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행운을 얻은 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존이 시작되었다
한국판타지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조선희가 익숙한 서울의 풍경을 낯설고 경이로운 세계로 바꾸어놓으며, 파국 이후에도 이어지는 일상의 기쁨과 인간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사랑의 힘을 이야기한다. 가을은 무언가를 거두는 계절이다. 나무는 잎을 내려놓고, 대지는 겨울을 준비하며, 사람들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가을은 끝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보지 못한 삶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평생 행운과 거리가 멀다고 믿어온 예순다섯 살 혜령. 생애 처음 산 복권이 1등에 당첨된 10월의 어느 멋진 날, 서울을 뒤흔드는 대지진이 발생한다. 전기와 통신이 끊기고 도시는 무너진다. 가족도 이웃도 사라진 폐허에서 홀로 깨어난 혜령에게 남은 것은 무용지물이 된 당첨 복권과 늙은 몸, 그리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내일뿐이다. 언제나 혼자가 되고 싶었다. 다만 세상에 정말로 혼자 남겨지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혜령은 무너진 도시를 지나 봉산 전망대의 미완공 화장실에 거처를 마련한다. 주인 없는 마트에서 식량과 공구를 챙기고, 약수터에서 물을 긷고, 버섯을 캐고, 텃밭에 씨앗을 뿌린다.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기 위한 작은 일들이 하나둘 쌓이며 폐허에는 다시 생활의 질서가 생겨난다. 이따금 거대해진 곤충이 나타나고, 서울의 밤하늘에는 있을 수 없는 오로라가 펼쳐진다. 혹독한 겨울과 눈부신 여름이 지나가고, 그렇게 열일곱 번째 가을이 찾아온다. 어느덧 혜령은 자신이 알던 세상뿐 아니라 자신이 알던 인간의 몸과 시간마저 달라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한 여성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생존기다. 무너진 세상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무엇일까. 한 장의 복권도, 평생 모은 재산도 아니다. 오늘 먹을 한 끼를 마련하는 손길, 다시 싹을 틔우는 씨앗, 누군가와 나누는 저녁 식사, 그리고 끝내 잊히지 않는 한 사람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 지은이
조선희
장편소설 『고리골』로 제2회 한국판타지문학상 대상을, 『아홉 소리나무가 물었다』로 2015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아돈의 열쇠』 『마법사와 세탁부 프리가』 『거기, 여우 발자국』 『404번지 파란 무덤』 『루월재운 이야기』 『소금 비늘』 『매구를 죽이려고』 『부굴의 눈』 『바꿔 볼래?』 『팬텀 시그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소설집 『모던 팥쥐전』 『모던 아랑전』 등을 냈다.
위급 재난 문자
능이버섯 군락지
토마토의 수확 기간
먹바퀴벌레
대롱 약수
작가의 말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부터 매일 밤 불면증이 찾아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나는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겨울바람이나 특정 주파수 소리 같은 백색잡음을 틀어두곤 했다. 그러면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드는데 그래봤자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깼고 새벽까지 뜬눈으로 뒤척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세상이 파괴되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극단의 스트레스로 인한 도피성 방어기제였다. 이 현실에서 도망칠 곳은 잠뿐이었다. 그래, 자고 일어나면 어떻게든 되어 있겠지. 늘 그랬듯 곧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_15~16쪽
조각난 숲은 밤송이가 벌어지듯 사방으로 틈을 벌렸다. 한번 벌어졌던 땅들이 다시 맞물리면서 그 힘에 못 이겨 튀어 올라왔다. 나무는 죄다 뽑혀나갔고 부서진 집들은 부풀어 오른 땅의 거죽에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었다.
_18쪽
나는 행운보다 더 가망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_20쪽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비는 계속 내렸다. 천둥 번개가 만 번은 넘게 쳤을 것이다. 이 엄청난 현상은 지옥의 광경이라기보다는 방금 태어난 별이 원시대기 형성 중이거나 혹은 어느 행성이 테라포밍 중인 것 같았다.
_20~21쪽
세상은 소름이 끼치도록 고요했다. 기묘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부서진 성당 건물 사이로 비죽 솟아오른 십자가가 마치 거대한 무덤을 가리키는 듯해 숙연해졌다.
_24쪽
모두 죽고 나만 살아 있는 것.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나만 죽고 모두 사는 게 낫다. 문득 이건 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혼자이기를 소원했다. 하지만 그 혼자는 삶의 책임과 의무가 끝나고 자유를 얻어 원래 혼자였던 나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아무도 없는 세상에 혼자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_27쪽
“엄마, 사는 게 너무 피곤해. 다음 생에는 부잣집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어.”
