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일상을 쓰다듬는 여덟 편의 백일몽!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치유의 언어마법사 김이은의 세번째 소설집 『어쩔까나』. 시대적인 제약으로 죽음에 내몰린 노비와 양반의 사랑을 그린 표제작 ‘어쩔까나’를 비롯한 8편의 단편을 통해 저마다 안고 있는 슬픔과 상처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달아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질적인 공간으로 탈주하는 행위를 감행한다거나, 연속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일상 속에서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질기게 버텨 나가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김이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에서 한문학을 공부했으며 2002년 『현대문학』 에 「일리자로프의 가위」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어린 독자들을 위한 책으로 『호 아저씨 호치민』, 『부처님과 내기한 선비』 등을 썼다. 장편소설 『플라스틱 라이프』를 계간 문예중앙에 연재하고 있으며 작품집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 『코끼리가 떴다』,『붉은 이마 여자』(공저), 『피크』(공저),『어쩔까나』, 『부처님과 내기한 선비』, 『날개도 없이 어디로 날아갔나』,『검은 바다의 노래』 등을 출간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문화재단에서 창작 지원금을 받았다.
어떤 장의사의 행복한 창업 계획서
원더풀 라이프
돌다방 별곡
어쩔까나
첫눈과 소원과 백일몽 사이에 숨겨진 잔인한 변증법
고양이 소설엔 고양이가 없다
기억이의 노래
프롤로그
해설 겹쳐 있는 세계, 응시하는 겹눈_이소연(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도움닫기
“뭐랄까, 영원히 잃었다고 생각했던 걸 다시 찾았달까”
슬픔과 상처의 일상 속에서도 웃고, 뛰고, 구르고, 달아나는 환상을 꿈꾸며
끈끈하게 삶을 지속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일탈과 난장의 힘을 이야기하는 김이은의 세번째 소설집
김이은의 소설이 깊은 슬픔과 상처를 그려내는 와중에도 활기를 잃지 않는 이유는 작품 곳곳에서 불쑥불쑥 불거져 나오는 ‘타고난 신바람’ 덕분일 것이다. 넘쳐나는 흥을 어찌 이겨낼 수 있으랴. ―‘작품 해설’에서, 이소연(문학평론가)
2002년 등단한 이래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 『코끼리가 떴다』 두 권의 소설집을 통해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치유의 언어를 선보인 김이은의 세번째 소설집 『어쩔까나』가 출간되었다. 작가는 표제작 「어쩔까나」를 비롯한 8편의 단편을 통해 저마다 안고 있는 슬픔과 상처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작품 속에 드러난 삶의 허술함이 우리네 삶의 모습과 닮아 있는 듯 느껴지다가도 그것이 마냥 쓸쓸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작가의 이야기가 ‘그럼에도’ 삶을 지탱하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데 있을 것이다. 실소가 터져 나올 만큼 엉망진창인 현실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환상을 오가는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한 편의 백일몽을 경험하게 된다. 달아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질적인 공간으로 탈주하는” 행위를 감행한다거나, 연속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일상 속에서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를” 끊임없이 모색하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질기게 버텨 나가”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일상의 한계에서 발견한 그들 각자의 자가 치유법
「어떤 장의사의 행복한 창업 계획서」는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부조화한 이들이 가족의 모습을 한 채, 보상금을 손에 쥐기 위해 달려가는 하루짜리 짧은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비좁은 차 한 대에 서로의 몸이 부대끼도록 끼어 타서는 “과일 깎아 먹고, 미리 준비한 김밥도 나눠 먹고, 농담 따먹기도 서로 주고받”으며 성묘를 가는 이들의 모습은 흡사 “단란한 가족”처럼 보이지만, 저마다 품은 욕망으로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이들의 욕망은 이 조합을 주선한 ‘아빠’로부터 “신도에 있다”는 전화가 걸려오면서 극에 달한다. 성묘 행에서 보여준 ‘가족’과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보상금을 갖기 위해 다시 경쟁자”가 되어 속력을 내는 이들의 모습은 슬몃 광기가 서려 있어 마음 한편을 쓸쓸하게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돌다방 별곡」을 통해서는 그 일상의 치열함과 광기 끝에 다시 또 “노래를 부르고 덩실거리”게 하는 한바탕 난장으로 사건사고의 연속인 고단한 삶을 어떻게 버텨내야 하는지를 제시해주기도 한다.
