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다채로운 사랑의 모델
모두가 주목해온 작가 박선우 첫 소설집
박선우
저자 : 박선우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18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밤의 물고기들
우리는 같은 곳에서
빛과 물방울의 색
느리게 추는 춤
그 가을의 열대야
고요한 열정
소원한 사이
휘는 빛
해설 구원을 애타게 원하는 사람만이 신을 알려고 노력하듯, 사랑에 대해서도_신샛별(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이제는 그를 읽은 것까지 나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강화길(소설가)
박선우의 소설에는 초여름이 시작될 때 부는 바람, 겨울의 햇빛 같은 다른 계절과는 다른 그 계절의 순간들이 선명하고 생생하다.
– 박솔뫼(소설가)
구원을 애타게 원하는 사람만이 신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듯, 사랑을 구하는 사람이 사랑에 대해 끈질기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랑에 대해서라면, 나는 언제나 사랑에 간절한 박선우의 소설들로부터 배울 게 많을 것 같다.
– 신샛별(문학평론가)
우리 안의 다채로운 사랑의 모델
모두가 주목해온 작가 박선우 첫 소설집
박선우 작가의 첫 소설집이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2018년 등단 당시 “단정하면서도 전달력이 뛰어난 문장, 익숙한 이야기 선을 구부려서 참신하게 만드는 플롯팅, 전형적이면서도 예외적인 인물 구성 등, 단연 압도적인 문학적 역량을 드러낸 응모자를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문학평론가 심진경)라는 극찬을 받으며 등장한 박선우 작가는 그 후 주요 문예지들의 적극적인 호명을 받으며 단편소설들을 발표해왔다. 그리고 등단 후 2년이라는 짧은 기간 만에 지면에 선보인 여덟 편의 단편소설로 첫 소설집 『우리는 같은 곳에서』을 내놨다.
이는 독자들이 박선우의 소설을 얼마나 주목하고 고대해왔는지 보여주는 방증일 테다. “마음이 서늘할 때는 그저 누군가와 같은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옮겨와준 마음만으로도 뭔가가 가능하다는 걸”(소설가 편혜영)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들과 “무엇을 기다리는 줄도 모르면서 지극한 마음”(『우리는 같은 곳에서』)을 지닌 매력적인 인물들. 아울러 박선우는 다채로운 사랑의 모델을 제시하는 작가라고 할 법하다. 궤적처럼 떠도는 ‘너’에 대해서, 사랑을 하면서 느끼는 형형색색의 감정을, 그 망설이다가도 열망에 찬 감정의 미세한 결을, 이윽고 그 모든 것들이 초래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능란하고 절묘하게 그려낸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 있을까.” 그러니까 사랑이 끝나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박선우의 소설에서는 사랑이 끝나도 또 다른 사람이 되어가며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의 탐구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간다.
오직 사랑을 구하는 사람만이 사랑에 대해 끈질기게 생각한다
박선우의 단편은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를 다룬다. 타인에게 이끌리고 감정을 품으며 친밀해지고 어느새 멀어지는데, 화자는 그 흔적을 곱씹으며 내내 떠올려보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소설은 섬세하다. 연애를 겪으며 느끼는 질투, 무력감, 패배감, 망설임과 주저함, 무모함과 용기, 성적 충동과 후회 등의 다양한 감정이 이야기 속에 다채롭게 스며들어 있는데, 작가는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그 관계성을 표현해낸다.
사랑이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 속에서 인물들은 관계의 여러 면모를 통과해나갈 때마다 변화를 실감한다. 그렇게 달라져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나’는 변화한 삶 속에서 또 다른 계절을 지나가며 새로운 사람이 되어간다. “지난 순간들이 우리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소설가 박솔뫼) 된다.
“왜 어떤 순간들은 불청객처럼 찾아와 남은 생을 고스란히 들여도 소거할 수 없는 얼룩을 남기고 떠나버리는 것일까. 어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이런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설집의 첫 작품 『밤의 물고기들』에서 ‘나’는 “누군가가 되어보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까지 생각하는 자못 냉담한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날 오픈리 게이인 데다 이별 후유증 탓에 생업을 접고 흥청망청 대책 없이 지내온, 그래서 묘한 적대감까지 느껴지는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날 이후 그 기억의 편린들은 휘발되지 않은 채 어느덧 ‘나’의 일부분으로 스며든다. 「빛과 물방울의 색」에서는 사랑의 후유증이 더 농밀하게 드러난다. 갑자기 연락 두절이 되어 떠나보낸 옛 연인은 유령이 되어 ‘나’를 찾아드는데, 둘이 천진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는 깊은 슬픔과 그리움이 배어 있다. 이 소설은 연인의 죽음과 이별이라는 사건을 ‘물의 낙하와 증발’이라는 현상학적 상상력으로, 시적 연상의 궤적을 따라 아름답게 그려낸다. 「느리게 추는 춤」에서는 이별을 돌이켜보며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 해야 했으나 전하지 못한 한마디를 찾아 헤맨다. “개새끼”에서 “왜 그랬어?”로, 곧 그 말조차 지워버리고 “그럴듯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해지는 상황으로 화자는 옮겨간다. 그 혼잣말 속에서 마음은 내내 망설이며 어느 곳에도 가닿지 못한 채 떠돌 뿐이다.
