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의 영역 (새소설 10)
저자1 | 이수안 |
저자2 | |
출판사 | 자음과모음 |
발행일 | 2022-01-25 |
분야 | 장편소설 |
정가 | 13,800원 |
‘마녀’의 이름을 새롭게 호명하고
마녀들의 연대를 구체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한 의미 있는 시도
정이현 소설가 추천
제4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 수상작
제4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시커의 영역』이 ‘새소설 시리즈’ 열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2019년 김유정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이수안 작가가 세상에 선보이는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타로점집을 운영하는 ‘마녀’와 무언가를 갈망하며 타로점을 보러 오는 ‘시커(seeker)’라는 흥미로운 설정을 가진 이 작품은 “‘마녀’의 이름을 새롭게 호명하고 마녀들의 연대를 구체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한 의미 있는 시도”(정이현 소설가)라는 심사위원들의 압도적인 찬사를 받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마법과도 같은 내면의 힘을 인식하게 하는 ‘시커의 영역’을 형상화해낸 이 작품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할 것이다.
할머니와 엄마로부터 이어져온 계보 탐색과
여성 연대 안에서의 치유
그리고 마법 같은 내면의 힘을 인식하게 되는 이야기
『시커의 영역』은 주인공 ‘이단’과 ‘봄의 마녀 모임’의 유일한 동양인 마녀이자 타로점집을 운영하는 ‘이단’의 엄마 ‘이연’ 그리고 ‘이연’의 양어머니인 마녀 ‘키르케’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마녀의 일생의 지혜가 담긴 소중한 기록인 ‘그림자의 서’를 통해 ‘이단’은 할머니부터 엄마에게로 이어져온 마녀의 삶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다. 마녀로서의 삶은 운명이 아니라, 그런 삶을 살기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걸.
“이단, 마녀가 되고 싶다면 언제든 될 수 있어. 마녀의 삶을 살겠다고 선택하면 되는 일이야. 다만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려면 신중해야 해. 나는 네가 선택한 카드를 읽어주는 사람일 뿐이야.” _140쪽
그건 마녀로서의 삶뿐만이 아니다. 엄마 ‘이연’은 간절한 바람이나 골치 아픈 문젯거리를 안고 자신을 찾아오는 시커들에게 타로점을 봐주면서, 자신은 “그들이 지목한 미래의 한 장면을 특별한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뿐”이며 “점괘를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하는 것은 시커의 영역이지 리더의 관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커의 영역’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기 내면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것을 ‘이단’에게 알려준다.
“어떤 선택을 하든 시커의 영역이었다.
그것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운명과 의지에 관한 불가해한 질문들
이 작품은 ‘마녀’라는 삶을 스스로 선택한 여성들의 연대를 그려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운명과 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엄마와 단둘이 지내던 ‘이단’ 앞에 어느 날 파란 눈을 가진 생물학적 아빠(?) ‘에이단’이 나타난다. ‘이단’과 그의 단짝인 ‘로운’은 ‘에이단’에게 영어 교습을 하며 그동안 빈칸으로 남겨져 있던 서로의 관계를 채워간다. 하지만 “반복된 불운을 불문율처럼 믿”고 사는 에이단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이단’은 기타리스트를 꿈꿨던 그에게 특별한 ‘행운’을 선물한다.
“에이단, 행운은 우리 거예요.”
당첨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달의 비호를 받는 에이단의 동네로 달려갔다. 심장이 하드코어 테크노 템포로 뛰었다. 소식을 들은 에이단의 두 눈이 짙푸르게 변했다. 카멜레온처럼 서서히 그리고 또렷하게. (……)
“보니 레이트가 치던 기타를 받게 됐단 말이지?”
“네! 친필로 ‘에이단에게’라고 새겨주기로 했어요.” _78쪽
하지만 ‘이단’이 ‘에이단’의 손에 쥐여준 것은 “당첨의 행운으로 위장된 죽음 카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 ‘이단’ 앞에 우연히 ‘에이단’과 관련한 비밀을 알고 있는 ‘류이’가 나타나면서 ‘에이단’의 마지막 순간이 불가해한 운명의 결과가 아니라 온전한 ‘스스로의 선택’이었음이 밝혀진다.
『시커의 영역』은 이처럼 “주인공 ‘이단’의 성장 이야기를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의 계보 탐색과 여성 연대 안에서의 치유 등으로 풍요롭게 채우고 있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마치 마법과도 같은 자기 내면의 힘을 인식하게 되는 이야기”(안서현 문학평론가)이다. 이 다채롭고 따뜻한 이야기가 독자들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이수안
2019년 김유정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제4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봄에 ‘마녀의 딸’을, 한여름에는 ‘세 개의 달’을, 쌀쌀해질 무렵에 ‘그림자의 서’를 썼다. 오후에는 마스크를 쓰고 한 시간씩 공원이나 산책로를 걸었다. 몸을 움직일 때 머리가 잠시 쉬었다. 쓰는 동안 내내 이 소설이 단 한 명의 독자라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내 소설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올 확률은 얼마큼일까. 이런 생각이 극도에 다다랐을 때 이연이 ‘그림자의 서’에 ‘마법은 확률에 기대지 않는다’고 썼다.
