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슬프지만 유쾌한 사건들!
<고양이 호텔>, <옷의 시간들>의 작가 김희진이 들려주는 가족 이야기 『양파의 습관』. 상처나 아픔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극복해가는 이야기를 그려온 작가가 이번에는 가족의 관계에 주목했다. 세련되지도 멋지지도 않은 가족과 이상한 이웃과의 좌충우돌 생활기가 펼쳐진다.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의 관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가 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한때는 발레리나였지만 지금은 거구의 식탐대마왕인 엄마, 엄마의 팬이었으며 아직도 엄마에게 꼼짝 못하는 아빠, 스무 살도 안 되어 아버지가 된 형, 가장 친한 친구가 유학을 가며 맡기고 간 사고뭉치 원숭이 마짱. 일류 요리사를 꿈꾸는 청년 장호는 이런 가족들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옥상으로 도망가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지붕 위에 냉장고를 올려놓는 이상한 여자 보리가 옆집에 이사를 오는데….
김희진
1976년 봄날, 광주에서 태어나 내성적이며 말 없는 아이로 자랐다. 그러나 친한 사람들과 섞이면 금세 수다쟁이가 된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함과 동시에 소설가의 길을 고민했으며,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혀」가 당선되면서 그 고민에 한 발짝 다가갔다. 술과 담배를 할 줄 모르며, 촌스럽게 커피만 마셔도 심장이 두근댄다. 미칠 만큼 좋아하는 게 없다는 것과 무엇이든 금방 싫증 낸다는 게 흠이다. 다시 태어나도 예술가의 길을 가고 싶지만, 그게 소설은 아니길 바란다. 첫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로 대신창작기금을 받았으며 그 외의 작품으로 『옷의 시간들』이 있다.
양파의 습관 – 7
작가의 말 – 333
『옷의 시간들』김희진 작가 신작 장편소설
이토록 불행한 건 오직 나뿐일까?
미래도 현재처럼 암울할까 두려운 청춘들에 보내는 위로
『양파의 습관』은 『고양이 호텔』, 『옷의 시간들』의 김희진 신작 장편소설이다. 전작에서 자신의 상처나 아픔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극복해가는 이야기를 구현해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는 관계의 출발점을 ‘나’에서 좀 더 뻗어나갔다. 바로 ‘가족’이다.
우리 이웃에는 어느 하나 평범한 가족이 없다. 가족 중 누군가 하나는 꼭 사고뭉치이거나, 서로 잡아 뜯고 싸우곤 한다. 오죽하면 어떤 시인은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다 죽는다’고 했을까. 그만큼 가족은 ‘너무 가까워서 아주 멀고 싶은 당신’이 될 때가 많다.
『양파의 습관』의 장호의 가족도 그렇다. 그래서 작가는 장호에게 투사되어 ‘나’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나’의 이야기는 때로는 장호의 목소리이고, 또 때로는 작가의 목소리이다. 이를 통해 나와 가장 가까운 관계, 가족 안으로 들어와 가족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의 깊은 속내를 엿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 『양파의 습관』은 세련되지도 멋지지도 않은 가족, 이웃들의 ‘좌충우돌 생활기’를 통해 사랑의 안식처도, 그렇다고 지긋한 족쇄도 아닌 가족,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가 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다. 가족이다.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무도 보는 사람만 없다면 슬쩍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들이라고.
그리고 여기, 누구라도 내다 버리고 싶을 것 같은 가족이 있다. 한때는 발레리나였지만 지금은 소파에서 일어나는 것조차도 버거워 하루의 대부분을 두 대의 텔레비전을 보며 끊임없이 먹어대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거구의 식탐대마왕, 엄마. 발레리나였던 엄마의 ‘왕팬’이었으며 그녀가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몸집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하며 꼼짝 못하는(하여 어린 아들들에게 설거지를 시켜댔던) 아빠. 스무 살도 안 되어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아이의 아빠가 된 형.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가 유학을 가며 맡기고 간 사고뭉치 원숭이 마짱.
장호는 일류 요리사를 꿈꾸는 스무 살 청년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사장을 골탕 먹이기 위해 거짓 깁스를 한 채로 옥상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엄마가 뚱뚱해진 것이 자신이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해서라는 죄책감이 있지만 엄마의 현재 모습을 외면하고 싶은 이유로, 만나면 왠지 서먹서먹한 형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옥상으로 도망가기 일쑤다.
그는 시종일관 가족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가족을 지긋지긋해 하고 있지만, 애정이 묻어나는 그 말투를 보면 어쩐지 진심 같지는 않다. 보통의 가족 같다. ‘엄마는 이게 싫고, 아빠는 이게 싫어!’, ‘내 동생(언니/형)은 진짜 최악이야!’ 치고 박고 싸우다가도 다른 가족과 ‘붙을 때’는 결국에 한편을 먹는. 누구 하나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고, 도움 되는 사람 하나 없으며 붙어 있는 게 지긋지긋한 인간들. 그렇지만 아픈 순간에, 힘이 드는 순간에 의지 할 수밖에 없는.
어쩌랴, 그게 가족인데.
그리고 여기, 이상한 이웃들도 있다.
『양파의 습관』은 다소 연극적인 색채가 강한 소설이다. 등장하는 배경, 인물 모두 마치 재미있는 단막극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것만 같다. 생동감 있고, 유머러스하다.
주황색 지붕이 있는 같은 모양의 수십 채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황주택단지’.
요리 꽝, 전교 1등 날라리, 변기 작가, 게이 등 말 많고 시끄러운 이웃들만 가득한 이 동네에 유일한 ‘침묵의 집’ 55호. 55호는 입주한 사람들마다 항상 불행한 일을 당하고(이혼, 가족의 죽음 등), 동물이며 식물이 죽어나가는 ‘저주받은 집’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에 한 가족이 이사를 왔다.
장호는 지붕 위에 냉장고를 올려놓는 옆집 여자 보리를 만난다. 연극배우가 꿈이라면서 말할 때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부끄러워하며,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빼먹지 않고 깎은 손발톱을 모으는 희한한 수집에,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행을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 이상한 여자뿐만 아니라 허구한 날 소란스러운 이웃들이 있는 동네에는 당연히 바람 잘 날이 없다.
장호는 지붕에서 이웃들의 소란과 분쟁, 기쁨과 슬픔을 관찰하고 종종 그들의 일에 참견한다. 장호뿐만 아니라 주황주택단지의 이웃들도 시시콜콜 사사건건 장호의 일에 간섭하고 참견한다. ‘아파트 주거자’가 대부분인 요즘에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 덕분에 장호에게 닥친 비극적인 사건들이 소설을 무겁게 끌어내리지 않는다. 장호에게 위로가 되는 순간도 바로 그들 때문일 때가 많다. 때때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징그러운 타인들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위로 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