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기괴한 언어로 시를 읽는 것 같았다”
중국 문학 거장들이 극찬한 젊은 작가 류팅이 만들어낸
열두 편의 기묘한 환상곡
중국 ‘80후(80후세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 류팅이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소설집이다.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이자 문학평론가인 리징쩌와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리얼 등 중국 문학 거장들로부터 “이 시대의 숨결과 독특한 질감을 정확히 파악하여 기묘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허구를 통해 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현대적 감각이 넘치는 방식과 언어로 중국의 이야기를 서술해내고 있다”는 극찬을 받은 류팅은 현재 중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뒤바뀐 영혼 : 류팅의 기묘한 이야기』에 담긴 열두 편의 이야기는 중국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과 피폐해진 정신세계를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낸다. 생활의 곤경 때문에 타인과 영혼을 바꾼 천재 시인, 타락한 현실을 피해 당나라로 돌아간 대학 교수, 인간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죽음의 신과 친구가 된 남자…… 등 열두 편의 기묘한 환상곡을 선보인다.
“허구가 오래되면 진실이 되고,
진실이 오래되면 허구가 된다”
허구와 실제, 진실과 거짓 사이의
미세한 틈을 파고드는 정교한 서사
류팅은 허구와 실제, 진실과 거짓 사이의 아주 좁은 틈을 헤쳐가며 놀라울 만큼 정교한 서사를 펼친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뒤바뀐 영혼」은 류팅의 작가적 문제의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천재 시인인 야거는 자신의 시적 영감과도 같은 연인 샤셩을 만나 가정을 이루지만, 현실적인 곤경에 직면하고 만다. “야거는 생존에 관해서 가장 본질적인 진리만 알고 있을 뿐, 두 사람이 처한 곤경에 대해 어떠한 실질적인 해결책도 내놓지 못했”(12~13쪽)기 때문이다. 그 어떤 위대한 ‘시’로도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낀 야거는 화장터에서 일하다가 가족을 위해 유골함을 훔친다. 결국 감옥에 갇힌 야거는 어느 날 밤, 신비한 목소리로부터 “내일 감옥에서 나가면 맨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우리 바꿉시다’라고 말해봐. 너의 시재를 전부 그에게 주고 그의 모든 삶의 지혜를 달라고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듣게 되고, 감옥을 나서는 순간 타인과 영혼을 바꾸기에 이른다.
「당나라로 돌아가다」 역시 중국 현대인의 욕망과 그로 인한 정신적 피폐함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대학 교수인 ‘나’는 당위원회 부서기이자 학교 최고의 미녀로 불리는 자신의 아내가 총장과 부적절한 관계인 것을 알게 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한 수의 시처럼 아름다운 당나라 시대로”(85쪽) 돌아가고 싶어 한다. 우연히 당시(唐詩) 한 편에서 이런 비밀을 발견하게 된 ‘나’는 천둥 번개가 치는 날 시계탑 꼭대기에 올라가 번개를 맞고 당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가난과 전쟁으로 인해 그곳에서 ‘나’의 삶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당나라로 돌아오기 전, 나는 이곳에 오기만 하면 나의 지혜와 재능, 그리고 남들보다 천 년 이상 앞선 문명으로 틀림없이 이곳에서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나는 관원이나 상인이 되지 못했고 심지어 창안성에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95쪽)
당나라의 대시인 이백(李白)을 만나기 위해 창안성에 다녀온 ‘나’는, 마을 사람들과 자신의 아내가 군부대의 습격에 비참하게 죽어 있는 것과 자신의 아내가 다른 사내와 간통을 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참담함에 빠진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현실의 탐욕적 삶보다 “기근과 흉작, 살육이 존재하는” 당나라 시대의 삶이 더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가장 환상적인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열두 편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현대사회의 정신적 도덕적 곤경에 대해 이야기한 문제작
이처럼 류팅은 “현실과 비현실, 상상과 관념이 빈틈없이 긴밀하게 연결된” 방식으로 중국 현대인들의 실상을 기록한다. 정부의 토지개발사업의 보상 문제에 맞서다가 굴착기에 머리를 맞아 온몸이 마비된 채 오로지 귀로서만 세상을 감각할 수 있는 비참한 상황을 그린 「귀」, “죽음에 이르기 직전의 두려움을 먹고 살아왔던”(120쪽) ‘죽음의 신’이 더 이상 인간의 죽음이 순수한 두려움이 아니라 욕망과 쾌감, 분노와 증오 같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굶주림을 겪게 된다는 「죽음의 신과 친구가 되다」, 야간버스 운전기사인 ‘라오훙’이 단골 승객인 한 아가씨의 권유로 처음으로 경로를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지만 단 한 번의 일탈로 인해 그 아가씨를 비극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아이러니함을 다룬 「낮과 밤」, 제복이 가진 권력에 매료된 경찰이 그 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제복에 집착하다가 결국 감옥에 가서 죄수복을 입게 된다는 「제복」, 현실에서 아주 작은 것조차 꿈꾸지 못하게 된 주인공의 영혼이 노인처럼 늙어버려, 실제로 죽어 화장을 했을 때도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았다는 「영혼의 무게」 등. 『뒤바뀐 영혼 : 류팅의 기묘한 이야기』는 가장 환상적인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열두 편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현대사회의 정신적 도덕적 곤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가장 파격적인 문제작이다.