“그럼 나는 그 주인이 되겠어. 다른 고양이를 데려와서 너를 질투의 화신으로 만들어주지. 부잣집 고양이의 삶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어디서 무엇으로 태어나든 살다 보면 피곤해질 때가 있어.”
“다른 고양이를 데려오지 않으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야.”
“살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라.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할 수는 없지만 이런 경우의 수 하나 정도는 내가 말해줄 수 있지. 너는 엄마의 무한한 사랑이 천년만년 계속될 줄 아는데 그 사랑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이야. 생은 그런 거야.
절대 멈춰 있지 않아. 계속 들어봐. 그래서 속상한 너, 고양이는 홧김에 집을 나가서 길냥이가 되지. 그러다가 결국 거지꼴로 야옹, 하면서 돌아와. 하지만 나 주인님은 이미 예쁜 다른 고양이가 있고 넌 그렇게 밀려나고 마는 거지.
_33~34쪽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나처럼 산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해도 모두 여기로 떨어져 죽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갈라진 땅의 틈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공기가 물결치듯 일렁이며 내 몸을 휘감았다. 나는 거대한 시체 구덩이 앞에서 이대로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장엄한 석양이 이 늙은 생명만큼은 살리겠다는 듯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늘을 물들인 진홍색이 섬뜩하리만치 아름다웠다. 그 처절함에 알 수 없는 오기와 반감이 생겼다.
_34~35쪽
10월의 밤바람이 이토록 차고 매서울 수가.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이건 꿈이야. 그렇게 여기려고 할수록 실감만 더 날 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현실은 피부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무슨 상상을 해도 이 상황은 바뀌지 않을 테니 내일 아침에 나는 부디 죽어 있기를.
_36~37쪽
“됐어요. 저도 책 좀 읽고 말발 좀 키워야겠어요.”
“좋겠다. 노바 씨는 이제부터 읽을거리가 넘쳐나서. 난 가진 책을 다 읽어버려서 새로운 책이 필요한데 도통 구할 수가 없어.”
_140쪽
태양과 달의 문제일까. 혹은 지진 이후 나타난 오로라와 관련된 문제일지도.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오로라의 소용돌이는 하늘 높이 저 우주를 향해 황홀한 빛과 색을 뿌리며 치솟아 올랐다. ‘천국의 사다리’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듯했다. 어떤 때는 물리적으로 절대 닿을 수 없는 저 허깨비 같은 형상이 혼령들의 광채 같았다. 동시에 이 고립지를 둘러싸고 가두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이 문제이든 우리는 시공에 갇혔다.
_150쪽
내 것인 줄 알고 움켜잡은 채 허우적거리며 살았는데 살아내고 보니 내 것이 아닌 남의 삶을 이고 지고 살았다. 원래 사람의 삶은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주인인 삶이 아니었다. 그래서 혼자이면서 끊임없이 혼자이기를 소망했다. 심지어 내 삶에서조차 한 발짝 떨어져 나오고 싶었다. 바깥의 분명한 자리에서 명백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하지만 나라는 그늘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영락이 그 그늘을 알아보았다. 그는 나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으나 내가 파란 응달에 서 있는 것을 온도로 느꼈다.
_208~209쪽
나는 질서정연한 것에서 안정을 느낀다. 하지만 잔해의 풍경이 괴롭지는 않았다. 거기에 폐허의 질서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폐허는 엉망진창인 것이 질서니까.
_212쪽
“치아는 괜찮아요?”
“시원치 않아요. 죽을 먹을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말랑한 게 아무래도 먹기 편하죠. 저 가끔 묵은쌀로 떡도 쪄 먹어요. 마침 아침에 쪄둔 거 있는데 드셔보실래요? 지금 대접할 게 그것뿐이네요.”
영락이 뒤꼍으로 가기에 따라가봤더니 화덕 위에 얹혀 있는 시루 솥이 보였다. 그가 솥뚜껑을 열어 콩과 팥과 밤이 얹힌 떡을 손으로 뚝뚝 잘라 접시에 놓고 일부는 봉지에 담아 건네며 말했다.
“이건 집에 갈 때 가져가세요. 물 가져갈 테니 먼저 가 있어요.”
_214쪽
그때 나는 깨달았다. 노바가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는 것을. 그의 상식에서 태양의 수명은 아직 무한하게 남아 있지만 내 수명은 그렇지 않았다. 비록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이한 힘의 조정 작용으로 여전히 잘 버티고 있긴 했지만. 우리에게 벌어진 물리적 불가사의함은 분명한 현실이었고 노바는 의심과 인정 사이를 오가는 중이었다. 멀리서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렸다.
