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사랑, 상처, 그리고 윤리적이지 않은 인간의 이야기
결핍된 자아와 불완전한 인간의 사랑을 탐구해온 소설가 김이정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저자는 이 책에 달린 작품들을 통해 하나의 상처가 다른 상처를 만나 어떻게 또 다른 상처가 되는지, 다시 상처와 상처가 만나 어떻게 사랑을 이루는지 보여준다.
저자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독하게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기애에 빠져 있다. 상처받은 인물들의 자기애 옆에는 언제나 자기혐오도 도사리고 있는 법. 하지만 이들은 결코 생의 의지를 내려놓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정확히 직시하고, 그 상처를 자신의 일부로 인정한다. 치료의 마지막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 하지만 그 사랑은 타인이 아닌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사랑이다.
이 책에는 실종된 아버지가 기거하는 방을 관찰하면서 ‘아버지’를 하나의 실존적 존재로 인정함으로써, 아버지였던 한 인간 ‘남자’를 새롭게 발견하고 이를 통해 성숙해진 화자 ‘자신’을 재발견하는 표제작 「그 남자의 방」을 비롯하여 7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김이정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문화일보에 단편소설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소설집으로 『도둑게』, 장편소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와 『물속의 사막』이 있다.
1960년, 산으로 둘러싸인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외국처럼 낯설던 제주도와 저녁이면 온 하늘이 홍시처럼 붉어지는 충청도 바닷가를 두루 뛰어다니며 자란 것을 큰 축복으로 생각한다. 서울에 올라온 후, 더 이상 뛰어놀 데가 없어 들어간 마을문고에서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보며 세상에는 아이들만을 위한 책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 책들을 읽으며 내가 커서 작가가 될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1. 유인 김소희전
2. 그 남자의 방
3. 검은 강
4. 꽃 진 자리
5. 능소화
6. 장마
7. 빈방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너를 품은 나’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보다 성장한 자신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을 통해 우리가 발견한 것은 타인이 아닌 자신이다
장편소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물속의 사막』 소설집 『도둑게』를 출간하며 결핍된 자아와 불완전한 인간의 사랑을 탐구해온 소설가 김이정의 두 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이번 작품집을 통해 하나의 상처가 다른 상처를 만나 어떻게 또 다른 상처가 되는지, 다시 상처와 상처가 만나 어떻게 사랑을 이루는지 보여준다.
표제작인 「그 남자의 방」에서는 ‘상처와 사랑의 변증법’적 관계가 두드러지게 그려지고 있는데, 소설의 화자는 실종된 아버지가 기거하는 방을 관찰하면서 ‘아버지’를 하나의 실존적 존재로 인정함으로써, 아버지였던 한 인간 ‘남자’를 새롭게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성숙해진 화자 ‘자신’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라이터 불빛 하나로 견고한 적막이 깨진다. (……) 입고 있던 옷이라도 터진 건지 그가 내복 빛깔의 옷을 들고 바느질을 하는 모양이다. 실을 너무 길게 꿰었는지 손놀림이 크고 느리다. 한 땀 한 땀 떠가는 손길이 더없이 신중하고도 정성스럽다. 그의 시선과 바느질감이 한 몸이라도 이루듯 빈틈없이 몰두해 있다. 어떤 누구라도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바느질 하나에도 저토록 자신의 전부를 던져 하나가 될 수 있다니. 나는 그의 바느질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어느덧 그에게 바느질은 책상 앞에 앉아 종일 꼼짝하지 않고 책을 읽던 모습이나 홀로 술을 마시던 모습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는 늘 홀로 있지만 정부와 틈 하나 없이 포개져 있는 사내처럼 충만해 보인다. 고독하지만 외로워보이진 않는다.
– 「그 남자의 방」 중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관계, 작가 김이정은 사랑과 상처와 같은 소재들을 일상적이기 않은 관계 속으로 투척해 인간의 좀더 내밀한 모습들을 탐구한다.
이미 죽어 영혼이 되어 자신이 살았던 집을 마지막으로 둘러보는 망자의 시선에서 서술되고 있는 작품인 「유인(孺人) 김소희전」은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김소희라는 여인의 삶을 회고하면서, 그 절제된 여자의 삶 속에 피어났던 내밀한 감정들을 조용히 개화(開花)시킨다.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나고부터 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른 명태만 같던 내 몸에 갑자기 물줄기가 생긴 것 같더구나. 몸 구석구석으로 물길이 생겨서 어디든 촉촉해지는 기분 말이다. 누가 잠시 건드리기만 해도 물줄기가 툭 터져버릴 것처럼 찰랑찰랑해지고 아슬아슬해지는데……. 어느새 내 몸은 오월 산천의 나뭇잎들처럼 싱싱하고 파들파들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마음속에 그 사람을 품고 살기 시작했다.
– 「유인 김소희전」 중에서
부모의 일방적인 통첩에 따른 결혼 후에, “일 년에 서너 번 무슨 철마다 옷 바꿔 입듯” 치러야만 했던 남편과의 고통스런 합방, 식모이거나 유모, 때로는 집안에 놓인 물건 취급을 받으면서도 “웃어른들 잘 섬기고 남편 공경하고 조상 제사 잘 지내는 게 최고의 덕”인 줄 알고 살아온 김소희에게 새로운 사랑의 발견은 새로운 세계의 탄생과 같았다.
