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족, 그 징글징글한 시작과 끝에 대하여
류현재 작가의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이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전작 『네 번째 여름』으로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신작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으로 제8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하며 대체 불가 스토리텔러의 역량을 입증했다. ‘가족 간병’이라는 예민한 소재를 흡입력 넘치는 스토리로 녹여낸 이번 작품을 통해, 작가는 서로 다른 무게로 짊어지는 ‘가족의 책임’이 일으키는 비극의 내막을 생생하게 추적한다.
소설은 한 노부모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찹쌀떡이 목에 걸린 채 죽어가는 어머니, 칼에 찔려 피 흘리는 아버지. 그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자식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네 명이나 되는 자식 중 누가 더 불효자인지 답을 낼 수 없다는 비감 어린 회한이다. ‘뒤통수를 친’ 자식들에 대해 치욕스러워하는 부모. 피할 수 없는 순리로 닥쳐온 부모의 ‘늙고 병듦’을 짊어진 자식들. 서로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그들의 끊을 수 없는 굴레가 끊긴 그날, 그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류현재
2003년 MBC 드라마 단막극 〈아빠 로미오 엄마 줄리엣〉 각본으로 데뷔, 그 후 방송작가로 〈난 니가 부러워〉 〈우리가 쏜 화살은 어디로 갔을까?〉 등을 선보였다. 장편소설 『야미』 『남편은 요세미티에 있습니다』 『아내를 위해서 월요일에 죽기로 했다』 『네 번째 여름』 등을 냈다.
지금은 남해에서 반은 작가, 반은 어부로 생활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자연산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야기꾼이 되고자 한다.
프롤로그
김은희
김현창
김인경
김현기
김영춘과 이정숙
에필로그
작가의 말
‘행복한 우리 집’과 ‘지긋지긋한 지옥’
욕망의 간극 사이, 곪아가는 가족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강렬한 사랑과 증오가 뒤얽힌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한때 누구보다 사랑하는 존재였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그러고도 끊을 수 없는 ‘가장 질긴 족쇄’인 가족에 대해 사실적이고 집요하게 조명한다.
이혼한 차녀 ‘김은희’는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간병을 위해 부모의 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부모는 여전히 자존심을 세우며 “김은희가 그들을 모시고 있다는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오갈 데 없는 김은희 모자를 부양하고 있는 거라고 자부했다”(31쪽). 그런 고압적인 부모의 태도와 길어지는 간병 생활에 그녀는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형제들에 대한 불만이 쌓여간다. 그렇게 억압된 ‘김은희’의 마음은, 결국 아버지의 생일날 ‘딸랑 찹쌀떡 하나’ 사 온 장녀 ‘김인경’이 부모의 편을 들며 자신을 비난하자 폭발하고 만다.
“살아 계실 때 효도해라.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죄다 효도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해본 사람들이야. 해봤으면 그게 얼마나 징글징글한 건지, 기약 없는 지옥인지 아니까 그런 말 못 하지. 그래서 세상에는 효도하는 사람들보다 후회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거야. 그게 효도보다 훨씬 더 쉽고 짧으니까. 나도 빨리 좀 그래봤으면 좋겠다. 눈물 질질 흘리면서 돌아가시기 전에 효도할 걸, 그렇게 후회하는 날이 제발 하루라도 빨리…….”(50쪽)
그 사실을 알고도 대학병원 의사인 장남 ‘김현창’은 ‘진리 탐구’를 위한 신문 칼럼을 쓴다고 가버리고, 고시에 실패해 물류센터 일을 하며 사는 막내아들 ‘김현기’는 아예 부모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 원가족은 이제 자식들에게 행복과 거리가 먼 족쇄일 뿐이고, 늙고 병든 부모의 부모 노릇이 지긋지긋한 그들은 부모에게 단 한 가지만을 바란다.
“우리가 부모님께 바라는 건 그거 딱 한 가지예요.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할 필요도 없고, 걱정해주실 필요도 없어요. 정말 자식들을 위한다면 그냥 조용히 자식들이 하자는 대로 해주시기만 하면 돼요.”(64쪽)
“걱정 마. 우리한텐 자식이 넷이나 있어.”
끊을 수 없는 관계의 무게
자식 넷과 부모, 여섯 명의 가족이 각자의 속사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안다 여기지만 실상 남보다도 모르는 사이. 각자의 시점에서는 다른 가족의 마음을 절대로 알 수 없게 묘사하는 치밀한 구성으로 소설은 그러한 ‘가족’의 관계를 구현해낸다. 차녀 ‘김은희’는 막내 ‘김현기’가 보기에는 “자신이 가장 무른 돌인 줄도 모르고 온 가족을 상대로 부딪치는”(164쪽) 것이 안타까운 누나지만, 장녀 ‘김인경’에게는 “단순하고 감정적”(114쪽)인 철부지 동생일 뿐이다. 같은 인물이어도 바라보는 사람과 관계, 시기에 따라 그 면면은 전혀 다르게 해석되며 그것은 자식들이 부모를 보는 시선에서 가장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만날 똑같은 소리, 진짜 지겨워죽겠어.”
동성빌라 시절에도 부모님은 똑같았었어. 달라진 건 그땐 우리가 그걸 지겨워하지 않았지만 이젠 지겨워한다는 거지.(162쪽)
부모 노릇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늙고 병든 부모는 한탄한다. “다 틀려먹었어. 그게 왜 옛날 일이야. 우리가 가족이었을 때, 지들이 우리 자식이었을 때, 우리가 지들 부모였을 때, 바로 그땐데…….”(202쪽) 그러한 괴리에서 자라난 미움에 떠밀려 가족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한 발씩 천천히 파국으로 나아가게 된다.
‘누가 그들을 죽였나?’ 그 답을 찾는 사이 독자는 ‘가족’이라는 의무를 짊어진 이들에게 필연적으로 깃들고야 마는 편협한 사랑과 끈적한 증오를 함께 직시하게 된다. 그 애증이 이끈 파멸 앞에서 마침내 마주하게 되는 비극의 근원은 놀랍도록 강렬한 여운을 선사한다. 가정의 수마다 존재하는 가족의 고통과 애환, 그 면면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진정한 가족애란 무엇일지 돌아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