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없이 당도하는 불안에 대비하는
조용히 무너져가는 세계에 대한 상상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획이다. 그 열세 번째 작품으로 최미래 작가의 『녹색 갈증』이 출간되었다. 최미래 작가는 2019년 『실천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떠오르는 신예다. 첫 책인 『녹색 갈증』은 코로나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여기의 시공간을 공유하며 현재 우리의 불안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해서 마지막 작품인 「뒷장으로부터」까지 하나의 궤적을 그리는 작품들은, “슬로모션으로 붕괴되고” “층층이 가라앉는” 세계를 지켜봐야 하는 사람의 불안과 그것에 대비하는 방식을 공감각적이고 입체감 있게 그려낸다.
최미래
2019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애매한 동인 ‘애매’로 활동 중이다
작가의 말
불안을 대비하는 상상. 그건 대부분 정도를 지나치지만 정도가 지나친 일들은 실제로도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몇 번은 유용하게 대비할 수 있었다. 몇 번의 대비를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상상은 부정적일수록 일리 있게 느껴져 나를 손쉽게 사로잡았다. 최장영실은 한숨을 쉬고 하품을 하고 콧물을 흘리면서 자기가 상상 속 어딘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 있다는 걸 알린다. 그러면 나는 가만히 현실로 돌아온다.
프롤로그
설탕으로 만든 사람
빈뇨 감각
뒷장으로부터
에세이 내 어깨 위의 도깨비
해설 바로 여기, 뒷장으로부터―소유정
오직 ‘나’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세계,
그러나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선명한 갈증
이 소설집의 제목은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녹색 갈증’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에게는 자연과 생명체에 이끌리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은 자연스러운 증상이라는 그의 주장이다. 즉, ‘녹색 갈증’은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할 수 있다.”(해설, 소유정 문학평론가) 그런 의미에서 ‘녹색 갈증’은 최미래의 소설에서도 유효하지만, 단순히 ‘녹색 갈증’에 목말라하는 도시 생활자의 삶을 그려낸 것이 아닌 한층 더 입체적인 욕망으로 그려진다.
소설집에 등장하는 ‘녹색 갈증’을 느낀 이들이 주로 찾는 공간은 ‘산’이다. 하지만 여기서 ‘산’은 실제적 공간이라기보다 “연필을 굴리지 않아야 그려지는 그림”처럼 오직 상상으로만 닿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연필을 굴리지 않아야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는 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다. 어떻게 그 감각을 설명할 수 있을까. (……)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그곳의 날씨는 자유자재로 바뀌었으며 처음 디뎌본 곳인데도 이미 예전에 와본 적 있는 것같이 익숙했다. 긴 시간 뒤에 찾아올 거라고 예상한 미래가 바로 눈앞에 당도한 것처럼. (「프롤로그」, 28쪽)
주인공인 ‘나’에게 산으로 가는 법을 알려준 ‘윤조’도 당연히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다. ‘윤조’는 내가 쓴 소설 속 인물이며, 「프롤로그」의 마지막에서 ‘나’는 어떤 결말도 짓지 않은 소설 속에 ‘윤조’를 남겨둔 채 도망친다.
그 후로 ‘나’는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서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 자체를 잃어”(41쪽)버린 상태가 되어 삭막한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직접 설탕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빚는 공주가 나오는 그림책처럼 오로지 ‘나’는 소설 속 ‘윤조’를 통해서만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감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윤조’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심한 갈증을 느낀다. 「빈뇨 감각」에서 ‘나’는 목마름을 느끼고 실제로 물을 마시지만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물을 많이 마셔 요의를 느끼지만, 문제는 요의를 해결한 뒤에도 끝나지 않는 잔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소변을 참는 동안에도 나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밀려드는 파도처럼 문장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것까지만 맞아야지. 이것까지만. 하지만 파도는 한 개, 두 개 나누어져 있다고 볼 수 없고 내가 그 끝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빈뇨 감각」, 98~99쪽)
‘나’의 요의는 밀려드는 파도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치환되며 ‘윤조’와의 재회를 예고한다. 「뒷장으로부터」에서 ‘윤조’는 보석함을 스스로 열고 나와 엄마의 살가운 딸과 언니의 다정한 동생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윤조를 보며 ‘나’는 “보석함에서 기어 나온 게 윤조가 아니라 나인 것만 같”(116쪽)은 기분에 휩싸이며, 윤조가 내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윤조가 쓴 소설에 자신이 등장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이건 기억해야 할 거야. 너도 그 이야기 속에 있다는 거”(「설탕으로 만든 사람」, 73쪽)라는 ‘나’의 헤어진 애인 ‘명’의 말처럼, 비로소 ‘나’는 ‘윤조’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최미래 작품에서 시차 없이 당도하는 불안에 대비하는 방식은 오로지 ‘상상(글쓰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윤조가 나오는 나의 소설은 분명히 끝을 맺었지만 윤조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고, 지독하게 살아남아서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을 향한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녹색 갈증’은 실존하는 어떤 존재를 향한 것이 아닌, “글쓰기를 통해 강력한 생명력을 부여받은 하나의 세계”로 확장된다. 그것은 “오직 ‘나’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세계”이며, 그러나 “닿을 수 없는 그 세계에 대한 열망이 지금 ‘나’에게는 가장 선명한 갈증”(해설, 소유정 문학평론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