그러나 ‘유인 김소희’는 결코 그 사랑을 표현하거나 그 사랑을 따라나서지 않았다. 누구도 그녀의 사랑을 지켜줄 수 없다는 것을, 아니 자신 스스로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일까. 김소희는 이 사랑에서 상대방마저 지워낸다. 자신이 만든 환상에 스스로의 사랑을 가두어두고 짝사랑의 고통과 희열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사랑에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에게 그 사랑은 충분히 자족적인 것이었으며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눠가질 수 없는 나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그녀가 새롭게 발견한 것은 그가 아니라 사랑하고 욕망하는 그녀 자신이었으며, 그녀가 진정 사랑한 것 역시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었으니 그것은 타인과 나눠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에는 파국도 없다.
▶상처는 어떻게 사랑이 되는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지극한 사랑은 기껏해야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김이정 소설의 인물들 역시 한결같이 지독한 자기애에 빠져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상처받은 인간들의 자기애 옆에는 언제나 자기혐오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면 타인을 사랑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내 안의 설움에만 갇혀” 이들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다. 상처는 상처와 만나 그렇게 상처가 된다.
그러나 아무리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도 김이정 소설의 인물들은 결코 생의 의지를 내려놓지 않는다. 하여 ‘그녀’들은, 끊임없이 병을 앓으면서도 앓고 있는 자신과의 거리 또한 확보한다. 상처를 들여다보는 이들의 집요한 시선은 환부를 가르는 날카로운 메스와도 같다. 연민과 혐오의 양극을 오가던 상처받은 내면은 수술대의 환한 조명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녀의 수술은 환부를 잘라 내거나 병의 뿌리를 도려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성형수술로 상처의 흔적을 깔끔히 지우는 것도 그녀의 방법이 아니다. 자신의 상처를 정확히 직시하는 것, 하여 그 상처를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그녀의 치료는 시작된다. 치료의 끝은 물론 사랑이다. 그러나 타인을 사랑할 때조차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자신의 내면을 향한다. 그녀는 아직 자기를 찾아가는 길 위에 있고 그녀가 사랑하는 ‘그’(녀)들 역시 여전히 길 위를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틈 하나 없이 완벽하게 하나로 포개지는 둘’은 그러므로 애초에 불가능한 꿈이다.
그러나 계속 걸어가다 보면 길은 결국 길과 만나게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일까. 그 길에서 그녀들이 마침내 대면하는 것은 여전히 ‘너’가 아니라 ‘나’이지만, 「그 남자의 방」은 그 때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네가 죽어도 내 설움에 우는 나’가 아니라 ‘나와 똑같은 상처를 가진 너를 품은 나’, 상처는 상처와 만나 그렇게 사랑이 된다. 불완전한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이다.
▶작가의 말
힘든 시기를 지내다보니 내게 문학이 있다는 게,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나는 힘들 때마다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으로 가곤했다. 소설을 쓰다보면 세상은, 현실은 어느새 내 몸에서 저만치 떨어져 나가 내 일이 아닌 양 거리감을 갖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모든 게 가벼워지고 만만해지고 견딜 만해졌다. 가끔씩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짜릿하기도 했다. 모험의 길을 떠난 돈키호테라도 된듯했다. 문학의, 소설쓰기의 힘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한때 소설을 쓰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노라 큰소리쳤던 나의 오만이 부끄럽기만 했다.
그리하여 이 소설들은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써진 것들이다. 쓸 때는 잘 몰랐지만 모아놓고 보니 그 지형이 명백해 보인다. 죽은 노파의 넋을 통해서도, 고독한 장년의 남자를 바라보면서도, 히말라야 계곡의 강바닥을 걸으면서도, 사랑에 빠진 여자, 사랑을 잃은 여자들을 이야기하면서도 나는 결국 세상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토록 이기적인 글쓰기라니! 하지만 한편으론 이 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지 않은가 생각한다. 소설이 위로해주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얼마나 더 황량했으랴!
이제 내가 받은 위로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안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소설을 쓰면서 내가 받은 큰 위로가 이 세상 구석의 어떤 이에게 전해져 작은 위안이라도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추천사
처음 만났을 때, 아직도 홍안이듯 처녀의 붉은빛이 두 뺨에 감돌던 서른 어름의 김이정이 어느새 오십을 바라보는 모양이다. 하기는 그녀의 나이를 헤아리는 나 또한 육십을 훌쩍 넘은 노년이 되었으니,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놀라는 모양새다. 그러나 김이정이 놀라운 것은 어디 나이뿐이랴. 그녀는 오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는 인생을 제대로 살아낸 여인으로서의 성숙한 기품과 사물의 안까지 낱낱이 헤아리는 혜안의 붉은빛이 은은히 빛나고 있다. 소설집 ‘그 남자의 방’에는 그녀의 오십의 아름다움이 때로는 쓸쓸하게, 때로는 죽어 망자가 되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중음신으로, 때로는 흥건한 눈물로, 때로는 깊은 성찰로, 때로는 끝간데 없는 나락의 밑바닥에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늦가을의 축제처럼 저 혼자 깊고 그득하게 차올라 황홀한 잔치를 벌이니 그녀의 삶과 문학이 함께 어울려 끝내 나를 눈멀게 한다.
소설가 송기원
여기 종소리처럼 여운이 긴 소설이 있다. 위태로운 일상을 이어가는 여자의 내면은 지극히 고독하고 고뇌에 차 있다. 우리로부터 멀리 있었던 그녀의 내면이 우리의 내면과 다시 일치하는 시간이 온다. 깊숙이 파고드는 상처의 실체는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었음을 『그 남자의 방』은 조용히 타종한다. 김이정 소설의 종이 우리의 내면을 울리는 시간이다.
소설가 백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