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올리고 허물어지기를 반복하는 인간의 생!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최윤이 8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오릭맨스티』. 2011년 봄부터 2011년 가을까지 계간 ‘자음과모음’에 연재된 작품으로, 파국을 향해 치닫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작가 특유의 냉정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그려냈다. 복잡하고 치열한 80년대 서울에서 살아가는 젊은 두 남녀는 가정을 만들고 아이를 낳고 자신들의 계층 상승을 위해 몰두한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남자와 여자의 죽음 이후 해외로 입양된 아이는 친절한 양부모 밑에서 성장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원인불명의 병을 앓는 아이는 급작스러운 혼절에서 깨어날 때마다 ‘오릭맨스티’라는 말을 중얼거린다. 어른이 된 아이는 다시 한국을 찾아 자신의 부모와 어린 시절의 흔적을 더듬어가는데….
최윤
아름다운 문체로 사회와 역사, 이데올로기 등 이성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다룬 소설을 쓰는 소설가 겸 번역가.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최현무이다. 1966년 경기여중과 1969년 경기여고를 거쳐 1972년 서강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교지 편집을 했으며, 1976년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978년 첫 평론 「소설의 의미구조분석」을 『문학사상』에 발표하고, 이후 5년간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의 프로방스대학교에서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고, 1983년 귀국하여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1988년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을 다룬 중편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문학과 사회』에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사회와 역사, 이데올로기 등 이성적이고 관념적인 주제를 다룬다. 『벙어리 창(唱)』(1989) 『아버지 감시』(1990) 『속삭임, 속삭임』(1993) 등은 이데올로기의 화해를,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88) 『회색 눈사람』(1992)은 시대적 아픔을, 『한여름 낮의 꿈』(1989) 『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1991) 『푸른 기차』(1994) 『하나코는 없다』(1994) 등은 관념적인 삶의 의미를 다룬 작품으로서 그의 소설은 다분히 관념과 지성으로 절제되어 남성적인 무게를 지닌 작가로 평가된다.
그의 소설은 언어에 대한 탐구이면서 현실에 대한 질문이고, 그 질문의 방식을 또다른 방식으로 질문하는 방식이다. 그는 우리를 향해 여러 겹의 책읽기를 즐기라고 권유한다. 그의 소설은 이야기의 시간적 순서를 따라가는 독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의 작은 부분들을 여러 층으로 쪼개서 그 이야기 전체의 의미를 독자 스스로가 완성하기를 기대한다. 그의 소설들을 즐기는 방법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사건의 선후관계를 의식 속에서 따라가는 것보다는 그 소설의 단락과 단락, 문장과 문장들 사이에 박혀서 보석처럼 빛나는 실존에 대한 통찰을 음미하는 것이다.
그의 소설에서 화자는 그 이야기 속의 상황과 운명을 이끌어가는 영웅적 능동성을 지니기보다는, 그 소설을 독자들에게 읽어주는 관찰자적 화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바로 그 화자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이야기할 때도 그 어조는 섬뜩하리만큼 냉정하다. 그 같은 냉정함은 현란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는 최윤 특유의 수사학에 포장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고통 속에서 길어올려진 미학의 위엄을 보여준다.
한편 최윤이 전통적 기법의 틀을 벗어나 다채로운 소설 문법을 시도하는 작가이면서도 유종호, 이어령 등의 대가급 평론가들로부터 이상적 단편소설의 전범으로 불리는 작품을 내놓은 것은 그의 소설론이 전통과 실험의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문학교수와 문학비평가로도 활동하며, 이청준의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해외에 소개하는 등 번역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1992년 『회색 눈사람』으로 제2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 『하나코는 없다』로 제1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저서에 작품집 『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1991)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92) 『속삭임, 속삭임』(1994) 『겨울, 아틀란티스』(1996) 등이 있고, 산문집 『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199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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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________225p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최윤, 8년 만의 신작 장편
“엄마는 절망이 일깨운 지혜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천천히, 미약하게, 어느 햇빛 따뜻한 아침 조용히 나를 깨우듯이,
오릭맨스티, 오릭맨스티, 오릭맨스티……”
여전히 현재형인 구차한 욕망에 대한 연민, 이미 퇴화해버린 영혼의 감각,
기능을 잃은 말에 대한 슬픔. 이런 것들이 『오릭맨스티』를 쓰는 내내 따라다녔다. (최윤)
2011년 봄부터 2011년 가을까지 계간 『자음과모음』에 연재된 최윤의 『오릭맨스티』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회색 눈사람」으로 제23회 동인문학상을, 「하나코는 없다」로 제1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최윤이 오랜 침묵을 깨고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로, 최윤 특유의 냉정하고 절제된 문장 속에 파국을 향해 치닫는 지리멸렬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긴 호흡으로 느낄 수 있다.