빵집 주인이 훌쩍 올라타 자전거 페달을 밟자 꺼졌던 전력이 살아나 주위가 환해졌다. 앞길을 가로막던 어둠이 사라지자 한 떼의 사람들이 ‘거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거기’로 간다. 걷다가 지루해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덩실거리기 시작했다. 텅 빈 도로를 널따란 마당 삼아 사람들은 흥을 돋웠다. ‘거기’로 가는 길은 유쾌하고 신이 났다. (「돌다방 별곡」, 116쪽)
한편 시대적인 제약으로 죽음에 내몰린 노비와 양반의 사랑을 그린 「어쩔까나」는 시대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는 ‘가이’와 ‘부금’이 억압된 사랑을 극복하는 방식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여느 연인들 못지않게 거침없고, 과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결국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그 사랑을 후회”하지 않음은 물론 가이는 원망도 없이 다만 “죽은 뒤 부금과 함께 묻어주기를 청”하며 “열여섯 처럼처럼 수줍게 미소짓”기까지 한다.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은 「원더풀 라이프」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회사는 구조조정 소문이 흉흉하게 도는 한편, 이혼 위기에 맞닥뜨린 박과장은 그 무엇도 손 쓸 방법이 뾰족하지 않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엄미정을 통해 “영원히 잃었다고 생각했던 거 다시 찾”는 감정에 빠지기도 하며, 일상에 지친 삶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 나간다.
‘그럼에도’ 환상을 꿈꾸며 달아났다 다시 또 돌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가 하면 현실에서 벗어나 무언가에 이끌리듯 훌쩍 떠났다 오는 일탈 또한 이 소설집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현실 치유법이다. 「첫눈과 소원과 백일몽 사이에 숨겨진 잔인한 변증법」은 특히 ‘나’의 현실 도피 의도가 다분히 드러나는 이야기다. 습관처럼 “지금과 다른 삶을 살게 해주세요. 단 하루만이라도”라고 빌던 ‘나’는 우연히 ‘미르’라는 묘연의 여배우를 스치면서 ‘양진’이란 낯선 곳까지 다다르게 된다. 그곳에서 ‘나’는 미르를 찾아온 남자와 옆집 노파, 그리고 역장 노인과 “완전하다”고 착각할 만큼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고양이 소설엔 고양이가 없다」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고양이를 소재로” 한 소설 청탁을 받은 ‘나’는 “죽음을 예측”하는 고양이에 관한 한 통의 편지를 받으면서 겨울밤 텅 빈 서울대공원을 찾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일상으로 돌아오는 ‘나’의 모습을 보면, 한밤의 동물원 행이 하룻밤 꿈인 듯 환상적으로 느껴진다.
막 바닥에서 발을 들어 올려 한 걸음 떼놓으려 할 때 문득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이상한 편지 한 장을 받아들고는 이 밤에 왕십리에서 서울대공원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거 아닌가. 편지에 적힌 내용이 신빙성이 있는 건지 여부는 따져보지도 않았다는 생각도 동시에 떠올랐다. (「고양이 소설엔 고양이가 없다」, 239~240쪽)
환상은 「기억이의 노래」에서도 드러난다.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주는 버스 앞에서 다시 만난 기억이와 엄마는 해묵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노래하고, 춤추고, 용서하며 다시 하나의 가족이 되어 간다. 하지만 이들이 만나기까지 그 사이에 “기억이의 십 년. 그리고, 엄마의 오 년”이라는 공백이 드러나는 지점에선 이들의 만남이 또 한 편의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현실로부터 간절히 달아나고 싶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백일몽. 이 모든 환상이나 난장은 쳇바퀴 일상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킬러로서 겪는 심경변화를 다룬 「프롤로그」에서도 ‘창’의 이런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을 “다시 태어”난 기분에 빠지게 해준 장본인이자, 의뢰받은 표적물이기도 한 ‘빈’을 만나면서 창은 킬러 인생에 처음으로 갈등을 겪게 되고, “내일은 다른 날이 시작되겠지”라며 “인생의 프롤로그”를 어떤 방향으로든 마무리 지으려는 의지를 보인다.
매일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무엇하나 쉽게 바뀌지 않는 하루하루는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위태롭기까지 하다. 그 슬픔과 상처의 일상을 가볍게 내어놓으며 이야기 속 인물들같이 누구나의 삶이 그러하다 말하는 작가는 그럼에도 끊임없이 꿈을 꾸며 신명나게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일탈과 난장의 힘이 끈끈하게 삶을 지속하는 해법이 되어줄 거라고 위로하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