Ⅰ. 마녀의 딸
Ⅱ. 세 개의 달
Ⅲ. 그림자의 서
작가의 말
추천사
『시커의 영역』은 좋은 장편소설에 기대하는 여러 요소가 두루 포함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단단하게 직조된 구성, 각자의 절박한 이유와 의지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생동감 있고 매력적인 인물들, 그리고 독자를 조였다 당겼다 하며 몰입하게 만드는 서사의 완급 조절 능력도 탁월하다. ‘마녀’의 이름을 새롭게 호명하고 마녀들의 연대를 구체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한 지점도 의미 있는 시도이다. _정이현(소설가)
초자연적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세련된 방식으로 주인공의 운명과 인물들의 관계성 안으로 녹여내는 수완이나, 몰입감 있게 작품을 읽어나가게 만드는 가독성, 선명한 주제의식 모두 독자를 매료하기에 충분하다. _박인성(문학평론가)
『시커의 영역』은 흥미로운 세계관과 설정에 눈길이 가는 작품이다. 주인공 ‘이단’의 엄마이자 타로점집을 운영하는 ‘이연’은 ‘봄의 마녀 모임’의 유일한 동양인 마녀이다. ‘시커(seeker)’는 무언가를 갈망하며 타로점을 보러 오는 사람들 전반을 뜻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의 삶의 여정을 은유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_조대한(문학평론가)
주인공 ‘이단’의 성장 이야기를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의 계보 탐색과 여성 연대 안에서의 치유, 자신의 선택으로서의 사랑 등으로 풍요롭게 채우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마치 마법과도 같은 자기 내면의 힘을 인식하게 되는 이야기다. _안서현(문학평론가)
책 속으로
엄마를 찾아오는 이들은 무언가를 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간절한 바람이나 골치 아픈 문젯거리를 안고 와서, 생잡이로 뽑아낸 몇 장의 카드에서 일말의 힌트라도 얻고자 했다. _12쪽
이론적으로는 일흔여덟 장의 카드가 뽑힐 확률이 모두 동일하지만 반드시 똑같은 확률로 선택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작위성이야말로 타로 카드 점술의 핵심이었다. 똑같은 카드를 뽑았다고 해석이 같은 것도 아니었다. 시커의 질문과 상황에 따라, 혹은 성향이나 마음가짐에 따라 미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_12쪽
에이단을 처음 본 날 타로점을 보았다면 메이저 아르카나 10번 ‘운명의 수레바퀴’를 뽑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미 벌어진 일에 맞아떨어지는 카드를 찾아보곤 했다. 카드로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카드에 대입하는 것. 그것이 나만의 비밀 놀이였다. _26~27쪽
그 여름, 내 아버지가 에이단 매쿼리라는 사실에 이어 부가적인 사항들도 잇따라 밝혀졌다.
엄마는 에이단보다 열다섯 살이 많다.
두 사람은 결혼한 적이 없다. (당연히 이혼한 적도 없다.)
두어 계절을 함께 살았고, 10여 년은 헤어져 지냈다. _27~28쪽
그는 확률과 경향성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운 나쁜 사람이라는 확신은 통계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판단이라고 했다. 그는 우연히 반복된 불운을 불문율처럼 믿는 사람이었다. _37~38쪽
에이단은 인생 단 한 번의 횡재를 목숨과 맞바꿨다. 그 원흉이 나였다. 나는 에이단의 손에 당첨의 행운으로 위장한 죽음 카드를 쥐여주고 그의 등을 떠밀었다. 가끔 에이단이 그날 보낸 메시지를 읽는다. 그는 이렇게 썼다.
‘어쩐지 내 몫의 행운이 아닌 것 같다.’ _84쪽
연은 키르케와 함께 살면서 마녀의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갔다.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닌다는 것이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녀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사람이었다. _111쪽
메이저 아르카나 12번 ‘매달린 남자’. 이단은 그 카드가 시련과 희생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었다. 3카드 배열의 마지막 장이라면 미래의 일이나 결과를 보여주는 자리일 것이다. 이단은 방으로 들어가 타로 카드 해설서를 펼쳤다.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떨리는 손으로 메이저 아르카나 12번을 찾았다. _156쪽
베닝턴의 숲속에 뿌려줘.
유언은 이 한마디뿐이었다. 나에게는 두 권의 ‘그림자의 서’가 남았다. 하나는 마녀 키르케, 다른 하나는 마녀 이연의 것이었다. _239쪽
하늘에는 보름달과 그믐달이 동시에 걸려 있다. 이미 가득 찬 달과, 다시 차올라야 하는 달. 내 시선은 두 개의 달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_2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