고통과 쾌락을 반복하며 쌓아올리고 허물어지는 모래성 같은 인간의 생(生)
‘여자’는 젊음 외에는 이 세상에 내세울 것이 없다. 좋게 말하면 평범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평균 미달의 집안과 학력과 외모와 직업을 가졌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세속적 욕망과 계층 상승의 꿈이 도처에 존재했던 1980년대의 서울, ‘여자’는 자기 삶이 더 나은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도구로 결혼을 마음먹는다. ‘남자’도 젊다. 또한 50대 후반의, 할머니라기에는 아직 젊은 모친을 가지고 있는 편모슬하의 2대 독자다. 탄탄한 중견기업의 촉망받는 영업사원인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사회적인 성격과 선량한 겉모습을 지녔지만 내면에는 미지근한 쾌락에 대한 촉수만이 살아 있을 뿐이다. 딱히 열망하는 것도, 절박한 충동도 없다. 그런 그가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고 남들이 하는 것처럼 살기 위해서 결혼을 마음먹는다.
그리고 ‘나’가 있다. 그들이 낳은 아이다. 태어났을 때의 이름은 박유진, 그러나 부모가 사망하자 생후 2년 만에 벨기에로 입양 간 후 유진 뒤발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원인불명의 병을 앓는다. 급작스러운 혼절과 의식불명이 증상인 이 미증유의 희귀병에 시달리는 것만 제외하면, 그래서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나’는 가족의 헌신적인 애정과 보호 속에서 자랐다. 마치 스위치를 내리는 듯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을 ‘나’는 블랙홀 여행이라 부른다. 그리고 서서히 의식을 되찾으면서 그가 무의식중에 중얼거리는 소리는 언제나 단 하나다. “오릭맨스티……”
부모는 뒤돌아보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내달렸다
그들이 유일하게 세상에 남긴 것은 마음의 어느 부분이 파괴된 한 아이
『오릭맨스티』는 더 나은 세속의 삶을 추구하려고 발버둥쳤던 남녀의 짧고 불우한 인생이 어떤 방식으로,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변화하는지를 담담히 풀어놓은 소설이다. 인간의 삶은 혹은 이 세상의 일이란 당사자 개인이 아무리 계획하고 노력해도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예기치 못한 외부의 일 속에서 완전히 다른 것으로 뒤바뀐다. 누구나 자기 인생은 자기의 것이라 생각하고 인생을 자기 방식대로 설계하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얼마나 구조 속에서 단독자는 허약한가. 우리가 열심히 쌓아올린 인생은 어느 한 순간, 단 한 번의 외부 충격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아무 잘못이 없이도, 어떠한 악의가 없이도 때로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러한 생의 아이러니를 최윤은 절제된 대화와 인물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단정하고 힘 있는 서술의 문장 속에서 촘촘하게 뽑아내어 독자의 눈앞에 보여준다.
더 길어진 수명, 더 높아진 생존 비용, 우리는 이제 더 많은 물질과 욕망을 ‘기본’, ‘평균’이라는 항목으로 묶어두고 있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꾸만 왜소해지고 시들어가는 한 인간의 실존에 이 소설은 더없이 냉정한 질문을 던진다. ‘여자’와 ‘남자’는 특별히 악하지도 않고 남달리 선하지도 않은 흔한 인물들이다. 적당히 세속적이고 적당히 성실하고 적당히 타협할 줄 안다. 그들의 목표는 허무맹랑하지 않았다. 이 소설을 읽는 당신과 당신 주변의 인간들처럼 그들도 그렇다. 그래서 그들의 파국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무엇이 아니다. 소설은 어른이 된 ‘나’가 더듬더듬 한국어를 배우고 자신의 부모의 사망 기사를 번역하고, 직접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부모의 사망 장소를 찾아가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 장소에 서 있는 ‘나’가 바라본 것은 붉게 저무는 석양, 우리가 잃어버린 언어, 오릭맨스티.
작가의 말 중에서 | 최윤
여전히 현재형인 한 젊은 여자와 남자의 구차한 욕망에 대한 연민, 그들의 삶을 내리 누르는 수면 상태처럼 어떤 방법으로도 깨어나지 않는 어쩌면 이미 퇴화해버린 영혼의 감각, 기능을 잃은 말에 대한 슬픔. 이런 것들이 『오릭맨스티』를 쓰는 내내 그늘이 되어 따라다녔다.
한 사람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상식과 일상 속에 자리 잡은 반생명적이며 비본질적인 것들은 결국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그것이 생명의 엄연한 질서다. 그러나 그 질서에 이르기 전에는 고통도 있고 죽음 같은 단절도 있으며 삶의 어떤 부분이 파괴된다. 그리고 언어가 있다. 언어의 확장된 기능을 통해 때로 정화도 일어나고 회복도 가능하다. 『오릭맨스티』는 그런 언어를 경험하면서 또한 갈망하면서 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