류팅(劉汀)
중국 ‘80후’를 대표하는 청년 작가로 소설가와 시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중국 최고의 문예지인 『인민문학』의 수석 에디터를 맡고 있다. 대표 작품으로 장편소설 『부커 마을의 편지』 『청춘약사(略史)』, 산문집 『타인의 생활』 『고향집』 등이 있으며 『인민문학』 『10월』 『산화(山花)』 『청년문학』 『시간(詩刊)』 등 유수의 문예지에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신소설가경선’ 신예상과 제39회 홍콩문학상 소설 부분 우수상, 제2회 중국청년작가상 비허구제명상 등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우리는 더 이상 고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타인, 사람과 자신이 일치된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또한 우리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직접 인식할 수 없다. 모든 인식은 문학의 기법인 은유와 상징, 우화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우리 자신은 매체를 통해서만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 (……) 문학 혹은 예술이 현대생활의 종교의식이라면, 허구는 이 의식의 핵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허구는 소설이 소설일 수 있는 본질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뒤바뀐 영혼
귀
당나라로 돌아가다
죽음의 신과 친구가 되다
낮과 밤
영혼의 무게
제복
죽음의 매니저
허구의 사랑
아버지의 감옥
양치기
추수
작가 후기 : 신허구, 내가 상상하는 소설의 가능성
번역을 마치며
추천사
류팅의 소설은 이 시대의 숨결과 독특한 질감을 정확히 파악하여 기묘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허구를 통해 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현대적 감각이 넘치는 방식과 언어로 중국의 이야기를 서술해내고 있다. _문학평론가 리징쩌(李敬澤)
류팅은 현상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때문에 그는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 세상 밖 인간들의 신기한 모습을 서술한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항상 정착하지 못하고 보다 풍부하고 두터운 서사를 통한 변화무쌍한 드라마의 기법을 추구한다. 아직 젊은 작가인 류팅은 자신만의 비밀스럽고도 광활한 글쓰기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_문학비평가, 베이징대학교 교수 천샤오밍(陳曉明)
이 소설은 진실과 허구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리면서 그 사이에 친근하면서도 포근한 이미지와 일상과 기적이 상생하는 공간을 만든다. 류팅의 소설에서는 이 모든 것이 역사를 와해시키는 침통한 힘이 될 뿐만 아니라 복원하기 힘든 역사의 단단한 응어리가 된다. 이것들이 모여 시대의 운명을 기록한다. _소설가 리얼(李洱)
류팅은 청년 작가들 가운데서 대단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인물 중 하나다. 그의 소설은 허와 실, 진실과 거짓 사이의 아주 좁은 틈을 헤쳐 가면서 힘 있고 놀라울 만큼 정교한 서사를 펼치고 있다. 그는 문자라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생활 속에 흩어져 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현실을 찾아 재현한다. _소설가 치우화둥(邱樺東)
책 속으로
그는 시집 『끝』을 손에 꼭 쥔 채 육중하게 건물 아래로 떨어졌다. 허공을 내려가는 순간, 야거는 건물 꼭대기의 유리를 보았다. 마치 작은 천창(天窗) 같았다. 그러나 그 밖에는 별도 없고 달도 없었다. 야거는 자신의 몸이 화강암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면서 뼈가 끊임없이 우두둑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가 기괴한 언어로 시를 읽는 것 같았다. _「뒤바뀐 영혼」, 41쪽
그들은 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고 눈을 뜨지 못하며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입은 움직일 수 있었다. (……) 몸 전체에서 유일하게 기능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귀였다. (……) 이것이 나의 가장 큰 비애인 동시에 기쁨이었다. 만일 내가 생각할 수 없었다면 어떤 고통이나 번민도 없었을 것이고, 이 세상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이 내게 이 영역을 남겨주셨기 때문에 나는 머릿속 작은 뇌세포 속에 살아 있었다. _「귀」, 49쪽
