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담에 그린 수채화>는 1950년대 중반 25세 때 처음 한국으로 건너온 이후 의료 선교사와 교수로 활동하며 40년이 넘도록 이 땅에 살았던 미국 여성 루드 스튜어트의 작품집이다. 열 편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단편소설에서는 저자 루드 스튜어트의 정갈한 성정과 풍부한 예술적 감성을 넉넉히 느낄 수 있다. 각 작품에 등장하는 생계를 위해 암달러상이 된 여자, 우정을 배반한 미군을 향한 애증에 시달리는 농부, 가족을 잃고 걸인이 된 남자 등은 한국의 서민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이 책은 ‘한국에 대한 소설’이기 전에 ‘한국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루드 스튜어트
저자 루드 스튜어트(RUTH G. STEWART)
1950년대 중반, 그녀 나이 25세 때 처음 한국에 온 후 20년 이상 의료 선교 활동을 했고 이후 20년 동안은 관동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996년 은퇴해 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40년 이상 한국에 거주한 셈이다. 2000년에 뇌종양 진단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경과가 좋아 현재는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상태다.
역자 서지문(徐之文)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코리아 헤럴드 기자, 문화공보부 해외공보관 전문위원, 이화여자대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인생의 기술 : 빅토리아조 문필·사상가들의 윤리적 미학관 연구> <어리석음을 탐하며> <서지문 교수와 함께 영어로 배우는 논어 1, 2>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등이 있다.
.이삿짐 인부 … 17
.너무 밝은 무색 … 35
.부산에 온 카우보이 … 53
.적선 … 75
.최우등생 … 83
.여가장 … 97
.연기의 그림자 … 113
.걸인 … 137
.깜깜한 한밤 … 153
.고적한 드의 명예 … 165
■ 독일의 이미륵과 한국의 루드 스튜어트
이미륵은 독일에서 한국 이야기를 썼지만 루드 스튜어트는 한국에서 한국 이야기를 썼다. 이미륵은 <압록강은 흐른다>와 같은 훌륭한 작품으로 한국과 자신의 존재를 독일에 알려 존경과 명성을 얻었지만, 루드 스튜어트는 자신과 자신의 조국 미국이 아니라 낯선 땅 한국과 한국인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겨 우리에게 조용히 알려졌다.
또한 이미륵은 자신의 이야기를 남의 나라 모국어로 썼고, 루드 스튜어트는 남의 이야기를 자신의 모국어로 썼다.
이미륵과 루드 스튜어트를 비교할 때 분명히 드러나는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금보다 닫혀 있던 시대, 익숙한 삶을 버리고 낯설고 먼 이국 땅으로 떠난 젊은 날의 모색과 도전이 그렇고, 새로운 땅에서 여행객이 아닌 그곳의 모자람 없는 한 구성원으로서 단단히 뿌리내리며 꾸려간 의미 있는 삶이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독일어로 작품을 쓰고 발표했던 이미륵과,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국적 색채 없이 온전히 한국에 대한 소설을 쓴 루드 스튜어트는 한국 문학사에 오래도록 기록될 작가들이다. 그들이 남긴 작품의 문학적 의의와 가치가 바로 이미륵과 루드 스튜어트의 본질적인 공통점이다.
■ 한국에 대해 쓴 이국 소설이 지닌 소중한 가치
<1945년 남한에서> <맞아 죽을 각오로 쓴 한국 한국인 비판> <한국인을 말한다> <맥시멈 코리아> <당신들의 대한민국> 등 저자의 국적이나 발간 시기를 막론하고 외국인이 한국 사회와 한국인에 관해 써낸 저서들은 이미 적지 않다. 때론 가차없이 날카롭고 직설적인 비판으로, 때론 따뜻한 애정과 호의로 우리 사회를 관찰하고 해석한 그간의 저작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우리 자의식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세계인으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과 자각의 계기를 마련해 주곤 했다.
<토담 위에 그린 수채화> 역시 이방인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을 그린 책이지만 화자가 전면에 나서서 자기 생각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의 책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즉, 이 책은 픽션이고 문학작품인 것이다.
지은이 루드 스튜어트는 1950년대 중반 그녀 나이 25세 때 처음 한국으로 건너온 이후 의료 선교사와 교수로 활동하며 40년이 넘도록 이 땅에 살았던 미국 여성이다. 그녀는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소설 ‘이삿짐 인부’에서 작중 화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일반론을 깨고 인간의 내면을 살피는 것은 모든 사람을 특유한 개성의 인격체로 파악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얄팍한 이해, 타 집단에 대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야말로 휴머니스트라는 의미이며 나와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방법의 지향점을 암시하고 있는 이 말은, 그녀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빛나는 작가 정신임에 틀림없다.
이 책에 실린 열 편의 소설은 모두 짧은 단편이며 열 편 모두 1950년대 한국 사회와 한국인을 소재로 씌어졌다. 한국으로 부칠 짐을 옮겨주러 온 인부의 한국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을 분노와 서글픔으로 바라보는 수녀 이야기 ‘이삿짐 인부’, 신체 불구인 바닷가 소녀가 역시 불구인 산골 총각에게 시집가 행복하게 살지만 결국 병들어 죽게 되는 ‘너무 밝은 무색’, 인간의 광기와 고독, 유대 형성의 실패를 잔잔한 애수로 관조한 ‘적선’, 사춘기의 고뇌를 조용하면서도 절박하게 추적한 ‘최우등생’ 등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깊은 이해, 인간과 인생에 대한 섬세한 통찰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한국에 대한 외국의 문학작품을 우리는 알고 있지 못하다. 물론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토담 위에 그린 수채화>는 한국에 대한 거의 유일한 외국 소설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50년대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자신이 소중히 다루고 간직해야 할 귀한 기록이기도 하다.
■ 젊은 이국 여성이 본 아침의 나라, 그 시절의 한국
이 책에 담긴 열 편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단편소설을 읽고 있으면 저자 루드 스튜어트의 정갈한 성정과 풍부한 예술적 감성을 넉넉히 느낄 수 있다. 그녀는 가난하고 ‘더러운’ 한국에서도 더 낙후하고 빈곤했던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 의료봉사를 하다 두 번이나 결핵에 감염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세월을 통해 한국 서민들의 정서와 염원을 깊이, 그리고 강렬히 흡수할 수 있었다. 이 책의 각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때로 저자 자신이기도 하지만, 생계를 위해 암달러상이 된 여자나 우정을 배반한 미군을 향한 애증에 시달리는 농부, 가족을 잃고 걸인이 된 남자 등 대부분은 한국의 서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세 작품을 제외하면 비판이든 연민이든 작품 어느 곳에서도 이방인의 낯선 시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그녀가 한국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며 한국인의 정서를 이미 자신의 것으로 체득했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토담 위에 그린 수채화>는 ‘한국에 대한 소설’이기 전에 ‘한국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