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시리즈 9권. 신종원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블랙홀을 향해 달려가는 음향신호의 굉음으로 가득 차 있다. 다다르기 전까지는, 어디에 수렴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신종원이 만들어낸 낯선 세계는 탄생과 소멸의 경합을 뛰어넘어 매혹적인 운명을 향해 운동한다.
신종원 작가는 세 편의 매혹적인 소설을 통해 “규칙 속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소설가로서 “글쓰기에 대한 알레고리”를 선보이며 “낯선 놀라움을 유발하는 대신 낯선 세계를 수립하는 데 성공”(해설, 이소 평론가)한다. “원본을 상쇄”(127쪽)시키는 신종원 작가의 목소리, 그 음향신호는 삶과 죽음이 수렴하는 진공을 향한다.
신종원
단편소설 「전자 시대의 아리아」로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km/s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동명의 소설집 『전자 시대의 아리아』를 썼다.
마그눔 오푸스
아나톨리아의 눈
고스트 프리퀀시
에세이 운명의 수렴
해설 주술과 언어의 유물론_이소
이미지와 음향으로 가득 찬 진공
주술적 유물론의 세계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획이다. 그 아홉 번째 작품으로 신종원 작가의 『고스트 프리퀀시』가 출간되었다. “단단하게 쌓아 올린 이 세계를 허투루 다루는 장면이 거의 없을 정도”(임현 소설가,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평)라는 극찬을 받으며 데뷔한 신종원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고스트 프리퀀시』는 “블랙홀을 향해 달려가는” 음향신호의 굉음으로 가득 차 있다. “다다르기 전까지는, 어디에 수렴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신종원이 만들어낸 낯선 세계는 탄생과 소멸의 경합을 뛰어넘어 “매혹적인 운명”을 향해 운동한다.
“일어났던 일들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시오.
자네의 목소리로 원본을 상쇄시켜 없애버리는 것이오.
할 수 있겠소?”
매혹적인 운명을 향해 운동하는 낯선 세계
「마그눔 오푸스」는 “퇴행성 질환을 겪는 대뇌의 미시적 세계와 별주부가 등장하는 신화적 세계의 중첩”(해설, 이소 평론가)이다. 손자의 태몽에서 황금 호랑이의 형상을 한 ‘양계진 씨’는 놓아달라는 거북이의 말을 무시하고 황금 잉어를 훔친다. 그 꿈과 비밀은 ‘양계진 씨’와 함께 병들며 “영구적인 기능 정지 상태로 다가”(18쪽)간다. ‘양계진 씨’는 꿈을 꿀 때마다 황금 잉어의 주인(용왕)에게서 훔쳐간 것을 돌려달라고 종용받는다. 산모와 태아를 연결하는 것이 탯줄이듯, 꿈은 ‘양계진 씨’와 기억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양계진 씨’는 꿈속에서 50년 만에 아버지와 상봉하여 자신의 태몽 이야기를 듣게 되고, 용왕을 만나 아버지가 훔친 “작고 아름다운 태양”(40쪽)―‘양계진 씨’ 자신―을 돌려주며 자신이 훔쳐간 황금 잉어(손자)는 잊어달라 부탁한다.
양계진 씨는 망각이 두렵다. 양계진 씨는 생명이 그의 인체에 불어넣은 정교한 로직들이 카오스에 오염되어 뒤얽히고 망가지는 것이 두렵다. 인체를 구성하는 아름다운 수와 비율들이 낱낱이 분해되는 것이 두렵다. 세상 또는 기억과 단절되는 것이 두렵다. 벌벌 떨리는 양계진 씨의 손. 이상운동질환의 징후가 아니라 순수한 공포심으로. (「마그눔 오푸스 」, 24~25쪽)
“지금 이 글이 결국 이렇게 종점에 도달하듯이.
수렴점을 향해 기우는 운명 하나하나를 생각하며.”
블랙홀을 향해 달려가는 고요한 굉음
상상 너머의 역설
「아나톨리아의 눈」은 퍼즐 같은 낯선 세계를 구성하는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은 게임 규칙을 제시하면서 시작된다. 그 뒤로 [2], [66], [77], [50], [18] 등 주사위의 값에 따라 이야기가 펼쳐진다. 쇼팽, 문장부호, 애창곡, 멸망한 왕조를 다루는 등 열 개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색과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 열 개의 면(이야기)을 가진 주사위가 보드 위를 구를 때마다 기존의 세계가 접히고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소설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작업”이고, “신종원의 소설은 좌표계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좌표계를 교란”(해설, 이소 평론가)한다.
1) 소설가는 실제 보드게임의 공용 장비인 구각뿔 주사위 두 개를 반드시 사용할 것.
2) 텍스트는 주사위를 굴려 나온 합 : 0~99 사이의 값만큼만 전진할 수 있다.
3) 주사위를 굴리는 횟수는 열 번으로 제한하는데, 열 개의 평면 픽션을 새로운 십면체 주사위의 눈으로 구부려 접기 위함이다. (「아나톨리아의 눈」, 47쪽)
표제작 「고스트 프리퀀시」는 소설가로서 던지는 문학과 작가에 대한 물음이 담겨 있다. “문학은 대상을 지켜주는 걸까, 지워버리는 걸까. 작가는 부여하는 자일까, 박탈하는 자일까.”(해설, 이소 평론가) 소설은 어둠에서 시작된다. “어둠 속에서” ZOOM-H4N-PRO(휴대형 녹음기기)의 “두 개의 귀가 열”(92쪽)린 그곳은 “불란서 주택”(93쪽)이다. 이 주택에서 열린 낭독 공연에 다녀간 뒤 신종원 작가 자신으로 추정되는 ‘나’와 시인 ‘박지일’은 “공연 후 후유증”(125쪽)으로 기이한 경험을 한다. ‘박지일’은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고 묻는 “알 수 없는 목소리”(114쪽)에 시달리고, ‘나’는 에디슨이 나오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가 에디슨 유령의 음성과 조우한다.
신종원 작가는 세 편의 매혹적인 소설을 통해 “규칙 속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소설가로서 “글쓰기에 대한 알레고리”를 선보이며 “낯선 놀라움을 유발하는 대신 낯선 세계를 수립하는 데 성공”(해설, 이소 평론가)한다. “원본을 상쇄”(127쪽)시키는 신종원 작가의 목소리, 그 음향신호는 삶과 죽음이 수렴하는 진공을 향한다.
무언가 픽션이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소설가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든 목소리는 굽이치는 파흔을 남기게 마련이며, 그러므로 글쓰기는 오래전부터 잉크를 빌려 목소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안티노이즈로 사용되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소설가는 다시 불을 끈다. 주위를 더듬어 의자에 다가가 앉는다. 거기서 그가 하는 것은 단지 듣는 것이다. 어둠 또는 희미한 분광의 심박을 헤아려보듯, 작은 녹음기의 두 귀를 앞으로 내민 채. (「고스트 프리퀀시」, 98~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