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못한 반쪽 인생들이 맞이하는 특별한 삶의 순간!
『머리검은토끼와 그 밖의 이야기들』은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변주하며, 소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최민우의 첫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진부한 현실 속에서 작은 틈새를 발견해내고, 그 틈새야말로 우리를 특별한 삶의 순간으로 데려다줄 유일한 가능성임을 이야기하는 여덟 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등단작인 《반ː》에서는 우연히 취직하게 된 ‘떴다방’(중년 여성들을 현혹해 물건을 비싸게 팔아치우는)에서 오래전 집을 나갔던 어머니(떴다방의 알선책인 거미가 되어 돌아온)와 재회하게 되는 ‘나’,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1인용 돈까스집에 그려진 가짜 문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레오파드》 등 모든 작품에는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반쪽짜리 인생들이 그려진다. 완벽하지 않은, 뭔가 부족한 듯한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강력한 실감을 느끼게 된다.
최민우
소설가, 번역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전문사 과정을 졸업하고 2012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머리검은토끼와 그 밖의 이야기들』과 장편소설 『점선의 영역』이 있고, 번역서로 『분더킨트』(니콜라이 그로츠니), 『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배크만), 『지미 헨드릭스』, 『폭스파이어 등이 있다. 제2회 EBS라디오문학상 우수상과 제3회 이해조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레오파드
[반ː]
머리검은토끼
이베리아의 전갈
달밤에 고백
코끼리가 걷는 밤
여자처럼
붉은 숲
해설_아무것도 아닌 자들의 특별한 삶_권희철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온전하지 못한 채로 절정인 것들,
반쪽짜리 인생들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순간!
최민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서 강력한 실감을 느끼는 이유는 완벽하지 않은, 뭔가 부족한 듯한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1인용 돈까스집에 그려진 가짜 문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레오파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덜컥 아이부터 임신한 의붓딸과 그녀의 남자 친구(머리검은토끼 록 밴드 그룹의 멤버)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한물 간 트로트 가수(「머리검은토끼」), 우연히 취직하게 된 ‘떴다방’(중년 여성들을 현혹해 물건을 비싸게 팔아치우는)에서 오래전 집을 나갔던 어머니(떴다방의 알선책인 거미가 되어 돌아온)와 재회하게 되는 ‘나’(「반ː」), 그리고 옛 애인이었던 민영이 과거에 후원금을 노린 부녀 사기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와 거리를 두려는 ‘나’까지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반쪽짜리 인생들이다. 하지만 반쪽과 반쪽이 만나서 완벽한 하나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다행이라면, 반쪽과 반쪽이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짜르르한 스파크가 우리를 권태로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점이다.
나는 열심히 길을 설명하는 어머니의 옆얼굴을 보았다. 명치와 심장 사이가 찌르르 흔들렸다. 그건 이 수첩을 채우는 동안 어머니가 겪었을지도 모를 이런저런 풍파에 대한 연민일 수도,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갖는 공감일 수도, 아니면 태어나서 처음 경찰서에 다녀온 충격의 여파일 수도 있었다. 역류성 식도염일 수도 있었겠지만. (……) 나는 고삐를 꽉 죄는 기분으로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 뒤를 따르며 환하게 웃었다. 고객은 소중하다. ([반ː], 63~64쪽)
평범한 삶 속에 숨겨져 있는
아주 사소하지만 특별한 비밀들
최민우의 특별함은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 ‘틈새’ ‘균열’을 예민하게 감각해내는 데 있다. 「레오파드」에 등장하는 비밀요원이 담당하는 사건들이라는 것도 사실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사연”들이다. “벽에 얼굴이 나타난다든가, 푸들이 홍수를 예언한다든가, 떨어져 살던 세쌍둥이가 한날한시에 앓아누웠다가 동시에 사망한다든가” 하는 일들도 “실제 밝혀지는 진상은 소설처럼 정교하지도, 경천동지하게 상식을 일탈하지도 않”(「레오파드」, 11쪽)는다. 하지만 비밀요원이 속한 협회의 신조처럼 “중요하지 않은 것이 중요”한 법. 이상해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정말이지 이상한 것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일 수 있다. 그러므로 진짜 중요한 비밀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고,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것들일 가능성이 크다.
D마트 익스프레스 정육 코너에서 일하는 ‘부용’이 가진 엄청난 비밀도 “누가 만져도 고기는 고기. 먹는 사람에겐 다 똑같은 것”(「여자처럼」, 188쪽)이라는 평범한 문장 속에 감춰져 있으며, 좀비로 변해가는 ‘나’에 대한 ‘피노’의 사랑도 치료약을 구하기 위해 사막을 건너는 동안 “고분고분” “내 뒤만 졸졸 따라”(「달밤에 고백」, 144쪽)오는 단순한 행위로만 표현되고 있다. 이처럼 최민우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순간들에도 아주 약간은 뜨겁고 짜릿하고 돌발적이고 슬프고 우스운 갈등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내고 있다. 이러한 미량의 짜릿함들이 모이고 모여 완벽하지 못한 반쪽 인생들이 “권태라는 질병에서 회복해 욕망-삶을 다시 일렁이게 만들 첫번째 파도를 예감하고, 특별한 삶의 순간”(권희철 해설, 「아무것도 아닌 자들의 특별한 삶」)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다 뜨겁고, 보다 짜릿하게.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한 편을 제외하고 2012년에서 2015년 사이에 발표되었다. 책으로 묶으면서 가필과 삭제와 수정을 했지만 몇몇 대목은 처음의 의도를 존중했다.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상상의 산물이며, 현실과 조금이라도 겹친다면 순전한 우연의 일치다. 전혀 겹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놀라운 우연의 일치다. (최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