_235쪽
“아무도 없는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것이 너무 좋아서 엉엉 울었어요.” 그러고 씩 웃는데 정말이지 소시오패스 같았다. 하지만 전혀 오싹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행복해 보였다. 나는 망하기 전 세상에서 저 아이가 정말 마음을 많이 다쳤구나 싶어 그저 안쓰러울 뿐이었다. 세상이 망하지 않았다면 저 아이는 진작 죽었다.
_274~275쪽
“그러니까 세상은 진짜, 확실히 멸망했다”
세상의 마지막 생존자는 왜 예순다섯 살 여성이어야 했을까
인류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대개 젊고 강인하다. 그는 무기를 들고 폐허를 가로지르며, 위험을 제압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그러나 작가가 선택한 마지막 생존자는 예순다섯 살의 평범한 여성이다. 혜령에게는 남다른 체력도, 전문적인 생존 기술도 없다. 대신 오랜 세월 누군가를 먹이고 보살피며 살아온 사람만이 아는 생활의 지혜가 있다. 먹을 것을 아끼고, 물건의 쓸모를 가늠하고, 주어진 재료로 한 끼를 꾸리고, 겨울이 오기 전에 살림을 정돈하는 일. 재난 이전에는 보잘것없어 보였던 능력들이 새로운 세상에서는 무엇보다 확실한 생존 기술이 된다.
이 소설의 독창성은 바로 이 전복에 있다. 재난 앞에서 인간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반드시 젊음이나 완력이 아니다. 삶을 오래 살아낸 사람의 경험, 반복되는 일상을 감당해온 끈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다시 살림을 시작하는 능력이야말로 뜻밖의 생존 자원이 된다.
혜령은 세상을 구할 생각이 없다. 세상을 다시 세울 의무도 느끼지 않는다. 다만 내일도 먹어야 하고, 추위가 오기 전에 잠자리를 마련해야 하며, 심어놓은 작물이 자라는 동안 자신도 살아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존은 더 이상 죽음을 피하기 위한 투쟁만이 아니라, 삶을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된다. 무엇보다 혜령은 가족을 위한 책임과 의무 속에서 오랫동안 자기 자신으로 살아보지 못한 인물이다. 세상이 무너지고 모든 관계가 사라진 뒤, 그는 역설적으로 처음으로 자신의 하루를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작가는 이 늦은 자유를 낭만화하지 않는다. 고독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살아남는 일은 고되며, 사라진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무도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 세계에서 혜령은 서서히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세상의 끝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한 사람의 인생.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익숙한 재난소설과 다른 길을 걷는 이유다.
폐허에 텃밭을 만들고, 멸망한 도시에서 묵은지를 찾다
〈동물의 숲〉처럼 느긋하면서 치밀한 한국형 아포칼립스
서울 은평구 봉산과 백련산, 응암동 일대. 익숙한 산책길과 약수터, 마트와 사찰이 소설 속에서 거대한 생존 게임의 무대로 다시 태어난다. 작가는 실제 지형을 바탕으로 재난 이후의 세계를 구상했다. 어떤 건물이 무너져도 버틸 수 있을지, 어디에서 물을 구하고 어떤 길로 이동해야 할지, 도시의 물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쓸모를 유지할지를 상상하고 계산했다. 작가 스스로 초고를 생존 수첩에 가까웠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작품에는 실제 생활에 발을 딛고 있는 세밀한 생존의 감각이 살아 있다.
마트에서 모은 물건으로 살림을 꾸리고, 요가 매트와 뽁뽁이로 추위를 막으며, 제철에 맞추어 먹을 것을 마련하는 혜령의 일상은 마치 오픈월드 생존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이 소설의 생존 방식에는 한국적인 생활의 기억이 곳곳에 배어 있다. 폐허에서 식량을 구하던 혜령이 사찰의 장독대에 묻혀 있던 묵은지를 찾아내는 장면이 그렇다. 서구의 아포칼립스가 총과 탄약, 벙커와 비상식량을 먼저 떠올린다면, 조선희의 세계에서는 오래 묵은 김치 한 항아리가 더없이 귀한 보물이 된다.
멸망 이후에도 김치는 익어가고, 계절이 바뀌면 밭에서는 새로운 작물이 자란다. 인간의 문명이 멈춘 자리에서 자연은 도리어 왕성하게 움직인다. 파괴된 서울에 펼쳐지는 풍경은 섬뜩하면서도 아름답다. 도시의 불빛이 사라진 밤하늘에 은하수가 드러나고, 불가능할 만큼 찬란한 오로라가 하늘을 뒤덮는다.
