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끝나지 않는 뜨거운 여름, 너와 나의 소중한 방학 이야기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8권, 『한 여름 방학의 꿈』이 출간되었다. 『한 여름 방학의 꿈』은 『3월 2일, 시작의 날』에 이은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시리즈 속 시리즈,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여름 방학이라는 하나의 시간적 배경에서 19살 청소년들에게 일어나는 신비롭고 혼란스러우며 가끔은 희한한, 하지만 언제나 다정한 짧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는 청소년과 성인에게 있어 ‘특히 의미 있는 날’, 혹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날’에 벌어지는 일들을 호러, 스릴러, SF, 리얼리즘 등의 다채로운 장르로 경험해볼 수 있는 신선하고 색다른 기획이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든 독자가 공감하며 읽을 수 있도록 청소년문학 작가와 성인문학 작가가 한 주제에 함께 참여하는 구성 방식을 택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시리즈에서 나온 앤솔러지들은 물론,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앤솔러지들과도 명확한 차별점을 두었다. 2024년 1년 동안 남은 두 계절(가을, 겨울)에 어울리는 두 권의 소설집이 더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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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
검고 푸른 별에서 함께 나누는 여름의 다섯 가지 순간
여름 방학은 언제나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이벤트다. 비록 길이가 많이 짧아지긴 했지만, 공부에서 합법적(?)으로 놓여날 수 있는 때이기에 여름이 시작되면 모든 청소년이 여름 방학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 간절한 바람 때문인지 여름 방학에는 흔히 겪을 수 없는 신기한 사건이 벌어지곤 한다. 아이와 성인의 경계에 서 있는 19살 청소년들, 고등학교 3학년들은 이 특별한 기간을 어떤 기분으로 맞이하고, 또 떠나보낼까? 이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앤솔러지 『한 여름 방학의 꿈』은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자 우리의 ‘여름’을 책임져줄 책이다. 무채색의 일상에서 완전히 색다른 세계를 이끌어내는 작가 이유리, 『우리는 마이너스 2야』로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가 전앤이 시원함과 따스함이 잘 어우러진 단편들로 그 문을 연다. 뒤를 이어 SF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남세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자이자 베스트셀러 『오즈의 의류수거함』의 작가 유영민이 지친 청소년들의 마음을 조용히 토닥인다. 마지막으로 ‘호러 소설의 황태자’로 불리는 소설가 전건우는 뜨거운 여름의 온도를 으스스한 이야기로 차분하게 식혀준다.
첫 번째 단편인 이유리 작가의 「선물은 비밀」은 주인공이자 외계인인 ‘나’가 차원 이동 문을 타고 지구로 출발하며 시작한다. ‘나’는 범우주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에브리싱>에서 지구인 ‘서윤’과 친구가 된다. 물론 ‘나’가 외계인이라는 것은 비밀이기에, 서윤은 ‘나’를 서울에 사는 고등학생 ‘김예은’으로 알고 있다. 서윤은 마지막 여름 방학을 맞아 서울에 잠깐 올라간다며 ‘나’에게 얼굴을 보자고 하고, ‘나’는 드디어 그토록 궁금해했던 서윤을 실제로 만나게 된다. 이 단편은 ‘나’와 ‘서윤’이 주고받은 선물의 내용물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일의 ‘과정’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를 되새기게 되는, 그저 몽글몽글하지만은 않은 판타지 소설이다. 독자들은 「선물은 비밀」을 읽으면서 서윤이 왜 선물을 받고 ‘나’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했는지, 서윤이 정말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을 정확히 이해해 주는,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미소 짓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가슴 떨리도록 기뻤다. 나도 그래. 나도 정말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 그리고 너와 더 이야기하고 싶어. 우리가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해,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_본문 중
전앤 작가의 「여름밤의 초대장」은 아빠의 빚 때문에 집안이 망해 살던 집에서 쫓겨난 후, 고등학교 졸업을 위해 여름 방학 첫날부터 혼자 자취를 하게 된 주인공 ‘보리’의 성장담이다. 전에 살던 집과 너무나 다른 자취방의 환경에 적응하려 애를 쓰던 보리는 얼결에 초대한 적 없는 이상한 손님 ‘김소민’을 맞이하고, 그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점차 김소민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자들은 그런 보리의 모습에서 예고 없이 찾아온 불행을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하는 법과, 깊은 골짜기에 빠졌을 때 반갑지 않은 그 시간을 슬기롭게 통과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다.
