한 신분이 있고 폐결핵까지 앓고 있던 그를 왜 가두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치밀한 자료 조사와 파괴적인 상상력으로 1936년 가을과 1937년의 봄의 ‘이상’을 만들어간다.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또한 작가는 자신의 분신이기도 한 2010년을 살고 있는 소설가 ‘정문탁’을 불러낸다. 정문탁은 작가를 대신해 도쿄로 건너가 이상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이 무엇이었을지 더듬어가다 ‘재일한국인에 의한 일본인 살인사건’에 연루된다. 모든 정황이 재일한국인을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살인은 계속된다. 시시각각 목을 조여 오는 사건 뒤에 감춰진 음모와 그 진실은 무엇일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사건들, 그 속에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보다!
동경으로 건너온 이상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지 못했던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보게 된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 없는 백성으로의 치욕을 당해야 했던 1930년대. 이 소설은 이상이 만났을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이상의 눈과 귀를 통해 보여준다.
넓은 한문학적 식견을 바탕으로 다양한 역사적 소재를 한국적 감성에 맞게 써내려가는 작가 임종욱.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던 그가 이번에는 불운한 시대의 초상인 ‘이상’을 이 땅에 다시 불러낸 것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의 이상, 작가로서의 이상, 그리고 식민지 조선인으로서의 이상을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추리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아 단순한 역사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재미까지 독자들이 얻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적 정보는 물론, 이상이 남긴 기하학적인 작품들의 면면까지도 느낄 수 있게 재구성한 데 있다. 소설 중간 중간에 만나게 되는 이상의 작품들은 단순한 이상의 저작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소설의 극적 구성을 더 치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한 팩션이지만, 인물의 업적이나 단순한 역사적 설명이 담긴 기존 역사서나 전기 서적을 뛰어넘어 극적 요소를 가미한 교양서라 할 만하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식민지 시대를 지나온 우리가 그려야 하는 미래가 무엇인지 고민해보도록 요청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