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소개
| 서로를 구원하는 대신
함께 부서진 채 나란히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서른여섯 번째 안내서. 2005년 등단 후 우리 사회의 침울한 일면을 능숙하게 소설화하며 자음과모음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 안보윤의 연작소설집이다. 안보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우리’라는 대명사로부터 밀려난 이들의 막막한 궤적을 추적한다. 「이만 원만 빌려줘」 「(알 수 없음)」 「우리가 될 수 없는」 속 파편화된 비극들은 기어코 서로의 꼬리를 물며, 사람과 사람이 온전히 연결될 수 없는 절망의 지형도를 그려낸다. “이 글이 거대한 변명의 장이 되지 않으려면, 오늘에 대해 써야 한다, 오늘의 각오와 오늘의 실패, 오늘의 비겁함과 오늘의 오만과 오늘의 나에 대해 써야 한다”고 다짐하는 작가의 이야기 속엔 그 절망의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다만 바스러지기 직전의 상태로 벼랑 아래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은 세계에 대한 연민으로 글썽이고 있다. 참혹한 세계를 견디기 위해 부서진 자들이 취하는 아득한 거리감 첫 번째 소설 「이만 원만 빌려줘」는 자살을 결심한 ‘나’가 온라인에서 만난 김동주라는 사내와 동반 죽음을 실행하기 위해 떠나온 여정을 진술한다. 숱한 가짜 죽음 희망자들을 만나며 타인의 불행을 구경해온 ‘나’는, 현실의 모든 끈을 끊어낸 듯한 동주에게서 진짜 절망을 보게 된다. 김동주 씨는 그들과 달랐어요. 현실과 연결된 수많은 실이 있다면 김동주 씨는 그걸 차근차근 모조리 잘라내며 걸어온 사람 같았죠. 실밥 뭉치처럼 곳곳이 비어서 언제 흩어져도 상관없다는 듯 무감했어요. 보자마자 알겠더라고요. 이 사람은 진짜구나. 이번에는 진짜, 끝을 낼 수 있겠구나. _ 「이만 원만 빌려줘」 15~16쪽 하지만 그의 이면에는 기묘한 사건 하나가 숨겨져 있다. 동주가 ‘나’를 만나기 전, 어린아이를 유괴하였고 그가 요구했던 몸값이 고작 ‘이만 원’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액수는 자본주의적 교환가치로는 측량할 수 없는 인간의 지독한 부채감을 증언한다. 모든 것이 숫자로 치환되는 불모의 세계에서 작품은 값싼 위로를 건네는 대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다 안다는 오만함을 내려놓으라 종용한다. 그리하여 타인을 끝내 알 수 없는 고유한 존재로 남겨두는 이 거리 감각 속에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존엄의 단초를 발견한다. 씁쓸한 교차로에서 말없이 스쳐 가는 번역되지 않은 고통들 숫자로 치환된 세계의 폭력성은 두 번째 소설 「(알 수 없음)」의 주인공 오영의 일상을 통해 상시적인 비극으로 변주된다. 좁은 고시원을 전전하는 오영은 스스로를 “칠천 원짜리”라 자조하며 살아간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스스로 세상을 떠난 동생 이서의 죽음 앞에서도, 오영은 타인에게 감정을 쏟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견딘다. 약한 것들, 가여운 것들, 불쌍한 것들, 그런 것들의 미래는 다만 잘 썩고 잘 타는 것. 향이 코끝에서 타고 있는 것처럼 눈이 맵다. _ 「(알 수 없음)」 54쪽 이 작품은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 세상과 맞서는 오영의 복수극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언어로 번역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서늘한 자각이 서사의 완결을 계속해서 유예한다. 타인을 마음대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기어코 ‘알 수 없음’으로 내버려두겠다는 윤리적 안간힘. 이러한 모럴이 작품이 마무리된 뒤에도 독자를 끊임없이 사유하게 만든다. 파국과 절망의 기록을 통해 헝클어진 세계에 남기는 연대의 단초 세 번째 소설 「우리가 될 수 없는」은 유괴범 동주로부터 이만 원이라는 몸값으로 풀려난 뒤 어른이 된 정우의 시선으로 세계를 응시하는 이야기이다. 다만 정우가 겪은 진정한 외상은 동주가 아니라, 어머니의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정우의 어머니는 정성껏 키워낸 제 아이가 고작 이만 원으로 환산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한다. 나는 지금도 엄마가 내게 했던 말들을 종종 떠올린다. —네 차림새가, 네 몰골이, 네가 얼마나 거지 같아 보였으면 고작 이만 원을 달라고 하니. 엄마는 놀이터 흙바닥이나 마트 선반에서 내 손을 거칠게 뜯어내며 말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더럽게. 그러고는 도무지 견딜 수 없다는 듯, 진저리를 치며 내뱉곤 했다. —제발 이만 원짜리같이 굴지 좀 마. _ 「우리가 될 수 없는」 112쪽 삶의 가치와 의미가 화폐로 계산되고 환산되는 순간, 가장 가까운 이조차 잔혹한 가해자로 전락하고 마는 세계에서, 작가는 “진심이 되려면 믿어야 한다, 사람을, 세계를, 무수한 선택 속에 숨어 있는 선의를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실의와 좌절로 가득한 세 편의 이야기에 앙금처럼 가라앉는 조용한 희망이 있다. 저자가 언급한 “반드시 회복되리란 믿음”, 안보윤의 이번 작품에서 그 희망이 드러나는 부분을 찾는 것도 묘미일 테다. 그렇게 독자는 “부서뜨리기 위해 믿고 믿기 위해 부서뜨리는 기이한 반복 속” 추락하는 일 외에, ‘연대’라는 선택지가 있음을 깨닫는다. 함부로 이해한다고 말하지 않는 묵언(默言)과 절망의 기록을 통해 가장 역설적인 윤리와 협력의 실마리를 벼려내는 것. 소설가 안보윤의 신작이 우리에게 건네는, 묵직하고도 서늘한 통찰이다. |