그러나 이 평온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거대해진 곤충들이 출몰하고, 자연의 질서는 어딘가 뒤틀려 있다. 아무도 없는 세계는 인간의 간섭에서 해방된 낙원처럼 보이다가도 언제든 목숨을 위협하는 낯선 행성으로 돌변한다. 무서운 것은 재난이고, 흥미로운 것은 생존이며, 뜻밖에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그 사이사이에 되살아나는 일상의 리듬이다. 물을 긷고, 음식을 만들고, 씨앗을 심는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혜령과 함께 다음 계절을 준비하게 된다. 모두가 떠난 세계에 혼자 남아 매일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이 기묘한 생활감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만의 특별한 독서 경험이다.
열일곱 번의 가을, 그리고 멈추지 않는 생명의 시간
빠진 치아가 다시 자라고, 인간의 몸은 낯선 진화를 시작한다
멸망한 세계에 적응해 살아가던 혜령에게 어느 날 뜻밖의 변화가 찾아온다. 빠졌던 치아가 다시 돋아나고, 감각은 예민해지며, 나이를 먹어도 생명이 좀처럼 쇠하지 않는다. 시간은 분명 흐르고 있다. 계절이 반복되고, 작물이 열매를 맺고, 해가 뜨고 진다. 그런데 사람의 몸은 자연스러운 노화의 법칙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서울의 밤하늘을 물들이는 오로라, 기이하게 길어지는 낮, 외부와 단절된 공간.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단순한 재난의 후유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때 소설은 생활밀착형 생존기에서 본격적인 SF 미스터리로 변모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과연 여전히 인간인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육체인가, 기억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인가.
혜령 앞에 나타나는 생존자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멸망 이후의 세계를 살아간다. 캠핑카를 집으로 삼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청년 노바, 폐허에서 금붙이를 모으는 안섭과 윤주, 그리고 어디에서 왔는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 영락. 이들의 삶은 생존의 문제가 곧 인간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가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어떤 이는 모든 것을 잃은 뒤에도 재산에 집착하고, 어떤 이는 세상이 끝나서야 자유를 느끼며, 또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알아보고 그 곁에 머문다. 인간이 극도로 귀해진 세계에서조차 사랑과 불신, 소유욕과 연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할 가능성만큼은 끝내 남아 있다. 작가는 재난과 변이라는 거대한 상상력을 통해 생명의 지속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무엇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가. 그리고 생명이 끝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이유로 살아가야 하는가.
세상이 멸망한 뒤에도 저녁은 찾아온다
한 끼의 식사, 한 잔의 술 그리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순간들은 의외로 재난이나 괴물과의 사투가 아니다. 오랫동안 혼자였던 사람이 다른 생존자와 식탁을 마주하는 순간, 캠핑카에서 파스타를 먹고 위스키를 마시며 보드게임을 즐기는 저녁,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사소한 시간들이야말로 이 소설에 가장 깊은 온기를 불어넣는다. 세상의 모든 식당과 가게가 사라지고 화려한 문명이 무너진 뒤에도, 사람은 여전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함께 웃을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루는 조금 다른 빛깔을 띤다.
혜령에게도 그런 변화가 찾아온다. 그는 오랫동안 타인의 삶을 돌보느라 자기 삶에서조차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를 진정으로 살아 있게 하는 것은 세상에서 완벽하게 혼자가 되는 자유만은 아니다. 딸 이레를 향한 사랑은 멸망 이전의 세계에서 이어져온 가장 깊은 기억이자, 새로운 관계를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다. 혜령은 노바를 비롯한 생존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돌봄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 배워나간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헤아리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그러한 순간마다 생존은 조금씩 삶이 된다. 소설의 제목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그래서 아름답고도 아이러니하다.
혜령에게 10월은 모든 것을 빼앗긴 계절이자,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다른 시간이 시작된 계절이다. 그러나 수많은 가을이 지나고 다시 돌아본 그날의 의미는 처음과 같을 수 없다. 아름다운 날이란 반드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날만을 뜻하지 않는다. 삶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달라진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소설이 그리는 희망은 거창한 구원의 약속이 아니다. 내일 아침에도 눈을 뜨고, 따뜻한 음식을 마련하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다시 찾아올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겨울을 앞두고 마지막 열매가 무르익듯, 혜령의 삶 역시 오랜 시간과 상실을 통과하며 이전과 다른 깊이를 얻는다. 세상은 끝났지만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그리고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이 여러 번 끝난 뒤에도 오늘을 다시 아름다운 날로 만들어보는 일인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