귀를 냉장고 가까이에 바짝 가져다 댔다. 그리고 옆집이나 천장 쪽이 아닌, 냉장고 소리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꾸르륵. 냉장고가 신호를 보내왔다. 너도 배고프니? 꾸르륵. 텅 비어 있기는 해. 꾸르륵. 냉장고는 말이 많았다.
_본문 중
또 다른 세상에 또 다른 여름이 있더라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우리의 찬란한 이야기들
세 번째 단편인 남세오 작가의 「비와 번개의 이야기」에서, 공부에 시달려 온 고3 ‘유진’과 ‘주혁’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단 5일간의 여름 방학을 즐기기 위해 대전으로 여행을 떠난다. 일주일 내내 폭우와 번개가 계속될 거라는 예보에도 포기하지 않고. 대전에 도착한 후, 예상치 못한 우연이 계속 겹치면서 유진은 여러 차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성심당에 가려고 ‘비와 번개의 세계’에서 가출해 우리의 세계에 온 ‘케일’은 선택하는 일을 “즐겁다”라고 표현한다. 그 말을 들은 유진은 지금까지 괴롭다고만 생각했던 ‘선택’ 속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 또한 유진과 마찬가지 고민하지 않고 남들이 닦아놓은 편안한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좋을까, 치열하게 고민해 직접 선택한 결과를 즐기는 편이 좋을까? 우리가 어느 쪽을 고르든, 강력한 힘을 가진 비와 바람과 번개가 그 선택을 응원해줄 것이다.
“그래요. 삶이란 때로는 잔인하죠. 인정해요. 하지만 선택은 언제나 고민한 시간만큼의 보답을 돌려줘요. 선택에 대한 보상은 선택 그 자체로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선택에 들인 시간으로 주어지죠. 그러니 선택이란 언제나 즐거운 거고요.”
_본문 중
유영민 작가의 「엘리자베스 칼라」는 보호 종료 아동이자 혼혈인으로서 수많은 차별 속에서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주인공 ‘P’와 죽음을 꿈꾸는 은둔형 외톨이 ‘데릭’이 서로의 힘듦을 공유하며 조용히 둘만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리얼리즘 소설이다. 보호 종료 아동의 실태를 접한 후 충격을 받았다는 저자는 이 단편을 발판 삼아 차분하고 세심한 목소리로 그들을 포함한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엘리자베스 칼라’를 쥐여준다. 그들이 더 이상 상처의 기억을 핥으며 고통을 되새기지 않도록 다정하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깊은 외로움이 들어찬 그들의 삶에 ‘희망’이라는 따스한 빛을 비춰준다.
성역이란 뭘까.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마음의 영역쯤으로 정의하면 될까. 어쩌면 엘리자베스 칼라와 비슷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데릭과 나는 서로에게 그것을 공개한 걸까. 어느새 우리는 상대방의 성역에 발을 들인 걸까.
_본문 중
앤솔러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전건우 작가의 「그날 밤, 우리가 갔던 흉가」는 세 고등학생이 온갖 흉흉한 소문의 근원지인 학교 근처 폐가를 탐험하는, 본격 대학교 합격 기원 흉가 체험담이다. 살아 있는 무언가가 나와도 무섭고 죽은 누군가가 나와도 무서운 기묘한 공간에서 “귀신의 힘이라도 빌려서 원하는 대학교에 가겠다”라는 K-고등학생의 패기는 과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발을 디디고 만 흉가에는 정말로 귀신이 있는 걸까? 실화를 듣는 것 같은 생생한 묘사와 이야기 마지막의 분위기를 더욱 오묘하게 만드는 메타픽션적 대사까지, 긴 여름밤, 손에 땀을 쥐며 책에 빠져들기 제격인 단편이다.
