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인간의 모습과 암울한 세상에 대한 인식의 발견!
일상을 균열시키는 치명적인 비밀을 간직한 아홉 편의 이야기를 통해 완전히 복구될 수도, 애도될 수도 없는 암울한 세계를 공포스럽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개들이 식사할 시간』. 다양한 이야기 문법과 플롯을 활용한 폭넓은 스펙트럼과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는 강지영이 《굿바이 파라다이스》 이후 8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소설집이다.
그동안 선보인 장편소설에서 돋보였던 흡입력 강한 스토리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단편이 가지는 응집된 이야기의 밀도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저자는 단편들마다 ‘비밀’을 깔아두어 서스펜스를 유발하는데, ‘비밀’을 밝히는 데 집중하는 듯 보이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철저히 독자의 기대를 배반함으로써 더 큰 충격과 놀라움을 준다.
강지영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파주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 첫 소설인 『굿바이 파라다이스』에서 인간의 가장 깊숙한 감정까지 자극하는 중독성 강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여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미스터리, 스릴러, 판타지,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소설집 『굿바이 파라다이스』, 『개들이 식사할 시간』, 장편소설 『신문물 검역소』 『심여사는 킬러』, 『엘자의 하인』, 『프랑켄슈타인 가족』, 『하품은 맛있다』, 『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페로몬 부티크』 등을 냈다. 어린 시절 바람대로 소설가가 되었고, 지금의 바람처럼 아주 오래도록 소설가로 기억되고 싶다.
개들이 식사할 시간
눈물
거짓말
스틸레토
사향나무 로맨스
키시는 쏨이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허탕
있던 자리
해설|강지영이라는 고유명_박인성
작가의 말
누설할 수 없는 비밀과 험담이 일렁이는
비정한 세계를 관통하는 서늘한 상상력
『개들이 식사할 시간』의 단편들은 비밀스러우면서 충격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작 「개들이 식사할 시간」에서도 주인공 ‘나’(이강형)는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부고에 석연치 않음을 느끼고 고향을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마을의 잠재적 범죄자, 타자, 불가촉천민이 된 ‘장갑 아저씨’(이창갑)가 오랫동안 어머니의 동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장갑 아저씨’가 기르는 개에게 목덜미가 물리는 끔찍한 보복을 당하면서 ‘나’가 깨닫게 된 것은 오로지 자신들밖에 모르는 마을 사람들 전체의 비정함이다.
“하고많은 개들 중에 왜 이놈만 살아남았는지 알아요? 이놈은 지가 개새끼인 걸 너무 잘 알아요. 사람 새끼인 척 아양 떨면서 손바닥 핥는 다른 놈들하곤 질적으로 다르더라니까요. 곧 죽게 생긴 놈이 배고프다고 지 마누라 노릇하던 암컷도 잡아먹은 놈이에요. 개가 개같이 굴어야지 정승처럼 굴면 그것도 참 숭해요. 난 그래서 이놈이 좋아요.” (「개들이 식사할 시간」, 40쪽)
이러한 비밀은 「스틸레토」에도 잠복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해파리처럼 소멸과 재생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혜림’과 해파리가 재생할 수 있도록 돕는 바위 역할을 하는 ‘나’가 등장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 해파리한테 가장 소중한 건 뭐라고 생각해? 먹이나 애인? 동료나 가족? 어쩌면 필요할 때 달라붙을 수 있는 바위가 아닐까.”(123쪽) 하지만 「스틸레토」는 영원히 죽지 않는 이종의 생명체인 ‘혜림’에 관한 비밀과 그녀를 자신의 아들에게 양도하지 않기 위해 끔찍한 살해 계획까지 세우는 ‘나’의 이야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다. 결코 누설할 수 없는 비밀에는 ‘혜림’을 이용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추악한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해파리가 끝없이 재생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바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의 연막 아래에서 먹이를 구하는 물고기들. 대를 이어 아주 천천히 해파리 독에 면역을 쌓아온 어떤 이들. 그들의 생존욕구가 해파리의 재생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스틸레토」, 128쪽)
참혹한 현실에 감춰져 있는 비밀과
기대를 뒤흔드는 충격적인 결말
이처럼 『개들이 식사할 시간』에서 강지영 소설가는 단편들마다 ‘비밀’을 깔아두어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작가는 ‘비밀’을 밝히는 데 집중하는 듯 보이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철저히 독자의 기대를 배반함으로써 더 큰 충격과 놀라움을 준다. 「눈물」이라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세번째 눈에서 눈물 대신 영롱한 보석이 떨어지는 소녀는 그 특별한 능력으로 인해 마을 전체의 생존을 책임지게 된다. 더 많은 눈물을 뽑아내기 위해 ‘매질을 당하고, 생니를 뽑히는’ 학대를 받으며 마을에서 철저하게 괴물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소녀’는 외부에는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되는 마을 전체의 ‘비밀’로 부쳐진다. 이러한 마을 사람들의 탐욕스러움은 외부에서 들어온 카메라 기자에 의해 들통이 나고, 그의 도움으로 소녀는 무사히 마을을 탈출하게 된다.
카탈로그 17페이지 속 세상도 한량골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거울에 비친 세번째 눈이 고통에 일그러진 소녀를 무심히 바라보며 의뭉스럽게 번들거렸다. (……) 면도기를 타일 바닥에 내려놓고 슬리퍼로 대가리 부분을 짓뭉갰다. 그러자 면도날을 감싼 가느다란 플라스틱 조각들이 깨져 나갔다. 소녀는 수돗물을 틀어 면도날을 헹궜다. 억세고 숱 많은 속눈썹 아래 크고 짙은 눈동자가 포위된 동물처럼 꿈틀거렸다. (「스틸레토」, 72쪽)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기자마저 소녀를 이용하기 위해 도시로 데려왔을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소녀가 자신의 세번째 눈을 스스로 뽑아버리는 기대 이상의 충격을 준다. 그것은 단순히 ‘공포’와 ‘충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정한 인간의 모습과 암울한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개들이 식사할 시간』의 작품들이 서늘한 온도를 지닌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해설
『개들이 식사할 시간』의 이야기 골격은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소설들에서 드러나는 이야기의 힘은 그러한 수법을 비틀어 보다 강한 놀라움을 주는 방식에 있다.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비밀’을 깔아두고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데 충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기대 이상의 전개를 통해 놀라움을 준다. 따라서 다소 비극적인 결말처럼 보이지만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무정한 인간에의 발견, 세상에 대한 암울한 인식을 수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끝맺음’을 넘어서는 돌발성을 통해 독자를 동요시킨다.
_박인성 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기실 내 소설 밑천은 언제나 할머니였다. 전업 작가로 10년을 버텨낸 건 오로지 할머니의 기억과 어휘를 야금야금 파먹으며 시치미 뚝 떼고 원고지에 무탈하게 옮겨낸 덕이었다.
아마도 작가 후기에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독자들에게만 마지막일 뿐, 나는 그녀의 삶이 끝날 때까지 곁에 붙어 앉아 열심히 주워듣고 집어삼키며 내 이야기의 밑천을 보존할 터이다. 그리하여 나도 내 글을 읽는 당신의 든든한 밑천이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