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가 있어도 빨래방에 가는 이유.
그곳이 품고 있는, 상처 받은 이들의 이야기.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관계’의 문제를 톡톡 튀는 문장과 무겁지 않은 서사로 경쾌하게 그려낸, 작가 김희진의 장편소설. 『옷의 시간들』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별의 문제, 그로 인한 아픔과 상처, 새로운 만남과 위로의 이야기를 담아낸 소설이다. 작가는 빨래방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만남과 소통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통해 반복되는 우리 삶의 이별과 만남을 밝고 명랑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오주는 쉬지 않고 자신을 찾아오는 헤어짐에 지칠 대로 지쳤다. 가족이 떠났고, 남자친구도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그렇게 오롯이 혼자가 되어 다시는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쯤, 그녀의 인생에 또 다른 존재들이 찾아 든다.
뭐든 수집한다며 이것저것 사진기를 들이대는 앞집 여자 조미정, 늘 소시지를 물고 있고 껄렁해 보이지만 한때는 잘나가던 카피라이터였다던 만화가 조미치, 대학교수까지 지냈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거리를 떠도는 콧수염 아저씨 등. 오주는 엉뚱한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잃어버렸던 감정들을 되찾고,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자신을 느낀다.
책에서 제시하는 빨래방은 과거 아낙네들의 빨래터와 같이 기능한다. 빨래방을 찾는 이들은 옷을 세탁하는 것과 함께 자신의 마음 또한 함께 치유 받는 과정을 경험한다. 작가는 이와 같이 빨래방을 위로와 소통의 공간으로 설정하고, 이별 뒤에 찾아오는 새로운 만남을 통해 아픈 감정의 찌꺼기를 씻어내게 되는 삶의 순환을 보여준다.
김희진
1976년 봄날, 광주에서 태어나 내성적이며 말 없는 아이로 자랐다. 그러나 친한 사람들과 섞이면 금세 수다쟁이가 된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함과 동시에 소설가의 길을 고민했으며,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혀」가 당선되면서 그 고민에 한 발짝 다가갔다. 술과 담배를 할 줄 모르며, 촌스럽게 커피만 마셔도 심장이 두근댄다. 미칠 만큼 좋아하는 게 없다는 것과 무엇이든 금방 싫증 낸다는 게 흠이다. 다시 태어나도 예술가의 길을 가고 싶지만, 그게 소설은 아니길 바란다. 첫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로 대신창작기금을 받았으며 그 외의 작품으로 『옷의 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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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문법과 발상으로 빚어낸, 김희진 작가의 신작 장편
특이한 사연과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빨래방에서 만났다
세탁기가 있어도 빨래방에 가는 특별한 이유!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여자 vs 9번 세탁기만 쓰는 남자
‘이별’과 ‘만남’ 그리고 ‘소통’에 관한 달콤 쌉쌀한 이야기
독특한 문법과 발상으로 빚어낸, 김희진 작가의 신작!
오늘날의 세태를 유려하게 드러내는 현대 작가, 김희진이 『고양이 호텔』 이후 『옷의 시간들』로 독자를 다시 찾아왔다. 2007년 “입에서 빠져나온 혀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현상을 다룬” 독특한 알레고리 소설 「혀」로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온 김희진은 자신과 쌍둥이인 장은진 작가의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와 함께 나란히 2010년 7월 말부터 4개월여에 걸쳐 성황리에 연재를 마치고 출간된다. 작가는 『옷의 시간들』에서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관계’의 문제를 톡톡 튀는 문장과 무겁지 않은 서사로 경쾌하게 그려 보인다.
우리는 매일‘이별’하며 살고 있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이별을 겪어 내는 것이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천년만년 함께할 것 같았던 가까운 사람도 언젠가는 헤어진다. 그 원인이 죽음일 수도 있고, 사소한 다툼이나 오해 혹은 지겨움 때문일 수도 있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우리가 갈아입는 옷만큼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진다. 그러면서 어제의 나와도 이별하는 것이다. ‘이별’이라는 단어는 슬픔이나 고통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지만 그것을 겪고 나면 성숙, 새로운 만남을 생성하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이다.
도서관 사서인 오주는 불면증이다. 그 때문에 2년 전에 도서관에서 만나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남자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했다. 그녀에게 ‘잠 잘 자고 행복해라’라는 한 줄의 문장만 남기고 간 남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가 들고 들어온 세탁기도 남자가 떠난 지 하루 만에 고장이 난다. 누구에게나 친밀한 사람과의 이별은 세상에서 완전히 나 혼자인 기분, 더 이상 누구도 만날 수 없다는 기분을 들게 한다.
