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선, 면과 같은 사람들이 부딪치고 깨질 때마다
솟아오르는 날카롭고 예리한 모서리들!
낯선 온도의 감각, 신주희 첫 소설집
세계에 대한 평면적 이해를 거부하고, 다양한 구성의 변화를 통해 이야기의 입체성을 중시해온 신주희의 첫 소설집 『모서리의 탄생』이 출간되었다. 2012년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점심의 연애」는 “사고차량에서 의식을 찾아가는 필사적인 과정을 요가 자세로 환치한 솜씨뿐만 아니라 구성의 긴밀도와 문장의 안정성도 탁월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카피라이터로 활동했던 이력답게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작품은 강렬한 감각으로 체험된다. ‘점, 선, 면과 같은 사람들이 부딪치고 깨지면서’ 생긴 날카로운 모서리 같은 고통의 순간을 뻣뻣한 관절 마디가 꺾이는 듯한 생생한 통증으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충격은 무감각해진 상태에서 깨어나 고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이다.
신주희
아침마다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규칙은 간단하다. 최대한 즉흥적일 것. 심증만으로 하루를 살며 낯선 사람들과 낯선 인사를 나눌 것. 헬로, 마이 스트레인저. 당신이 나의 안부를 궁금해할 때까지, 나는 손을 흔든다. 카피라이터로 무명한 것과 유명한 것의 중간에서 10년을 살았다. 시를 긁적이다 소설을 쓰게 되었고, 2012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점심의 연애」가 당선되어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우연한 기회에 ‘마음이 심플해지는 감정 정리법’ 『수거물 폐기물』을 내게 되었다. 과분한 반응을 얻어 스스로 낯설었다.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멀쩡해 보이던 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금처럼, 안정적이라 간주되는 것들의 균열을 찾는 취미도 있다. 그리고 쓴다. 그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왜 생겨난 것인지, 어디를 향하고 어디서 끝날 것인지에 대해.
당신은 말한다
네 개의 이름
점심의 연애
사막의 뼈
미싱 도로시
극
홀로, 코스트코
브라질리언 왁싱
소녀의 난
인어
해설고통의 큐비즘 | 박인성
작가의 말
진원을 알 수 없는 소문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의혹,
삶을 위태롭게 하는 균열로 이루어진 불쾌의 세계!
이 소문의 클라이맥스는 지금부터다. 도무지 오리무중이던 부부의 아기가 중국의 외딴 부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는 비보를 듣는다. 소름 끼치게도 싸늘한 시체가 되어. 그리고 소문의 질은 점점 더 나빠진다. 발견된 아기의 몸이 텅텅 비어 있더라, 눈도, 간도, 심장도, 피 한 방울도 남김이 없더라, 그것은 중국 어딘가로 팔려가고 중국 부자들은 그것으로 몸보신을 한다더라 등, 등, 등. 소문은 더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_당신은 말한다, 14쪽.
『모서리의 탄생』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불안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수록작 「당신은 말한다」에서 ‘여자’는 조선족 베이비시터에게 납치된 아기가 중국 외딴 부두에서 텅 빈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괴담을 접한 이후로, CCTV를 통해 조선족 베이비시터를 관찰하며 불길한 생각을 키워나간다. 이러한 불안은 좀더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컨테이너 박스에 감금된 채 아버지의 감시를 받으며 지내던 청년이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섹스돌의 가슴을 빨며 ‘엄마’라고 부르는가 하면(「사막의 뼈」), 더 많은 정자를 팔기 위해 그것과 유사한 코코넛 주스를 마시면서도 끊임없이 갈증에 시달리기도 한다(「홀로, 코스트코」). 이렇듯 작가는 불안의 수위를 점점 높여가며 소설 속 인물들을 위태로운 경계 위에 세워놓는다.
“문득, 모서리 그 너머가 궁금했다”
고통의 입체성을 되살리는 법
빛이 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빛 다음에는 어둠이, 어둠 다음에는 고요가 있었다. 그 안에는 짙게 일렁이는 물이 있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의 한가운데서 부적절한 것이 탄생했다. 맨 처음, 나는 비린내를 풍기는 다시마 같았다. (……) 내 몸의 세포들은 소녀의 모든 것을 양분처럼 빨아들였다. 그리고 새로운 기관들을 만들어내는 데 그것을 사용했다. 말하자면 나는, 고도로 농축된 소녀였다.
_소녀의 난, 223~224쪽.
「소녀의 난」의 서술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이다. 소녀의 배 속에 있는 ‘나’는 소녀의 불안과 일탈의 감정을 고스란히 공유한다. 뿐만 아니라 소녀를 매개로 소녀의 늙은 애인인 ‘윤’과 그의 딸 ‘치아’를 관찰한다. 이러한 독특한 구조는 「당신은 말한다」에서도 발견된다. CCTV를 통해 조선족 베이비시터를 감시하는 ‘여자’의 시선과 그런 ‘여자’를 관찰하고 있는 ‘당신’의 시선이 교차된다. 베이비시터를 보고 있는 ‘여자’의 시선에 불신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여자’를 보고 있는 ‘당신’의 시선에도 불신이 가득하다. 「홀로, 코스트코」에서 주인공 ‘박규’는 이름 대신 불완전한 호명인 ‘너’로 불린다. 박규가 ‘너’라고 지칭되는 이유는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가짜 이미지들만을 빌려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선은 3차원적 시각을 통해 대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큐비즘’과 유사하다. 『모서리의 탄생』은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의 관계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을 보는 사람, 혹은 보는 사람 내부의 분열된 시선을 허용함으로써 이야기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것은 납작해져버린 타인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박인성 문학평론가)
『모서리의 탄생』은 고통의 지점들을 그려내고 있다. 사랑하는 딸을 잃고 북쪽의 가장 끝을 찾아가는 노인과(「극」) 스스로 실종을 선택한 아내와 아들의 흔적을 뒤쫓는 두 명의 화자(「미싱 도로시」) 등. 그러나 통증은 부위를 옮겨가거나 응축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맨 얼굴과 마주함으로써 비로소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된다. 이것이 신주희 소설이 세상을 향해 또렷한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이유이다.
작가의 말
나는 문득, 모서리 그 너머가 궁금했다.
타인의 상처를 목격하면서
나의 것과 다를 바 없는 슬픔을 가늠해보면서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어떤 마음이 생겨났다.
내 소설 속에서 상처는 극복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체념하고 탐구하는 대상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토록 불확실한 나의 소설은 순간순간 기쁘고 오래도록 아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