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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평생에 걸친 저의 글쓰기 가운데
가장 큰 전환점이자 가장 기념할 만한 글쓰기 프로젝트의 구축이었습니다.”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옌렌커의 대표작
제1회, 2회 루쉰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문학상을 수상했고, 중국 문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성취한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옌롄커의 『일광유년(日光流年)』이 출간되었다. 옌롄커는 해마다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고 있는 살아 있는 거장이며, 그의 작품들은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일광유년(日光流年)』은 옌롄커 스스로 가장 큰 전환점이자 가장 기념할 만한 글쓰기 프로젝트라고 평가한 작품이다.
『일광유년』은 한 마을의 대를 잇는 참혹의 세월을 기록하며, 권력과 성애와 생육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담아냈다. 문명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는 마을 산싱촌. 그곳에서는 몇 대에 걸쳐 원인 모를 목구멍 병이 횡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길어야 마흔까지밖에 못 사는 마을 주민들은 그 병의 기원과 예방법을 파헤치려 대규모의 노력을 기울이는데…… 소설은 그 어둠의 역사 속에서 삶과 한 몸인 죽음에 대해 뜨겁게 성찰하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_한국 독자들께 보내는 글
1부 천의(天意)에 주석을 달다
2부 낙엽과 시간
3부 갈황민요(褐黃民謠)
4부 젖과 꿀
5부 가원(家園)의 역사
옮긴이의 말
“시간은 밀어서 옮길 수 없는 맷돌 같았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영원히 순환되는 어둠의 역사
그는 선명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 세상을 떠나야 했다. 바러우(???)산맥의 깊이 파인 주름 안에서 죽음은 예나 지금이나 산싱촌(三姓村)만을 편애했다. 사흘 동안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소리 소문 없이 누군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다 집을 떠난 지 보름이나 한 달이 지났는데도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해가 서쪽에서 뜬 건 아닌지, 파란색이나 진한 보라색으로 변한 것은 아닌지 어리둥절해하며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놀라곤 했다.
— p.16
고난 서사의 최고 걸작인 『일광유년』은 한 마을의 3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세월을 그린다. 바러우산맥의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산싱촌은 란씨, 두씨, 쓰마씨의 세 성을 가진 주민들로만 구성된 마을이다. 일찍이 번영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대부분 목구멍이 막히는 병에 걸려 죽어갔기에 수명은 마흔이 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온 마을 사람들은 목구멍 병을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의 노력을 하며 일생을 보낸다. 특히 소설은 쓰마란이라는 인물의 생애를 중심에 두며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일대기를 형상화하는데,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건 권력과 생애와 생육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욕망이다. 더불어 소설은 도처에 만연한 죽음을 여실히 감각하며, 생명과 삶은 죽음을 전제로 함을, 죽음이 곧 삶이고 생명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심도 있게 성찰한다.
신실주의의 최고봉
온몸으로 쓴 옌롄커의 역작
『일광유년』은 옌롄커가 온몸으로 쓴 역작이다. 작가는 심각한 요추 부상을 겪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특별 제작한 특수 선반 위에서 4년여의 시간을 보낸 끝에 이 소설을 완성해냈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시간 속에서도 작가는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자신의 생명과 영혼을 담아냈는데, 결과물인 『일광유년』은 ‘발분지작(發憤之作)’의 글쓰기이며, 그 빼어난 성취이다. 특히나 『일광유년』은 옌롄커 소설의 미학인 신실주의(神實主義)가 반영된 작품이다. 현실에서 나타난 표면적인 논리 대신 존재하지 않는 진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 진실에 가려진 진실까지 찾으려 하는 미학을 작가는 신실주의라고 명명하는데, 그 방법론으로 환상적 요소를 소설에 적극적으로 들여온다. 그럴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강렬과 극단이다. 『일광유년』은 강렬하고 극단적인 상황과 인물과 서사 속에서 어느 문장이건 뜨겁게 읽힌다.
■■■ 작가의 말
저는 이 작품을 쓰는 데 4년이라는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4년이라는 시간은 제가 심각한 요추 부상과 경부 질환을 겪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의 전반부를 침대에 엎드려서 써야 했고 후반부는 특수 제작한 글쓰기용 선반에서 완성했습니다. 그것은 장애인들을 위한 가구 및 설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베이징의 한 공장에서 저의 몸 상태에 맞게 특별히 제작한 선반으로, 누워서도 글을 쓸 수 있고 자유로운 이동도 가능한 책상과 의자의 결합체였습니다. 매일 글쓰기용 선반에 엎드려 글을 쓰다 보면 팔이 거의 제 얼굴과 평행을 이룬 채 안정적으로 글쓰기용 판자와 함께 허공에 걸려 있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그 4년의 글쓰기를 지금은 감히 되돌아보지도 못합니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시간이지요. 하지만 다행히 『일광유년』은 중국에서 출판된 뒤로 제 일생의 글쓰기에서 비교적 쟁의가 적은 책,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책이 되었습니다.
■■■ 옮긴이의 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글쓰기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영혼을 담아 목숨을 걸고 써내는 이른바 ‘발분지작(發憤之作)’과 일정한 목적과 어젠다에 따라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온갖 미학과 예술적 기교를 총동원하여 써내 감각에 호소하고자 하는 ‘무병신음(無病呻吟)’이 그것이다. 진실이 역사를 정리하듯이 문학 예술도 결국은 ‘발분지작’들만 살아남게 된다. 물론 나는 옌롄커가 절대적으로 ‘발분지작’의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는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글을 쓴다. 잘못 알려진 것처럼 체제에 저항하고 비판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의 사유와 글쓰기의 초점은 정치적·사회적 현실이 아니라 원초적인 인간의 존재와 그 존재를 둘러싼 조건이다.
– 김태성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