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아이돌 소설인 『우주를 담아줘』는 아이돌 덕후인 삼십대 여자 셋, 디디와 양과 제나의 사랑과 우정을 담은 작품이다. 고3 겨울, 처음 만난 셋은 좋아하던 그룹의 팬사이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실제로 만나자 자연스레 서로를 팬사이트 아이디를 딴 닉네임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디디는 좋아하던 멤버의 이니셜에서, ‘크리스티나’였던 양은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오는 닥터 크리스티나 양에서, 제나는 ‘언제나MVP’에서 각각 따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이는 서른을 넘어섰고 그럼에도 덕질은 지속되었다! 덕질은 인생의 낙이자 해방구이자 품앗이이므로. 그런데 삼십대 덕질은 어렸을 때와 조금은 다르다.
박사랑
저자 : 박사랑
2012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스크류바』가 있다.
20년간 소설가 지망생으로,
7년간 소설가로,
2N년간 빠순이로 살아가는 중이다.
현오빠는 나를 달리게 한다
구오빠는 나를 멈추게 한다
오빠들은 나를 키운다
작가의 말
현오빠는 나를 달리게 하고
구오빠는 나를 멈추게 한다
경쾌하지만 불안하고 설레지만 가슴 먹먹한
삼십대 여자 셋의 ‘덕질 라이프’
박사랑 첫 장편소설
“이 소설이야말로 덕업일치의 현장이고 성덕(성공한 덕후)의 길이 아닐까.”
경쾌하지만 불안하고 설레지만 가슴 먹먹한
삼십대 여자 셋의 ‘덕질 라이프’
2012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뒤 첫 소설집 『스크류바』를 내며 “삶과 이야기에 대해 고민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 소설가 박사랑의 첫 장편소설 『우주를 담아줘』가 자음과모음의 ‘새소설’ 시리즈 두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대산창작기금을 수혜받은 작품으로, 선정 당시 “팬덤 문화를 이해하는 데 이만한 텍스트가 있을까”라는 심사평과 함께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다.
본격 아이돌 소설인 『우주를 담아줘』는 아이돌 덕후인 삼십대 여자 셋, 디디와 ?과 제나의 사랑과 우정을 담은 작품이다. 고3 겨울, 처음 만난 셋은 좋아하던 그룹의 팬사이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실제로 만나자 자연스레 서로를 팬사이트 아이디를 딴 닉네임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디디는 좋아하던 멤버의 이니셜에서, ‘크리스티나’였던 ?은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오는 닥터 크리스티나 ?에서, 제나는 ‘언제나mvp’에서 각각 따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이는 서른을 넘어섰고 그럼에도 덕질은 지속되었다! 덕질은 인생의 낙이자 해방구이자 품앗이이므로. 그런데 삼십대 덕질은 어렸을 때와 조금은 다르다.
“우리는 티켓팅에 실패하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티켓을 살 수 있는 자금력을 갖췄고 국내 공연에 실패하면 해외 공연에 갈 수 있는 행동력까지 갖춘 삼십대 빠순이니까. 누가 인생은 삼십대부터라고 말하던데, 나는 빠순질 역시 삼십대부터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야 좀 할 만해졌다고나 할까.”(14~15쪽)
『우주를 담아줘』에서는 유쾌하고 발랄한, 현실 웃프고 센 언니들의 재기 넘치는 일상과 수다 잔치가 펼쳐진다. 포도알, 하느님석, 이선좌, 피케팅, 막콘, 덕통사고, 일코, 폼림, 멜림, 사녹…… 등 온갖 덕질 전문용어가 각주로 화려하고 명랑하게 등장하며 흥미를 자극한다. 그래서 독자는 읽는 내내 기분 좋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작가가 정말로 좋아서 쓰고, 쓰면서 좋아했던 소설이기 때문이리라. 소설가 박사랑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힌다.
“오직 즐겁기 위해서 썼다. 소설이라는 자각도 없이. 누구의 눈에 들려 노력하지 않고, 어디에 발표하려 애쓰지 않고 그저 썼다. (……) 나를 이루는 것 중 어느 조각은 분명 오빠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나는 감정의 격랑을 온몸으로 안으며 나와 타인과 삶을 배웠다. (……) 2n년차 문학 덕질 중인 내가 소설가가 되어 책을 낸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덕업일치의 현장이고 성덕(성공한 덕후)의 길이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 소설에 기대고 빚지며 살아가게 될 것 같다.”(‘작가의 말’ 중에서)
현오빠는 나를 달리게 하고
구오빠는 나를 멈추게 한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돌 프로그램을 본 다음 날, ?과 나는 서로 눈을 맞추며 봤어? 하고 물었다. 사랑에 빠지는 데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덕통사고를 당하는 건 몇 분, 아니 몇 초면 충분했다.”(52쪽)
디디와 ?과 제나는 그야말로 열혈 아이돌 덕후다. 디디는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덕질을 하고 ?은 학교 선생님인데 덕질을 하고 제나는 덕질을 하면서 일취월장하게 된 일본어 번역으로 밥을 벌어먹으면서 덕질을 한다. 현오빠, 즉 현재 사랑하는 아이돌의 영상을 매번 돌려 보고 콘서트는 빠짐없이 출첵하고 온갖 굿즈를 사 모으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셋이 만나면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세울 정도.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아이돌에 대한 애칭도 남다르다. 언어의 한계를 느끼며 고심해낸 작명은 사랑하는 아이돌의 특성에 맞춤한다. 이를테면 주주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하얗고 달콤하고 폭신하기까지 한 궁극의 맛. (……) 서주아이스주, 줄여서 주주”(104쪽)이고 츄파춥스가 연상되어서 붙여진 츄파는 “여러 색이 제멋대로 섞여 있는 달콤한 볼(ball). 물러 보이지만 의외로 단단한 심지가 있어 잘 깨지지 않는 사탕”(136쪽) 같다.
그렇게 아이돌에 대한 애정을 일구어나가는 어느 날, 디디는 인터넷 연예 기사를 훑다가 ‘일본 유명 아이돌, 이마무라 유아 중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게 된다. 유야는 디디가 정말 사랑했던 구오빠, 구아이돌이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유야는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유야가 자살을 했다는 의혹을 접하게 된 디디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 즉시 회사에 급히 휴가계를 낸 후 일본으로 떠나는데……
한편 『우주를 담아줘』는 세 여자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로 애정하는 존재를 깊이 품으면서 쌓아온 우정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이며, 대한민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삼십대 여성들의 불안한 삶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박사랑 작가가 사려 깊은 목소리로 잘 버무려놓은 에피소드들은 이 시대의 핍진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디디와 ?과 제나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며 벼려온 우정을 독자들은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면서 한편으로는 먹먹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셋이 있으면 괜찮았다. 넘어지고 엎어져도 덜 부끄러웠고 다시 일어날 힘이 돋아났다. 남들은 하나도 웃지 않을 개그에 말을 보태면서, 깔깔 넘어가면서, 헛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애인과 헤어지고도 할머니를 떠나보내고도 아이돌과 멀어지고도 우리는 함께였다. 이별이 쉼 없이 이어지는 동안 떨어져 나가는 내 살점을 보는 것처럼 애타고 아프고 힘겨웠지만 흔히 하는 말 그대로 내일은 왔다.”(2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