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씩씩하게 우리를 지킬 수 있다고 낙관하는,
일하는 여성의 마음
조우리 소설집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획이다. 그 여섯 번째 작품으로 조우리 작가의 『팀플레이』가 출간되었다. “퀴어, 노동, 여성에 대한 확고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금의 여성 청년이 처한 현실을 단정하고 산뜻하게 그려”내며 “숨쉬기가 편안”한 “잘 읽히되 멈춰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정세랑 소설가)이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는 첫 소설집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 이후 두 번째 소설집이다.
조우리 작가는 이번 소설집 『팀플레이』에서 역시 직장인 여성의 삶을 리얼하게 포착해낸다. “당연하게도 일하는 여성으로 살면서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썼다”는 에세이에서 엿볼 수 있듯, 작가는 직장 생활을 하며 실제로 일어날 법한 현실 밀착형 디테일과 심리를 세심하게 그려내며 이 사회에서 그럼에도 씩씩하게 우리를 지킬 수 있다고 낙관하는, 일하는 여성의 마음을 담아낸다. 『팀플레이』는 생활을 해내며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건네는 산뜻하고 단정한 이야기이자, 힘이 부칠 때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는 사려 깊은 언니의 소설이다.
언니의 일
팀플레이
우산의 내력
에세이 쓰지 않는 일에 대해 쓰는 일
해설 좋은 사람 되는 방법 _선우은실
이토록 현실에 맞닿은
지금 여기의 인물들
“내가 만난 수많은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서늘한 스릴러를 연상케 하는 「언니의 일」에서는 직장에서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은희’가 등장한다. 후배 ‘다정’의 우연한 연락을 계기로 옛 직장 동료들과 만나면서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은희는 회사에서 좋은 사수이자 언니가 되고자 하는 욕망 혹은 강박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왜곡된 기억을 지니며 물색없이 행동한다. 은희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결국 은희를 믿을 수 없게 되는데, 소설은 촘촘한 구성으로 빛나며 이토록 현실에 맞닿은 인간상을 치밀하게 구현해낸다. 「우산의 내력」 역시 직장인들이 품을 수밖에 없는 온갖 미묘한 마음들을 찬찬하게 담아낸다. ‘희진’은 인턴 ‘지우’에게 좋은 직장 상사이다. 이는 희진이 과거 사수였던 ‘양민지’를 타산지석 삼은 덕분인데, 그 시절 희진은 매일같이 야근을 하면서도 자주 나무람을 들어야 했다. 그때의 궁벽한 처지와 마음은 비 오는 퇴근길 건물 틈새에서 우연히 본 우산 아래에 있던 사람과의 에피소드와 맞물리며 섬세하게 형상화된다.
우산 아래에 있던 사람.
그가 바로 그 검은 장우산을 착, 접어서 입구의 우산꽂이에 꽂았다. 그러고는 희진이 앉은 건너편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판도 보지 않고 코다리 정식을 시켰다. 코다리 정식은 25000원인데!
(……)
그때 희진은 자신이 먹는 속도를 조절하는 이유가 저열한 호기심 때문이라는 것까지는 몰랐다. 그 사람이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걸, 분명 그때 어떤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알았더라면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섰을 것이다. (93~94쪽)
사회라는 거대한 공동체,
오직 나만을 위해서는 하지 않을 선택도 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표제작인 「팀플레이」는 적극적인 실천이 드러나는 소설이다. ‘지연’과 ‘은주’는 한때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레 확인했던 사이. 하지만 도움을 요청한 지연과 함께 교수 장성수를 만나는 자리에서, 은주는 미묘하게 강압적인 위계를 경험하고 모멸감을 느낀다. 그렇게 그 둘의 관계는 틀어지고 시간이 흘러 장성수는 사망하는데, 어느 날 지연은 은주에게 다시 도움을 구하는 연락을 해 온다. 인터넷신문 기자로 일하는 은주가 작성했던 장성수 관련 기사를 보고서는 진실을 밝혀달라는 것. 제자들의 작품을 도용하고 착취한 교수 장성수의 본모습에 대해서 말이다.
헤드라인을 적고 은주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분명 지연을 위해서는, 오직 지연만을 돕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은주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녹음하고 계신 건 아니냐고 묻던 A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았고, 불 꺼진 연구실에 우두커니 서 있었던 사람이 지연뿐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장성수의 목소리가 함께 떠올랐다.
정의 같은 걸 믿나 봐요? (71쪽)
이 소설은 사회라는 거대한 공동체 내 개개인의 역할을 고민한다. 나만이 아닌 타인을 생각하며 하는 선택과 실천에 대해서 말이다. 이처럼 『팀플레이』는 일터에서 경험하는 일들에 대해 인물들이 어떻게 서로를 의지하고 또 어째서 외면하게 되는지 그럼에도 어떻게 그 관계를 지켜낼 수 있을지 빼어난 성취로 보여줄 뿐 아니라 좀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마음과 의지까지 담았다. 그러므로 조우리의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한 팀”이 되기도 하고 그 “팀플레이가 제법 합이 잘 맞기를”(에세이 「쓰지 않는 일에 대해 쓰는 일」, 111쪽) 바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선배이자 언니로서 살아가는 나는 늘 다른 이에게 더 다정하지 못했던 것을, 더 용기 내지 못했던 것을,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못하고 나서 잘해줘봤자 이미 늦은 것이란 생각과 계속 못하느니 다음번에 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게 낫다는 생각이 항상 경합한다. 이런 괴로움 속에 서 도움을 구하고자 할 때 떠올리는 이들은 언니이자 (삶의) 선배 그리고 스승이다. 이 소설로부터 그런 비슷한 고민을 먼저 해본 이의 지혜를 나누어 받았으니 이번에도 ‘언니’에게 한 시절의 마음을 건네받았다. _선우은실(문학평론가)
“그때 나는 신입사원이었고, 자꾸 헤매고 자주 어리둥절했다. 실수하고 후회하고 괴로워하며 최선을 다했다. 아득바득 챙겨 먹은 밥이 명치쯤에 걸린 채로 키보드를 두드릴 때면 함께 야근을 하던 옆자리의 동료가 건네는 농담 한마디가 소화제가 되어주었다. 그런 날들엔 누군가 나와 같은 순간에 한숨을 쉰다는 게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건물의 주차장, 어느 건물의 비상계단, 어느 건물의 화장실…… 그곳에는 나만 있지 않았고, 그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 저자의 말 중에서
트리플 시리즈 소개
[트리플]은 한국 단편소설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세 편의 소설이 한 권에 모이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일반적인 소설집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여러 흥미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으며 독자는 당대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매력적인 세계를 가진 많은 작가들이 소개되어 ‘작가-작품-독자’의 아름다운 트리플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