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파괴해야 하는 두 남자와 두 여자!
《달을 쫓는 스파이》, 《바빌론 특급우편》의 작가 방현희의 소설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 2010년 여름부터 2011년 여름까지 계간 ‘작가세계’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가학과 피학의 성애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사랑과 욕망, 성애와 관련된 사회적 금기를 주로 다뤄온 작가는 더욱 은밀하고 강렬한 사랑의 방식을 짙은 농도로 그려냈다. 특유의 감각적인 언어로 방송국 PD 장, 프랑스인 마르셀, 일본인 마쓰코, 정신과 의사 정이라는 네 남녀의 섹슈얼한 관계를 파고든다. 네 인물의 성기의 모놀로그로 시작한 이야기는 각 인물이 서로 얽히는 ‘비정상적인 관계’를 따라간다. 작가는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그들의 관계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깊숙한 내면으로 들어가 비밀을 보여준다.
1. 마르셀 007P
2. 닥터 정 020P
3. 그 사람, 장 038P
4. 마쓰코 046P
―작가의 말 225P
『달을 쫓는 스파이』, 『바빌론 특급우편』 방현희 신작 장편
“한국소설에서 그동안 결핍된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일깨우는 감각의 향연”
결핍이 없으면 관능도 사랑도 없고, 이야기도 인생도 없다!
2010년 여름부터 2011년 여름까지 계간 『작가세계』에 연재된 방현희의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2002년『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로 제1회 『문학/판』 장편 공모에 당선된 작가 방현희가 4년 만에 내놓는 신작 장편소설이다. 사랑과 욕망, 성애와 관련된 사회적 금기를 즐겨 다뤄온 작가는 더욱 은밀하고 강렬한 사랑의 방식을 택해 더욱 짙은 농도로 풀어내고 있다. 전작 『바빌론 특급우편』에서 동성애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가학과 피학의 성애라는 소재를 전면적으로 취한다.
격렬한 한 순간의 깊은 교감, 그게 없다면 인간이 어떻게 살 수 있죠?
― 사랑하기 때문에 파괴해야 하는 사람들
남자, 장은 가학적 섹스 이외에는 사랑의 방식을 모른다. 장은 한국인 아버지와 그의 집안으로부터 핍박 받고 희생된 일본인 어머니를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이국의 여성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프랑스 여자 마르셀과 일본 여자 마쓰코는 위험한 사랑에 매혹되어 장과의 피학적 섹스에 빠져든다. 장은 그녀들을 사랑하고, 또 그녀들을 파괴한다. 마쓰코와 마르셀에게 장과의 정사는 끔찍한 고통인 동시에 저항할 수 없는 쾌감이다. 관계는 사랑과 학대의 임계점에 다다르고, 그녀들은 생사의 경계에 다가선다. 그저 타인과 오롯이 만나고 교감하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바치려 했을 뿐이다.
인물들이 맺는 관계는 파괴적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들의 관계가 ‘폭력적’이지만 ‘폭력’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마르셀과 마쓰코는 장과의 섹스에서 순도 높은 희열과 충족감을 느낀다. 작가가 묘사하는 이들의 성애 장면은 센슈얼하고 매혹적이며 우리가 욕망하는 내용과 닮아 있다. 각 장에서 화자는 인물들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그 깊숙한 곳에 감춰진 비밀을 독자에게 귀띔한다. 독자들은 어느새 그들의 위험한 비밀에 연루되어 있을 것이다.
국경이 낮아지고 넓어졌다고 믿은 건 환상일 뿐
― 가장 사적인 성애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그리다
피학적 사랑은 극도의 쾌감과 충족감을 주지만, 폐부를 찌르는 고통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쾌락의 전율이 영혼을 훑고 지나간 후에는 몸서리쳐지는 아픔을 다스려야만 한다. 그러나 정신과 상담진료에서조차 여성 환자는 남성 의사에게 얼마나 쉽게 성적으로 대상화되는지! 닥터 정이 그러하듯 의사 역시 자기 자신의 개인사와 트라우마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외국인과 내국인, 의사와 환자라는 관계 속에서 닥터 정은 스스로 장벽을 만들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한다. 장과 닥터 정은 잔혹한 가학자의 시선에 자신을 동일시하지만, 그로 인한 고통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자신이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며 타인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방현희는 개인들 간의 사적인 가학―피학의 관계를 한국 사회 내의 대중과 외부자가 형성하는 권력관계로 확장시킨다. 장이 두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다고 한다면, 이는 비단 장 개인의 특이점만은 아니다. 타 인종과 타 민족에 대한 편견은 한 집단을 새디스트로 만들 수도 있다. 소설에서 두 여성은 일본인이기 때문에,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 사회 내에 살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여자이기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가학적 집단무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언론과 대중매체일 것이다. 외국인을 등장시키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마쓰코가 사이버 테러의 표적이 되듯이 우리는 늘 밟고 올라설 누군가가 찾는다. 그를 밟고 올라선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해줄 누군가를. 너와 나는 몸을 섞지만 하나가 될 수 없고, 외국인은 정착하지 못하고 언제나 이주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