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트리플10)

저자1 심너울
저자2
출판사 자음과모음
발행일 2021-12-10
분야 한국소설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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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발랄하게 넘나드는 전환의 경계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트릭스터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획이다. 그 열 번째 작품으로 심너울 작가의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가 출간되었다. “2020년대 초, 한국 SF 황금기를 상징할 만한 표본”(곽재식 소설가)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왕성하게 활동 중인 심너울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는 기존의 질서와 권위를 거리낌 없이 횡단한다. 이러한 횡단은 세계에 균열을 일으켜 이전과는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다. 심너울 작가는 SF라는 장르와 소재를 과감하게 활용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인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망하지는 않을 거라고 내심 기대하잖아요.

그리고 인생은 그 기대가 조각나는 하나의 커다란 과정이죠.”

 

과감한 횡단을 통해 다다른 위태롭고 즐거운 세계

 

「대리자들」은 “어릴 때 운이 좋아 반짝한 퇴물”(21쪽) 배우 ‘강도영’의 재기를 위한 새로운 도전으로 시작된다. ‘강도영’은 지지부진한 연기 실력으로 극단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던 중, 유혹적인 제의를 받는다. 과거에 컴퓨터그래픽 회사였던 영화사 ‘비나인 스튜디오’에서 ‘강도영’의 “얼굴을 쓸 권리”(26쪽)를 요청한 것이다. ‘강도영’은 직접 연기하지 않고도 자신의 목소리, 얼굴, 눈을 가진 ‘가짜 강도영’의 연기를 통해 유명한 배우로 거듭난다. 하지만 ‘도영’은 후배 배우 ‘나영’의 열정적인 무대 연기를 보고 자신의 ‘가짜 연기’에 회의를 느낀다. 심너울 작가는 “SF가 만들어왔던 관습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독자를 사고실험의 장으로”(해설, 이지용 평론가) 독자를 이끌고, “진짜와 가짜, 예술과 창조의 고귀함”에 대한 작가의 질문은 세계로 향한다.

 

사고가 없었다면 여전히 빛나고 있었을까? 도영은 확신하기 어려웠다. 어린 시절의 도영은 찬란히 빛났으나, 진지하게 연기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카메라를 가만히 주시하기만 해도 어른들은 그 신비한 표정에서 수백 가지의 감정과 수천 가지의 비밀을 추론해냈다. 사고가 없었더라도 잊히는 속도는 별다를 바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리자들」, 18쪽)

 

표제작인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에서 어린 시절 우주비행사를 꿈꿨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 ‘수지’는 “우주 개척 사업에 관심이 많”(78쪽)은 선배 ‘위랑’을 만난다. ‘위랑’은 기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수지’에게 “화성과 그 너머”(83쪽)를 잇는 ‘블록체인 시스템’ 관련 일자리를 제안한다. ‘위랑’의 회사에서 근무하게 된 ‘수지’는 “우주산업의 발전에 기생하고 있”(94쪽)다며 ‘위랑’을 비난하고 자조한다. 그러다 회사의 과장된 허위 광고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온 외계인”(해설, 이지용 평론가)을 맞닥뜨리고, “몇 개월 전에 영업을 시작”하고도 “50년 원조라고 광고하는 것이 인간의 관습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우주비행사가 되어 외계인을 만나고자 했던 순수한 꿈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 “의미 없음의 어쩔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어떻게 우주를 선망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어떻게 중력의 족쇄에서 벗어나 그토록 광막한 공허 속을 둥둥 떠다니는 자신을 꿈꾸지 않는 게 가능하죠? 우리는 우주개척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우리 세대는 진정한 우주 개척의 불씨와 함께 태어났어요. 우주적 혁신의 세대라고요. 민망하긴 하지만, 저는 외계인을 보고 싶었어요. 다른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우리와 어떻게 다르게 생겼을까,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죠.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 69~70쪽)

 

「문명의 사도」는 “외계 행성에서 황제를 대리하는 집정관”(114쪽) ‘호라티아’의 이야기다. “제국적 세계관을 아주 충실하게 반영”(해설, 이지용 평론가)하고 있다. ‘호라티아’는 문명을 전파하고 개척하기 위해 당도한 ‘미로 행성’의 “생태계를 독점하고 있”(124쪽)는 거대한 공생체 식물 ‘실피움’을 발견한다. ‘실피움’에게서 “제국과 닮”(136쪽)은 강력한 생명력을 엿본 ‘호라티아’는 “이 아름다운 생물을 해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호라티아’는 ‘미로 행성’을 파괴하라는 황제의 명을 어기며 제국을 배신한다. ‘실피움’을 통해 작가는 “국가나 권력의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지향점이자 세계관 혹은 담론의 형태”를 떠올린다. 제국주의라는 서구적 세계관을 끌어와 “2020년대 한국” SF로 이야기의 방향성을 비틀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주의 탐험가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행성이 있으며, 그 모든 행성은 제각기 겹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말. 실피움은 아름다운 존재일까? 모르겠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하나다.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 버섯 숲을 이루는 존재가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말이다.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렇게 할 것이다. 나는 문명의 사도로서 주어진 의무를 다했을 뿐이니까. (「문명의 사도」, 150쪽)

 

심너울 작가는 세 편의 소설을 통해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특성을 구현하면서도 “조금 더 동시대적인 감각들을 가지고 와서 동시대 너머를 지향”(해설, 이지용 평론가)한다.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 ‘트릭스터’의 면모를 지닌 심너울 작가는 이번에도 경계와 질서, 권위를 넘나들며 자유로이 세계와 세계를 횡단하며 균열을 일으켜 위태롭고도 즐거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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