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적으로 그려낸 근미래의 일본을 통해 현재의 일본의 모습을 드러내다!
독일과 일본 양국에서 이른바 동시대를 대표하는 이중 언어 작가로서 명성이 높은 다와다 요코의 언어 세계가 촘촘히 새겨져 있는 소설집 『헌등사』.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일본을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에서 저자는 모국어인 일본어에 대한 감수성과 역량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동시에 언어(한자)의 형태 그 자체를 일종의 이미지처럼 활용하는 기법, 그리고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언어를 조금은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을 통해 익숙한 개념에 새로운 언어를 입혀놓은 뛰어난 역량과 압도적인 문학적 힘을 보여준다.
저자의 작품 세계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이후로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제까지 저자의 작품 속에서 직접적으로 표상되지 않았던 ‘일본’이 전면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는데, 압도적인 재난 앞에서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과 금기를 넘어서, 어떤 식으로든 타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려 하고, 그들의 말들을 모으고, 나와 타인이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해내는 것이야말로 소설가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초현실적인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심각한 원자력발전소 폭발 이후의 닫힌 세계로서의 일본을 일본열도 내부에서 이야기해나가는 표제작 《헌등사》, 지진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박진감 있게 그려내는 《끝도 없이 달리는》, 피폭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세계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면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불사의 섬》 등의 작품을 통해 3월 11일 이후의 정치·경제·민생 등의 문제를 부분적으로나마 모두 담아내며 우리로 하여금 일본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낯설지만 익숙한, 그리고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를 전한다.
다와다 요코
다와다 요코는 1960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고, 와세다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다. 1979년 19세의 나이로 시베리아 기차를 타고 홀로 독일로 갔다. 작가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짧은 이력서에조차도 이 기차 여행을 거의 빠짐없이 기재하는데,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 체험이 자신의 문학 세계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즉 기차역에서마다 다른 물을 마시며 서서히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 왔다는 점은 작가로 하여금 동양과 서양을 대립되는 세계가 아닌, 서로 겹치는 큰 경계 영역을 지닌 세계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아울러 새로운 세계와 언어에 대한 낯선 체험은 언어 자체가 갖고 있는 ‘매개체’로서의 속성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했다.
즉 언어는 투명한 유리처럼 자아와 세계를 매개시켜 주고 자신은 보이지 않게 물러나 있는 것이 아니라, 낯선 매개체로서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이 매개체를 통해 생각하고 말해 왔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는 세계를 자명한 것 혹은 고정된 정체성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문시하게 만든다. 다와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나’가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항상 변화하는 물 같은 존재로 그려지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새로운 언어를 익히면서 체험하는 언어의 이방성 혹은 낯섦은 모국어도 마찬가지로 거리를 두고 관찰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기존의 언어 권력에 매몰되지 않고 저항할 틈새를 찾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와다는 낯선 것이 주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다와다 문학 세계의 중심에는 언어의 낯섦이 놓여 있다.
1982년부터 다와다는 독일에 체류하고 있으며, 함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했고, 2000년에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유럽 문학에 나타난 장난감과 언어 마술」이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에 최초로 『네가 있는 곳에만 아무것도 없다(Nur da wo du bist da ist nichts)』라는 책을 독일어와 일본어로 출판했다. 주목을 받은 『목욕탕』은 1989년에 발표되었고, 그 외에도 『유럽이 시작되는 곳』(1991), 『손님(Ein Gast)』(1993), 『밤에 빛나는 학가면(Die Kranichmaske, die bei Nacht strahlt)』(1994), 『여행을 떠난 오징어(Tintenfisch auf Reisen)』(1994), 『부적(Talisman)』(1996), 『귤은 오늘 밤 안으로 탈취당해야 한다』(1997), 『계란 속의 바람처럼(Wie der Wind im Ei)』(1997), 『오르페우스 혹은 이즈나기(Orpheus oder Izanagi)』(1998), 『틸(Till)』(1998), 『변신 (Verwandlungen)』(1998), 『오비디우스를 위한 마약』(2000), 『벌거벗은 눈(Das nacke Auge)』(2004)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작품이 중, 단편 소설이나 에세이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시와 장편 소설과 연극, 방송극으로 장르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독일에서 레싱 문학상, 샤미소 상, 괴테 문학상 등을, 일본에서 군조 신인 문학상, 이즈미 교카 문학상, 쓰보우치 쇼요 상, 다니자키 준이치로 문학상, 아쿠타가와 상 등을 받았다. 한편 1998년에는 튀빙겐 대학의 문학창작과에서 시학을 강의했고, 1999년에는 미국 MIT에서 창작 강의를 하기도 했다.
헌등사
끝도 없이 달리는
불사의 섬
피안
동물들의 바벨
옮긴이의 말
3ㆍ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의 미래를 몽환적으로 그려낸 걸작!
일본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낯설게 한 작가의 일본 사회 들여다보기!