“동민아, 아주 오랫동안 버려진 채 방치된 물건이나 장소에는 귀신이 머문단다. 그러니 그런 건 건드리지도 말고, 그런 곳 근처에 가지도 말아야 해.” 미안해요, 할머니. 나, ‘그런 곳’에 오고 말았어요.
_본문 중
여름 방학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년 돌아오지만 이번 여름의 여름 방학은 단 한 번뿐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 순간을 그려낸 다섯 가지 이야기가 담긴 이 책, 『한 여름 방학의 꿈』을 읽는 모든 독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푸르른 여름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이 여름이 지나면, 분명 우리는 어딘가 달라져 있을 테니까.
보리가 이사한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인생의 한 구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그래서 초대장을 손에 쥔 보리가 어디로 나아갈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어떤 소설은 끝이 났는데도 다시 시작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_전앤,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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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남세오 평범한 연구원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문득 글을 쓰게 되었다. 온라인 플랫폼 브릿G와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노말시티’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SF 소설집 『중력의 노래를 들어라』와 청소년 SF 소설 『너와 함께한 시간』 『너와 내가 다른 점은』 『기억 삭제, 하시겠습니까?』를 출간했다.
유영민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장편 소설 『오즈의 의류수거함』 『헬로 바바리맨』 『화성의 시간』을 출간했고, 참여한 소설집으로 『십대의 온도』 『마구 눌러 새로고침』 『친구의 친구』가 있다.
이유리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집 『브로콜리 펀치』 『모든 것들의 세계』 『웨하스 소년』, 연작 소설집 『좋은 곳에서 만나요』 등을 펴냈다.
전건우 2008년 단편 소설 「선잠」으로 데뷔한 후 지금까지 여러 권의 장편 소설과 다수의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 『밤의 이야기꾼들』 『소용돌이』 『고시원 기담』 『살롱 드 홈즈』 『마귀』 『뒤틀린 집』 『안개 미궁』 『듀얼』 『불귀도 살인 사건』 『슬로우 슬로우 퀵 퀵』 『어두운 물』이 있다.
전앤 『우리는 마이너스 2야』로 사계절문학상을, 『러브 피프틴』으로 교보문고*롯데컬처윅스 스포츠 테마 소설상을 수상했다. 소설을 읽다 멈추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 순간을 붙잡아 긴 이야기를 쓴다. |
차례 | 이유리_선물은 비밀
전앤_여름밤의 초대장 남세오_비와 번개의 이야기 유영민_엘리자베스 칼라 전건우_그날 밤, 우리가 갔던 흉가 |
책 속에서 |
매번 우편함을 확인하며 편지로 이어 가던 대화가 채팅으로 바뀐 것은 금방이었다. 서윤과 나는 <월드 오브 에브리싱> 안에 있는 작은 호숫가에서 만났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귓속말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왠지 그땐 그러고 싶었달까. 서윤의 캐릭터와 내 캐릭터는 호수를 바라보며 들판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요즘의 관심사와 고민에 대해서 그리고 서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_16쪽
아직은 말해 줄 수 없지만, 분명 내 선물도 서윤의 마음에 쏙 들겠지. USB를 열어 보고 기뻐 날뛸 서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각자 집에 돌아가 게임에서 다시 만나면 선물에 대한 감상을 들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곧 있을 이별도 크게 섭섭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래, 지구에서는 어렵겠지만 게임 속에서 또 만나면 되니까. 언제든지 그럴 수 있을 테니까. _35~36쪽
너는 쓰레기통, 나는 김보리. 엄마는 널 닦아 주겠지만 나는 그러기 싫거든. 쓰레기통을 닦는 건 말이 안 돼. 이제부터 우린 적응해야 해. 더러워진 쓰레기통에서 그만 눈길을 돌렸다. 현관에 내 신발만 덩그러니 있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신발장을 열어 엄마 아빠의 신발을 한 켤레씩 꺼내 놓았다. 신발들은 어딘가로 떠날 것 같기도 했고 막 도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_49쪽
나만 김소민의 번호를 알고 있다. 이대로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비밀번호를 다시 김소민의 번호로 돌려놓았다. 천천히 그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조명 아래에서 도는 공기가 기묘하게 느껴졌다. 방 한가운데 섰다. 이 공간에서 김소민은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김소민의 모습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어떠한 것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_71쪽
일단 결심하고 나니 이 여행이 나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이건 내 인생의 갈림길이다. 스스로 삶을 개척하느냐, 아니면 영원히 목줄에 묶여 끌려다니느냐가 걸린 문제다. 장마? 폭우? 이건 내 의지를 시험하기 위한 운명의 장난이다. 여기서 질 수 없다. 무조건 떠난다! “부모님이 허락 안 해 주면 가출하지, 뭐.” “가출 좋아하네.” _87쪽
[여기는 어떻게 오신 건가요?]