나는 우연히 당시(唐詩) 한 편에서 이런 비밀을 발견했다. 미안하지만 그것이 어느 시인지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바로 오늘, 내가 학교 시계탑 꼭대기에 서 있기만 하면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쳐 내 몸에 적중할 것이고, 나는 화신(火神)이 되어 순간적으로 시공간을 건너뛰어 곧장 그 시가 그리고 있는 장면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_「당나라로 돌아가다」, 87쪽
하지만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할 뿐만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두려움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쾌감과 비분, 침울, 증오의 감정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감정은 음미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딱딱하고 거칠어 항상 고약한 악취를 풍겼다. (……) 고작 몇 밀리그램의 두려움 속에 너무 많은 죄책감이 섞여 있어 그의 위는 뜨거운 솥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_「죽음의 신과 친구가 되다」, 120~121쪽
라오훙은 이미 몇 년째 아침 해를 제대로 보지 못한 터였다. (……) 눈앞의 시야가 확 트이고 막 떠오르기 시작한 붉고 큰 해가 대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햇빛이 눈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희미하고 누런빛이었다. 하지만 전조등의 누런빛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는 바닷물에 씻긴 흐릿한 노란색이라 깨끗하고 밝았다. _「낮과 밤」, 167쪽
“나이가 많다니요…… 딸꾹…… 우리 남편은 삼십대인 데다 몸무게도…… 딸꾹…… 거의 1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사람이라고요…….”
직원이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삼십대라고요? 영혼이 늙으면 마찬가지예요. 다 태우고 보니 팔십대 노인처럼 바싹 마르고 기름기가 없어 꼭 철사 같았거든요.” _「영혼의 무게」, 208쪽
그 후에 경찰국에 도둑이 들었다. 이 도둑은 배짱이 하늘을 찔렀다. 잃어버린 물건은 제복이었다. 각 부서마다 전부 제복을 잃어버렸다. 운동실에 있는 제복도 잃어버리고 사무실에 걸어놓은 제복도 잃어버렸다. 사건은 아주 빨리 해결되었다. 그가 바로 범인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사물함에서 서른 벌에 가까운 다양한 유형의 제복을 발견했다. 직장에서 일괄적으로 배급한 것이면 남녀 가리지 않고 속옷이건 겉옷이건 따지지 않고 전부 훔쳤다. _「제복」, 234쪽
내 서비스에는 ‘애처롭고 가련한 패키지’부터 ‘히스테리 패키지’ ‘완전히 변신하는 패키지’ ‘시신도 유골도 없는 패키지’ ‘낭만적인 죽음의 신과의 약속 패키지’ ‘죽음이 오래 지속되는 패키지’ 등 수십 가지 상품이 있다. 게다가 손님 개개인의 기호에 맞게 특별 디자인을 할 수 있다. _「죽음의 매니저」, 250쪽
나는 잉슈라고 하는 허구의 인물이다. 리런은 자신 역시 또 다른 허구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작가의 이름은 류팅(劉汀)이었다.
한 허구적 인물의 절망적인 사랑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_「허구의 사랑」, 340쪽
내가 가장 듣고 싶은 것은 역시 매일 감방이 어두울 때 옆방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나는 정확한 시간을 알지 못했다. 단지 어둠의 정도에 따라 시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가장 어두운 때가 바로 나의 자정이었다. _「아버지의 감옥」, 349쪽
마침내 새끼 양의 몸이 샤오바이의 몸을 빠져나왔다. 털빛은 새하얬지만 머리는 하나였다. 아와이가 다시 손을 집어넣자 머리가 하나 더 만져졌다. 이번에도 살살 당겨서 샤오바이의 몸 밖으로 빼냈다. 놀랍게도 털이 새까맸다. 알고 보니 샤오바이는 쌍둥이를 뱄고 흰 놈과 검은 놈이 앞다투어 출구에 몰려 출산을 어렵게 만든 것이었다. _「양치기」, 416쪽
손목에 힘을 주는 순간 뚝 하는 소리와 함께 팔찌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 얼굴에는 혈색도 돌지 않았다. 그녀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깨졌네. 깨져버렸어!” 잘라진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곳보다 색이 훨씬 진했다. 팔찌 안쪽에 이미 오래전부터 금이 가 있어 조만간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_「추수」, 4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