“다와다 요코의 소설은 기억 속에 반쯤 파묻힌 노래,
혹은 열쇠가 안에 잠긴 보물상자와 같이 마음을 흔든다”
3ㆍ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작가로서의 새로운 사명에 눈뜨게 된 다와다 요코의 소설집!
재난 이후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사회적 금기와 압력을 넘어서는 인간의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독일어와 일본어, 두 언어로 작품을 쓰는 여성 이민 작가 다와다 요코의 소설집 《헌등사(獻燈使)》가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부유하는 언어의 나그네’로 불리는 다와다 요코는 이중 언어가 지닌 경계의 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적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다. 자신의 이력서에 항상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독일로 간 것을 기록하는 다와다 요코는, 독일어를 모르는 채로 도착한 유럽에서 관찰한 낯선 사물과 세계를, 낯선 언어를 배워가며 적으면서, 이 낯선 언어를 통해 언어라는 것이 지금껏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의 언어에 익숙해지고 그것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에게 제약을 걸고, 익숙한 개념에 새로운 언어를 입혀 낯설게 만들고자 하는 문학적 작업은 그러한 맥락에서 숙성된 다와다 요코만의 ‘충돌하는 언어들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 세계는 2011년 3월 11일, 즉 동일본대지진(/대진재)이라는 거대한 단층이 일어난 이후로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자신의 문학적 작업의 방향을 사회적 참여자로서 새롭게 정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 베를린 자택에서 현지 라디오와 인터넷 등을 통해 일본의 동정을 살피던 다와다 요코는, “자기만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다”라는 취지로 피난자 가족을 비난하는 글들을 보면서 ‘일본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오염된 장소로 만들어버리려고 하는 집단이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이러한 분노에 촉발되어 집필한 〈불사의 섬〉이라는 작품을 몇 년이 지난 후에 확대한 작품이 바로 표제작 〈헌등사〉다. 이와키시의 가설주택에서 생활하는 피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이후로 본격적으로 집필에 몰두했고, 3ㆍ11이라는 미증유의 현실 앞에서 다와다 요코는 동시대에 다가서는 사회 참여적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압도적인 재난 앞에서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과 금기를 넘어서, 어떤 식으로든 타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려 하고, 그들의 말들을 모으고, 나와 타인이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해내는 것이야말로 소설가에게 주어진 역할임을 다와다 요코는 이야기한다.
원자력 발전소 폭발 이후 피폐해진 도시, 병에 걸린 아이들, 건강한 노인들의 도시
풍자를 통한 우리 모두의 모습을 담은 작가의 세계관!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표제작 〈헌등사〉는, 심각한 원자력발전소 폭발 이후의 닫힌 세계로서의 일본을 일본열도 내부에서 이야기해나가는 작품이다. 쇄국정책을 유지하는 일본에서 외국어가 쓰이지 않게 되고, 도쿄가 황폐화되고, 서쪽으로 이주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설주택에 살며, 노인들은 마치 죽음을 빼앗긴 듯 너무나 건강하게 살아간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강 문제에 처한 아이들의 상태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어떻게 서로를 대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매우 마음 따뜻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지진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박진감 있게 그려내는 〈끝도 없이 달리는〉, 피폭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세계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면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불사의 섬〉, 3ㆍ11 이후 원전 재가동을 실시한 일본의 원전 폭발 재발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 일본의 문제를 다룬 〈피안(彼岸)〉, 다양한 동물들의 대화를 통해 인간 사회의 그늘진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동물들의 바벨〉 등 다와다 요코가 그려내는 《헌등사》의 설정에는 일본이 안고 있는 난제들로 채워져 있다. 3ㆍ11 이후의 상황뿐만 아니라 저출산 고령화와 그에 따른 아포리아들이 날카롭게 비치고 있다. 이처럼 초현실적인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다와다 요코의 소설은 3ㆍ11 이후의 정치 ㆍ 경제 ㆍ 민생 등의 문제를 부분적으로나마 모두 담아내며 우리로 하여금 일본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낯설지만 익숙한, 그리고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를 들려준다.
“다와다 요코의 소설은 기억 속에 반쯤 파묻힌 노래,
혹은 열쇠가 안에 잠긴 보물상자와 같이 마음을 흔든다.”
-《뉴욕타임스》
소설집 《헌등사》는 다와다 요코의 언어 세계가 촘촘히 새겨져 있는 작품이다. 모국어인 일본어에 대한 감수성과 역량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동시에 언어(한자)의 형태 그 자체를 일종의 이미지처럼 활용하는 기법, 그리고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언어를 조금은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을 통해 익숙한 개념에 새로운 언어를 입혀놓은 작가의 뛰어난 역량과 압도적인 문학적 힘을 보여주는 노작(勞作)이다. 무엇보다, 근미래의 일본을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현재의 일본의 모습을 촘촘히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헌등사》는 이제까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직접적으로 표상되지 않았던 ‘일본’이 전면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