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의 세계 (트리플 15)

저자1 이유리
저자2
출판사 자음과모음
발행일 2022-11-15
분야 한국 단편소설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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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사랑을 멈추지 않는 마음과 용기

중력을 비틀어 만드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획이다. 그 열다섯 번째 작품으로 이유리 작가의 『모든 것들의 세계』가 출간되었다. “능청스러우면서도 낯선 상상력과 활달한 문체가 인상적”이라는 평과 함께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브로콜리 펀치』 등 재기발랄한 에너지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며 독자와 만나고 있는 이유리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모든 것들의 세계』에서 작가는 귀신, 마음소라 그리고 요정을 통해 상상과 환상을 넘어 “비인간의 세계”(해설, 전승민 평론가)를 선보이며 삶을 계속해나갈 힘과 의지를 각성케 한다.

다만 잊히고 싶지 않았다. 내 세계는 끝나 없어지더라도
다른 누군가의 세계 어느 한구석에는 끝내 남아 있고 싶었다.”

 

삶의 중력이 의 무게를 압도할 때,

이유리 작가가 제시하는 세 가지 마음의 가능태

 

표제작 「모든 것들의 세계」는 영혼 결혼식으로 부부가 된 두 귀신, ‘고양미’와 ‘천주안’의 이야기다. 죽은 지 3년이 지난 ‘양미’는 ‘월드 오브 에브리싱’이라는 게임을 하던 중, 옆집에서 불이 난 것도 모르고 다른 캐릭터를 치료마법으로 ‘힐’ 해주다가 죽은 게임 마니아다. 한편 이제 막 죽은 신참 귀신 ‘주안’은 클로짓 게이로, 부모님이 선을 볼 것을 종용하던 중 20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게 됐다. ‘양미’는 자신을 죽게 했던 “선한 오지랖”으로 ‘주안’이 애인의 집에 찾아가는 것을 돕고, 귀신이 ‘소멸’하게 되는 때에 대한 진실을 말해준다. 점점 게임 속 세상과 현실의 삶 양쪽에서 잊혀져가는 ‘양미’는 “기어이 잊혔음을 기뻐하며 사라질 수 있게 되기를”(39쪽) 바라며 “산 자들을 진심으로 축원”(해설, 전승민 평론가)한다.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유저들만 남은 그 망겜, 진짜로 망할 때도 됐지. 나는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즐거웠어요, 부디 더 재미있는 게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 가끔씩은 일어나서 이쪽저쪽 스트레칭도 하시고, 밥도 컴퓨터 앞에서만 먹지 말고 사랑하는 이들과 눈 맞추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시길.

(모든 것들의 세계, 40~41)

 

「마음소라」의 주인공 ‘양고미’는 전 남자친구 ‘안도일’의 아내 ‘천양희’에게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는다. 바로 ‘도일’의 ‘마음소라’를 돌려달라는 것. 마음소라란 “마치 별주부전의 토끼 간처럼”(해설, 전승민 평론가) 출반입이 가능한 소라 모양으로 생긴 장기의 일종이다. 소라 입구에 귀를 대면 속마음이 숨김없이 들려오고, 누군가에게 증여하면 그 사람만이 진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스물한 살의 ‘도일’은 ‘고미’에게 이 마음소라를 주며 진심의 전부를 줬지만 7년 후 헤어진다. ‘고미’는 ‘양희’에게 그것을 돌려주며 둘의 부부 관계가 좋지 않음을 알게 된다. ‘양희’는 ‘고미’에게 ‘도일’의 마음을 들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고미’는 ‘양희’에게 진실 대신 ‘양희’가 듣고 싶어 할 이야기를 전한다. 이 선의의 거짓말은 누군가의 마음을 전부 아는 것이 관계에 미치는 절대적인 영향과 무게에 대해 알고 있는 ‘고미’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최초에 얻었던 깨달음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큰 사랑을 되갚을 걱정 없이 받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증명받는 일이 얼마나 나를 값어치 있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바로 그것이 나를, 그리고 도일을 망쳐놓았다.

(마음소라, 53)

 

「페어리 코인」에는 “반려 난이도 최하를 자랑하는” 요정이 등장한다. 전세보증금 사기를 당한 ‘나’와 남편 ‘우진’은 ‘나’의 고조모 때부터 함께 살기 시작한 이 요정을 이용하여 대국민 사기극을 계획한다. ‘우진’의 친구 ‘현철’이 요정을 이용해 스캠코인으로 ‘페어리 코인’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나’와 ‘우진’은 작정하고 친 사기에 당했다는 슬픔과 자책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요정을 내세워 사람들의 마음과 기대 심리를 착취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사기극의 준비가 마무리되어 가던 어느 날, ‘우진’은 ‘현철’이 함께 오토바이를 훔쳐놓고 ‘우진’에게 덮어씌웠던 고등학생 시절의 일화를 떠올린다. ‘나’와 ‘우진’은 그렇다면 ‘현철’을 믿을 수 있는지, 믿어야 하는 것인지,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우진아, 우린 잘못한 거 없어.”

“알아.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지.”

(……)

“바꿀 수 없다면 우리도 똑같아지면 돼. 이왕 나쁜 놈이 될 거면 확실히, 제대로 나쁜 놈 한번 돼보자.”

“응.”

빨갛게 부은 눈으로 우진이 환하게 웃었다.

(페어리 코인, 114)

 

이유리 작가의 인물들은 작품 속에서 각기 다른 난관을 겪는다. 가닿고 싶어도 가닿을 수 없는 귀신이라서, 영원하리라 믿었던 마음이 영영 변해버려서, 믿었다는 이유로 너무나 큰 피해를 입게 되어서 등 살아가면서 좌절을 겪을 이유와 상황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작가는 “이질적인 존재들이 공존”(해설, 전승민 평론가)하는 세 소설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사랑하는 마음”을 놓지 않아야 함을 전하며 “사랑할 용기”를 쥐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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