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생인손> 작가의 자전소설. 모든 어려움을 벗어던지고 방송작가로 화가로 열정적인 활동을 약속했던 김순지. 그러나 <별을 쥐고 있는 여자> 출간후 휘말렸던 엄청난 사건 그리고 가슴 깊이 간직해 두었던 첫사랑과의 질긴 인연이 기다리는데… (전3권)
1996년, 바라던 것들이 하나씩 손에 잡힐 듯했다. 그러나 그녀가 유고슬라비아 초청 전시회를 할 당시 국제교류재단 담당자였던 N을 통해 만나게 된 나용주. 지야(김순지)의 작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늘 꿈꾸고 있었던 아트센터 건립을 해주겠다는 R은 지야에게 천사 같은 사람으로 다가왔다.
평생의 꿈이 비로소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어렵게 살아왔던 모든 일들에 대한 하늘의 보상이라고까지 그녀는 생각했다. 축산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축산발전기금을 빌려주겠다며 R은, 지야와 함께 빌딩 계약을 한다며 여기저기 건물을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정재계 인사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자기의 신분을 과시하던 R은 축산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는 이미 사기 사건에 연루되었던 사람이었다. 이미 빌딩계약금으로 R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지야는 급히 R에게 연락을 취했다. 천신만고 끝에 연락이 닿았지만 R은 이미 다른 사기 사건으로 기소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지야가 R과 함께 사기범으로 고소된 것이다. 시가 9억원의 건물을 2억원으로 갈취하려 했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활동이 많았던 지야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명예가 걸린 문제였다. 점차 지야의 그림이 인정받기 시작하던 때였다. 한창 작품 활동에 몰두해야 할 시기에 지야는 검찰에 불려다니게 된 것이다.
지야의 모든 활동이 중단됐다. 화가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중요한 시기에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대학 강의도, 예정되어 있던 해외 전시회도, 꾸준히 지속해온 매맞는 여성을 위한 강연까지 모두 포기해야 했다. 오직 검찰에 불려나가 곤욕을 치르고 반박자료를 준비하는 일에 몰두해야 했다. 그러나 법은 약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증거자료도 읽지 않고 판결하는 판사,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조건 인정하라는 위압적인 검사, 무조건 합의만 강요하는 변호사…. 지야는 지쳐갔다. 3년 동안 작품 한 점 그리지 못하고 그렇게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만 갔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절망감은 깊어갔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언제 구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던 지야는 죽음 직전의 상태에 이른다. 지야는 편히 숨쉴 수 있는 유일한 곳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전시회 때 다시 만난 첫사랑 태을에게 전화를 한다.
그러나 추울수록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는 서리꽃 같은 사랑이 있었다
프랑스에 있는 태을은 지야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야에 대한 첫 마음을 아직까지 간직한 채 살고 있는 태을은 몇십 년 동안 간직했던 사랑을 이제 이룰 수 있다는 행복감에 차 있다. 그러나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고 어렵게 연락이 되자 지야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미안해요, 여기 정리가 되는 대로 연락할게요.”
태을과 지야 사이에는 이미 드라마 같은 운명이 끼여 있었다. 고향 마을을 떠나 명문대학에 입학한 태을. 그러나 어느날 곁을 떠난 지야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태을은 폐인이 되어가고, 결국 집요하게 그를 쫓아다니던 정미와의 사이에 딸을 낳게 된다. 그리고 몇십년 후 태을은 지야가 자신을 떠난 것이 아니라 납치당하듯 끌려가 원하지 않는 결혼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지야의 자전소설을 보고 알게 된다.
96년 지야의 유럽 초청 전시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태을은 지야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프랑스로 올 것을 권유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야 역시 태을과의 재회를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했던 96년의 그 사기 사건이….
지야와 태을과의 사랑은 이 예기치 못한 늪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재판이 거듭될록 몸과 마음이 점점 황폐해져 가는 지야. 먼곳에서 그런 지야를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태을…. 두 사람의 사랑은 또 그렇게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일까. 아니면 추워질수록 더욱 선명하게 피어나는 서리꽃처럼 모든 어려움을 딛고 아름답게 피어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