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머물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박솔뫼의 장편소설『을』. 국적도, 성별도, 인종도, 직업도, 인생의 목표도 중요하지 않은 다섯 남녀를 통해 21세기 ‘노마드적 인간’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이국의 한 호텔에 장기 투숙하면서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을’을 중심으로 그녀의 열 살 연하 남자친구 민주, 사촌 자매이자 연인 사이인 프래니와 주이, 호텔의 장기 투숙자이자 하우스키퍼로 일하고 있는 씨안이 서로 스치고 흩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이 사건은 5명의 관계를 변질시키는데….
박솔뫼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겨울의 눈빛』 『사랑하는 개』, 장편소설 『을』,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 『인터내셔널의 밤』, 『고요함 동물』 등이 있다. 김승옥문학상, 문지문학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아무데나 갈 수 있잖아”
21세기 신인류 ‘노마드적 인간’의 초상,
이방의 한 도시에 머물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
완전히 새롭고 낯선 감각의 걸출한 신인 탄생!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박솔뫼 장편소설 《을》
기존의 익숙한 문학적 코드들을 과감하게 무너뜨리거나 변주해내면서도, 그것을 설득력 있게 시도해내는 걸출한 신예들을 발굴하고자 제정한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그 첫번째 수상작인 85년생 작가 박솔뫼의 《을》을 소개한다.
관계와 소통, 그리고 커뮤니티에 대한 새로운 풍경을 그리다!
국적도, 성별도, 인종도, 직업도, 인생의 목표도 중요하지 않은 다섯 남녀,
만나고 젖어들고 흩어지는 순간들을 투명하게 포착한 스틸사진 같은 소설
이방의 한 도시의 호텔에서 머물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
이국의 한 호텔에 장기 투숙하면서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을’. 대화보다는 침묵의 소통을 믿는 그녀는 유일하게 침묵의 행간을 짚어낼 줄 아는 열 살 연하의 남자친구 ‘민주’를 자신의 곁으로 오게 한다. 돈도 없고, 인생의 목표도 불분명하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민주는 한국을 떠나 호텔에 머문다.
호텔에는 역시 장기 투숙자인 ‘프래니’와 ‘주이’가 있다. 사촌 자매이자 연인인 두 사람은 자신들의 관계와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 나라를 떠나 이곳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호텔의 장기 투숙자이자 하우스키퍼로 일하고 있는 ‘씨안’이 있다. 그녀는 네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들 중 한 명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들 외에도 많은 여행자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이 호텔에서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어느 날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이 사건은 5명의 관계를 변질시킨다. 《을》은 그렇게, 이 5명의 남녀가 서로 스치고 흩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관계와 소통, 그리고 커뮤니티에 대한 새로운 풍경을 그린 소설!
호텔에 머무는 5명의 남녀는 사회적 위치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일을 완전히 접어버리고 자신이 직접 선택한 아주 작은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소통만을 추구한다. 장기 투숙 여행자를 상대로 영업하는 소규모 호텔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이곳에서 한편으로는 한없이 평화롭고 한편으로는 한없이 불안한 일상을 이어나간다. 그들에게는 국적도, 성별도, 인종도, 삶의 목표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인간 중심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소통 중심주의 등 그 모든 지배적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경제 활동을 하되 타인으로부터 ‘중요한 일’을 ‘잘해내고 있다’는 인정을 받을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 즉 존재의 발자국을 남기려 애쓰는 삶이 아니라 존재의 발자국을 스스로 지우며 흔적 없이 스쳐가는 사람들이다. 언뜻 비현실적인 라이프스타일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이는 21세기 신인류를 지칭하는 ‘노마드적 인간’의 초상을 그 어떤 작품보다 정확히, 그리고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상하고 낯선 마력을 가진 소설
《을》은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극적인 스토리에 의해 진행되는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5명의 남녀는 제각각 목적도 방향도 없는 행위를 반복한다. 생각 또한 반복한다. 그들의 반복되는 행위와 생각은 하나의 극적인 사건으로 묶이기보다는 결국 각자의 것으로 흩어진다. 그럼에도 잘 읽힌다. 이상한 일이다. 그냥 잘 읽히는 게 아니라 끝내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실제로, 《을》을 수상작으로 뽑은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읽은 뒤 공통적으로 ‘이상하고 낯선 마력을 가진 소설’, ‘속도 없는 속도가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소감을 표했다. 한마디로 《을》은 극적 서사와 기발한 소재가 소설의 미덕이 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던지는 신선한 제안이자 낯선 시도이다.
[추천사]
이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를 바탕에 깔고, 관계의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탐색하고 있다. -황광수(문학평론가)
인물들과 이야기의 구조가 눈에 익자, 이 소설 특유의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감성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손정수(문학평론가)
《을》은 글자 그대로 완전히 새롭고 낯선 소설이다. -심진경(문학평론가)
사건다운 사건이라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일단 붙잡으면 손에서 떼지 못하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이상한 마력을 지닌 소설이었다. -복도훈(문학평론가)
국적도, 경계도, 인종도, 삶이나 목표도 없는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다. -박성원(소설가)
보기 드물게 자기만의 뚜렷한 문체를 지니고 있는 수작이었다. -정여울(문학평론가)
공동체의 자격 자체를 상실한 공동체. 나는 이 소설이 그러한 ‘고백할 수 없는 공동체’를 고백하며 증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정우(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_정여울(문학평론가)
모든 것이 모호했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우리는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정말 국경도 인종도 성별도 신경 쓰지 않는 인간, 경제 활동이나 가족 관계에 대한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는 노마드적 인간이 존재하는 것일까.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소설에서도 그렇게 노마드의 혐의가 짙은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알고 보니 우리 같은 지구인’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 눈에 보이는 실체로 만져지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곁에 불현듯 다가온 당찬 신인작가가 그것을 해냈다. 인간 중심주의, 이성애 중심주의, 소통 중심주의, 그 모든 지배적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들. 박솔뫼의 《을》은 존재의 발자국을 남기려 애쓰는 삶이 아니라 존재의 발자국을 스스로 지우며 흔적 없이 스쳐가는 존재들의 라이프 스토리를 그려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