“남은 생에 간절히 염원할 단 하나의 이미지.
그게 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체로 퀴어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그 인물들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지향을 지니고 태어났는지 정체화하면서 마주하는 내적 불안과 분열, 대립과 갈등, 화해와 통합의 지난한 여정을, 퀴어의 여러 면모를 촘촘히 서사화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금지된 마음을 품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수긍하고 인정해야 하며, 그런 불온한 진심을 솔직하게 타자에게 내보여야 하는”(문학평론가 신샛별)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인물들은 자주 머뭇거리며 돌이켜본다. 소설은 퀴어이므로 이 사회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심리적 폭력의 여파까지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가는 소수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전달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퀴어의 사랑에 대해서, 퀴어의 관계성 속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감정의 갈래를 묘사하며 빼어난 필치로 다채로운 사랑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건 바로 남자와 아이가 내 앞에서 신이 난 몸짓으로 나란히 달려가는 뒷모습, 그러니까 너와 네 아이가 내 앞에서 충만한 기쁨에 휩싸여 함께 공놀이하는 모습을 내가 갖고 싶다는 것이었어. 그래, 나는 너뿐 아니라 네 아이까지 원했던 것이고, 너뿐 아니라 너로 인해 가능한 새로운 삶까지 영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열망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 p.153 「고요한 열정」
누나 연수가 동생 연후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발견하면서 이어지는 「고요한 열정」은 퀴어의 내면을 당사자가 아닌 누나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초점 화자가 된 연수는 성적 지향이 밝혀진 동생의 삶에 대해 숙고해보는데, 그에 따라 독자는 퀴어의 감정에 손쉽게 이입하는 대신 그의 삶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 가을의 열대야」에서 ‘나’는 부모님이 여행을 떠나자 레즈비언 연인인 J를 집으로 부른다. ‘나’는 안 하던 걸 해보자며 숨바꼭질 놀이를 제안한다. 잡힐 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는. 그렇게 찾고 발견되면서 둘은 거의 알몸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현관문 잠금키 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설에서 ‘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들킬까 봐 연인 J의 존재를 내내 주변에 숨겼는데, 그 때문에 생긴 J의 상처도 모른 체한다. “아, 그렇구나.” “너는 그게 되나 보네. 그런 사람이네.”
박선우의 소설들은 퀴어한 주체들이 자기기만과 자기혐오의 덫에 빠지지 않고 자신과 타인의 삶을 사랑할 수 있을지 보여준다. 더 나아가 무수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어떻게 포용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박선우는 “이 책에 엮인 소설들을 쓸 때 가장 고민한 점은 주인공의 성별”이라고 했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변경할 수 없는 흐름, 작품의 톤과 방향성을 결정짓는 일”이었으며 대체로 그의 소설의 결말은 “남성성에 대한 분노와 체념”과 “여성성에 대한 조심스러운 긍정”에서 비롯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소설들을 다 쓰고 난 지금의 박선우는 ‘나’의 성별을 고민하지 않는다고 썼다. 이제 그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그게 어떤 쪽이라도 독자들은 박선우의 소설을 내내 기다리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나면 말이다. 『우리는 같은 곳에서』는 2020년 이후 당대의 한국문학에서 귀한 얼굴이 될, 섬세하게 용감한 작가, 박선우의 첫 소설집이다.
■작가의 말
이 책에 엮인 소설들을 쓸 때 내가 가장 고민한 점은 문장도, 소재도, 플롯도 아니었다. 번번이 나는 소설의 첫 문장을 쓰기 직전까지 주인공의 성별을 고심했다. 그것은 내가 인위적으로 변경할 수 없는 흐름, 작품의 톤과 방향성을 결정짓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대체로 내가 그리는 남성 인물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고 그것을 회복하지 못한 채 결말을 맞이했다.
한동안 나는 그것을 마땅하다 여겼는데, 그것은 내가 지닌 남성성에 대한 분노와 체념에서 비롯했다. 이와 다르게 여성 인물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음에도 그것을 회복하려는 조짐을 품은 채 결말에 이르렀다. 한동안 나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노력했는데, 그것은 내가 지닌 여성성에 대한 조심스러운 긍정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돌이켜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나’의 성별을 고민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