성심당이 우리가 찾아가던 빵집의 이름이라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처음에는 소환사의 협곡에 있는 사원 이름인 줄 알았다. _108쪽
나는 괜찮다. 부모님께 혼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케일은 어떻게 될까. 경찰서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데 번쩍! 번개가 쳤다. 북쪽이었다. 번개가 내리꽂히던 탑이 떠올랐다. 케일은 특별한 번개가 있다고 했다. 같은 장소에 계속 떨어지는 번개. 그 번개를 타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를 뒤따라온 차에서 케일이 내렸다. 경찰 두 명에게 양팔을 붙잡힌 채였다. “케일!” _127쪽
집을 향해 걷는다. 고층 빌딩 사이, 조각난 하늘에 보잉 747기가 날아간다. 선 캡을 쓴 여자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붙잡는다. 헌혈 좀 하고 가세요. 도로에서 자동차가 울린 경적이 크게 들려온다. 배달 가방을 실은 오토바이가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간다. 자동차는 법으로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검은색과 흰색, 은색이 대부분이다. P는 누군가가 예전에 한 말을 떠올린다. 한국 사람들은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차를 살 때도 유채색은 고르지 않지. 그런 색은 중고차 시장에 내놓을 때 불이익을 받거든. _145쪽
사진이라도 찍어 줄까? 데릭의 권유에 P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진작부터 다른 관람객들처럼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휴대폰도 없고 카메라도 없는 자신의 처지로서는 그럴 수 없다. 물끄러미 P를 건너다보던 데릭은 후드 티 앞주머니를 뒤적인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며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제안한다. P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해바라기밭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며 그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고 이상해 자꾸만 웃음을 흘린다. _169쪽
가까이서 올려다본 그 집은 그야말로 살벌했다. 평범한 폐가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눈에도 섣불리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될 곳으로 보였다. 모조리 깨진 창문 사이로 어둠이 흘러나왔다. 그랬다. 집은 지독한 어둠을 내뿜고 있었다. 창문이 뻥 뚫린 눈처럼 보였다. 시커멓고 커다란 눈. “이건 폐가가 아니라 흉가 수준인데…….” 경수가 말했다. “그, 그러니까 더 신빙성 있잖아. 귀신 나온다는 거.” “넌 참 긍정적이라서 좋아.” _182쪽
“어쨌든 이 정도에서 끝나서 다행이야.” 경수가 나를 달랬다. “날 봐. 이게 다행이야? 나 진짜 죽을 뻔했다니까!” 나는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악취를 풀풀 풍기며 흠뻑 젖은 채로 있다 보면 누구든 화가 나기 마련이다. “그래도 안 죽었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경수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대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한마디를 했기 때문이었다. “……저거 보여?” 그 목소리가 무척 낯설게 들렸다. 나와 경수는 대호가 가리키는 곳으로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_20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