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가 제철 (트리플 14)

저자1 안윤
저자2
출판사 자음과모음
발행일 2022-09-01
분야 한국 단편소설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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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해질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이름들을

다정하게 감싸는 결연한 빛의 이야기

 

“살아서 기억해. 네 몫의 삶이

실은 다른 삶의 여분이라는 걸.”

 

안윤 소설집

■■■ 책 소개

 

소중해질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이름들을

다정하게 감싸는 결연한 빛의 이야기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획이다. 그 열네 번째 작품으로 안윤 작가의 『방어가 제철』이 출간되었다. “섬세한 자각과 심리의 교직이 우아하게 펼쳐지는 수작” “묵묵한 성찰, 근래 보기 드문 내공”(제3회 박상륭상 심사평 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안윤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수상작을 통해 (“심상과 감각을 자극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작품”을 선보인 작가는 신작 『방어가 제철』로 “각별한 관찰력”(해설, 김보경 문학평론가)과 “디테일에 대한 천착”을 보여준다.

 

살아서 기억해. 네 몫의 삶이 실은 다른 삶의 여분이라는 걸.”

더는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이름들에게 전하는 안부

그 애도의 기록, 재생의 기록

 

「달밤」은 화자가 애정을 가지고 아끼는 ‘소애’의 생일상을 차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화자는 ‘소애’가 먹고 싶다고 했던 육개장을 “인생 마지막 과제인 것처럼 정성을 다해서 요리”(16쪽)한다. 화자는 음식을 하는 중간중간, 소애에 대해 생각하는 중간중간, ‘언니’를 호명한다. 화자가 ‘언니’라고 부르는 ‘은주’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화자는 ‘은주’의 장례식장에서 먹었던 미지근한 육개장을 떠올린다. ‘소애’를 위한 생일상은 자연스럽게 ‘은주’를 위한 제사상과 연결된다. 화자가 두 사람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정성 어린 마음과 사랑을 표현하는 일”(해설, 김보경 문학평론가)이나 다름없다. ‘소애’와 ‘은주’는 화자를 가운데 두고 연결되어 있다. 화자와 ‘소애’의 관계는 ‘은주’와 화자의 관계와 유사하게 반복된다. ‘은주’가 화자가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처럼 화자는 ‘소애’가 음악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은주’와 화자의 사랑은 화자와 ‘소애’의 사랑 안에서 끊임없이 다시 재생되며 기억되고, 기록된다.

 

살아 있는 나는 이제 뭘 해야 할까. 언니가 없는데, 언니가 스스로 없기를 원했는데 살아 있는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나는, 살아 있으니 살아. 살아서 기억해. 네 몫의 삶이 실은 다른 삶의 여분이라는 걸 똑똑히 기억해. 그렇다고 너무 아끼지도 말고 너무 아까워도 말고, 살아 있는 나를 아끼지 말고 살아.

(달밤, 30)

 

표제작 「방어가 제철」의 화자는 과거에 한 시절을 함께 경유했던, 오빠 ‘재영’의 친구 ‘정오’와 재회한다. ‘재영’과 ‘정오’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세 사람은 영화, 음악, 책을 공유하며 취향 공동체를 이루면서 외로움을 나눴다. ‘재영’과 ‘정오’가 대학에 가면서 관계가 소원해지던 중,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재영’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완전히 와해된다.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대에 가고 싶어 하던 화자는 자신의 미술 학원비를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던 ‘재영’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어느덧 삼십대가 된 화자는 지병으로 돌아간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정오’에게 연락해 ‘재영’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재회한다. 방어가 제철인 계절에 만난 ‘정오’와 화자는 방어를 먹는다. 「달밤」의 화자가 죽은 ‘은주’를 생각하며 제사상을 차렸던 것처럼, 이후 두 사람은 3년간 매 계절 만나 제철 음식을 먹으며 ‘재영’을 기억한다. 함께 식사를 하는 일상적인 의례를 통해 두 사람은 ‘재영’의 죽음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혼자서는 할 수 없던 애도를, 함께 완수한다.

 

나는 오래전 나 홀로 은밀하게 간직했던 장면 하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야 내가 그 순간을 오롯이 그리워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방어가 제철, 72)

 

「만화경」의 초점 화자 ‘나경’은 이혼 후 혼자 전세로 빌라를 구해 살고 있다. ‘나경’은 입주 첫날부터 집주인 ‘숙분’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다. 불쑥불쑥 나타나 참견을 한다든지, 외출할 때마다 내려다보는 등 지나치게 감시받고 있는 듯해 시달린다. 그러던 중 ‘숙분’이 혼자 집 안에서 쓰러지는 일이 생긴다. 다행히 ‘숙분’의 친구 ‘단심’이 늦지 않게 119를 불러 위기를 모면한다. 함께 병원에 따라간 ‘나경’은 ‘숙분’이 자신에게 보였던 행동의 이유를 알게 된다. ‘나경’의 전 세입자였던 젊은 여성 ‘이미리내’가 집 안에서 혼자 외롭게 생을 마감했고, 이후 ‘숙분’은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자신의 방법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나경’은 그제야 ‘숙분’을 이해하고 집에 남아 있는 ‘미리내’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녀를 애도하고, “이름을 모르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돼버렸다는 것”(116쪽)을 담담히 깨닫는다.

 

누렇게 변색된 플라스틱 환풍기 가장자리에 빼곡하게 붙어 있는 야광별 스티커를 세어본다. 서른다섯 개, 미리내의 나이보다 두 개 많고, 나경의 나이보다 하나가 적었다. (……) 나경은 서른셋의 미리내를 상상해본다.

왜 하필 여기에 붙였을까. 그 궁금증은 끝끝내 물음표로 남았다.

(만화경, 115)

 

안윤 작가의 세 소설은 ‘애도’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각기 다른 애도의 방식을 보여준다. 음식에 관한 디테일로 연결되기도 하는 소설들은 안윤 작가 “특유의 훈기”(해설, 김보경 문학평론가)로 감싸여 있다. 죽은 누군가의 기억을 안고 “다른 삶의 여분”을 살아가는 이들뿐만 아니라 “소중해질 기회조차 갖지 못했”(에세이 「없는 것들이 있는 자리」)던 것들을 위로하고 위안하며 지금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부드럽게 등을 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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