각각 이유는 다르지만 주인공인 오주에게 닥쳐온 이별들. 어머니를 보냈고, 아빠가 떠났고, 또 언니가 떠났다. 그리고 남자친구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과의 계속되는 이별로 마음에 상처를 받고 다시는 누군가를 만날 수 없는 기분에 빠진다.
이 원룸에서라면 가구를 옮겨야 할 일 따윈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방이 세 개가 아닌 하나니까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만났고, 그는 고장 난 내 세탁기를 대신해 자기가 쓰던 세탁기를 들고 여기로 들어왔다. 그리고 알아먹을 수 없는 불어로 내 불면증을 달래 주었다. 그러다 지치고 지친 그는 결국 이 원룸을 떠나고 말았다.
관계가 버려 놓고 간 온갖 찌꺼기들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다시는 이 원룸에 사람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가구를 옮기는 일은 이제 힘에 부친다.
빈자리에 찾아드는 것들!
빈곳은 다시 채워지기 마련이다. 엄마가, 아빠가, 언니가, 그리고 그 남자가 떠난 자리에 특이한 사연과 독특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리 잡는다. 뭐든 수집한다며 이것저것 사진기를 들이대는 앞집 여자 조미정, 늘 소시지를 물고 있고 껄렁해 보이지만 한때는 잘나가던 카피라이터였다던 만화가 조미치, 대학교수까지 지냈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거리를 떠도는 콧수염 아저씨, 떵떵거리며 회사를 운영했다 부도를 맞아 거리의 부랑자로 전락한 박구도 아저씨가 그들이다.
“사람과 사람이 맺어 가는 관계라는 건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옷과 같다네. 옷은 결국 우리 곁을 떠나게 돼 있지. 작아지고 커져서, 혹은 낡아지고 닳아져서 떠나게 돼. 취향과 유행에 맞지 않아서도 떠나게 되고 말이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입을 수 있는 옷이란 없다네. 관계라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야.” (……)
“모든 해결사는 시간이라네. 그리고 떠나간 사람은 아주 양심이 없지 않은 한 다른 누군가를 불러내고 간다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그들이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장소인 ‘빨래방’이라는 공간은, 옛 아낙네들의 빨래터처럼 기능한다. 빨래터는 마을 아낙네들이 단순히 옷을 빨러 가는 장소인 동시에,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아낙들과 시름을 나누고 수다와 방망이질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이기도 하다. ??옷의 시간들??의 인물들에게도 ‘빨래방’에서 옷을 세탁하는 시간은 ‘시대’에 상처받은 인물들이 소통하고 위로받는 시간이다. 일견,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그들이지만 조미정의 엉뚱함이, 조미치의 탅털함이, 콧수염 아저씨의 자유로움이, 박구도 아저씨의 당당함이 모이자, 여러 번의 이별로 더 이상 아무도 의지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오주의 상처 난 가슴에도 새살이 돋아난다.
그리고 이미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사랑의 감정도 슬그머니 다시 찾아온다. 항상 9번 세탁기만 쓴다는 우울한 표정의 남자, 그 표정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일까?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내기’는 그녀가 그 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좇게 되는 계기가 되어, 불면증의 여자와 비밀스러운 남자의 미스터리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오주의 시선을 좇아가며 과연 오주는 그 남자의 사연을 들을 수 있을지, 그 남자의 얼굴에 웃음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두근두근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순간을 살아가는 것밖에 없다.”
김희진의 소설 ??옷의 시간들??은 누군가를 계속 떠나보냄으로써 상처받은 인물들이 서로 만나 그 상처를 다독이고 한결 더 성숙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자칫 우울할 수 있는 주제지만, 이별을 극복하는 과정을 작가 김희진은 특유의 흡인력과 기발한 상상력을 한껏 과시하며 독특한 개성의 사람들과의 ‘만남’과 ‘내기’라는 방식의 유희를 통해 명랑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별을 견디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지만, 작가는 이별이 만들어 놓은 ‘관계의 찌꺼기’들을 ‘빨래방에서의 세탁’이라는 비유를 통해 극복하도록 그리고 있다.
만나고 이별하고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살아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인간이지만, 작가는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인간에 대한 신뢰와 이별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통해 찾고 있는 게 아닐까. 또한 이별은 새로운 만남으로 치유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작가는 그 단순한 진리를 잊고 사는 독자들에게 유쾌한 에피소드로 상기시켜 주는 듯하다.
누군가의 이별이 남겨 두고 간 그 빈자리를 꿰매 주고 채워 주는 건 시간일 터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혹은 살아가게 될, 시간이 지배하는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_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