■■■ 지은이
안보윤
2005년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 7의 고백』 『밤은 내가 가질게』, 중편소설 『알마의 숲』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 『오즈의 닥터』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밤의 행방』 『여진』 등이 있다. 자음과모음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 목차
이만 원만 빌려줘
(알 수 없음)
우리가 될 수 없는
에세이 마침표도 없이,
해설 끝끝내 ‘우리’가 되지 않음으로써―최진석
■■■ 작가의 말
진심이 되려면 믿어야 한다, 사람을 세계를 무수한 선택 속에 숨어 있는 선의를 믿어야 한다, 믿어야만 쓸 수 있다, 반드시 회복되리란 믿음이 있어야만 마음껏 부서뜨릴 수 있다, 부서뜨리기 위해 믿고, 믿기 위해 부서뜨리는 기이한 반복 속에 나는 있다,
― 에세이 「마침표도 없이,」 중에서
■■■ 책 속에서
불행을 전시할수록 인간은 고독해지죠. 타인의 불행을 제멋대로 구경하고 속단할 순 있겠지만 그 무게와 밀도를 온전히 감각할 수 있는 건 본인뿐이에요. 난 동병상련이니 유대감이니 그딴 소리 안 믿어요. 만약 내게 손가락이 없고 당신에게 발가락이 없다면, 우리는 서로의 불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 같은 처지라고 말할 수 있어요? _「이만 원만 빌려줘」, 13쪽
죽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 사람들을 만난 것도 비슷한 이유일 거예요. 궁금했어요. 남들은 어떤 불행을 움켜쥐고 사는지. 멀찌감치 서서 구경이나 해볼 작정이었죠. 그러다 보면 있거든요, 진짜 불행에 잠식된 사람이. 관심 끌고 싶어서 불행을 연기하는 사람 말고 정말이지 불행 그 자체인 사람이 말예요. _「이만 원만 빌려줘」, 28쪽
— 나는…….
김동주 씨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어요. 교통표지판에 쓰인 속도를 준수하고 있는데도 낡은 차는 심하게 덜컹거렸죠. 도로 위로 얼룩 같은 게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지길 반복했어요. 스키드마크거나 납작해진 고라니거나 했을 거예요. 얼룩을 서른 개쯤 지났으려나. 김동주 씨가 불쑥 그러더군요.
— 나는 내가 부끄러워서 죽습니다. _「이만 원만 빌려줘」, 36쪽
약한 것들, 가여운 것들, 불쌍한 것들, 그런 것들의 미래는 다만 잘 썩고 잘 타는 것. 향이 코끝에서 타고 있는 것처럼 눈이 맵다. _「(알 수 없음)」, 54쪽
진실에 가닿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노력과 결심이, 각오가, 시간이, 무엇보다 돈이 필요하다. 매일 매 순간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해서 원하는 답이 나오리란 보장도 없다. 내버려두는 건 간단하다. 별다른 각오 없이 지금처럼만 있으면 된다. 눈을 감고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으면 된다. 손쉬운 선택 끝에는 무지와 악이 있으나 대체로 평화롭다. _「(알 수 없음)」, 58쪽
살아서 모르던 것을 영혼이 된다고 해서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까. 연기가 끊겼으니 이서는 이곳도 저곳도 아닌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겠지. 맨발이겠지. 영혼은 보통 맨발이니까 맨발이 되는 게 그렇게 위험하고 이상한 일은 아닐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_「(알 수 없음)」, 59~60쪽
일상에 기대와 희망이 끼어들면 어떤 식의 비참함이 깨어나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으니까. 아무 기대도 없으면 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내일이 오늘보다 손톱만큼은 나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면 오늘도 제법 살 만하다. 이서는 아니었나. 이서는 그만, 기대와 희망을 가져버렸나. _「(알 수 없음)」, 70쪽
눈 딱 감고 절약하면 오백만 원이 생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월셋집을 선택한 순간 내 안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미래에 대한 기대는 일시에 지워졌다. 이달의 월세를 벌 수 있는가 없는가가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됐다. 나는 메뚜기처럼 빠르게 다음 일, 새로운 일 로 옮겨 갔다. 내 안에 아무것도 고일 틈이 없었다. _「(알 수 없음)」, 80~81쪽
내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될 수 없다면 서로인 채로 있으면 그만이다. 엄마와 나는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와 나는 끝끝내 서로를 용서하지 않는다. _「우리가 될 수 없는」, 122쪽
오영과 나는 각자의 지옥 속에 각자의 방식대로 서 있다. 망가진 채로, 가여운 채로 다만 서 있다 _「우리가 될 수 없는」, 124쪽
■■■ 추천평
그렇다면 이 철저한 타자성과 마주하여 무엇을 사유해야 하는가? 존엄이란 본디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존재 자체의 숭고함에 부여되는 이름이다. 모든 것이 숫자로 치환되고 서로를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불모의 세계에서 존엄을 묻는 일은 어쩌면 무망한 시도일지모른다. 그러나 안보윤의 텍스트는 섣부른 연대의 가능성이나 값싼 위로를 건네는 대신, 타인의 고통을 다 안다는 오만함을 내려놓도록 종용한다.
― 최진석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