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계 사회를 찾아 헤매던 작가 이경자가 중국 운남성의 오지 루그 호에 있는 모소족을 찾아 한달동안 함께 지내며 경험한 문화 체험기.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소족의 일상을 통해 가장 이상적이며 가장 자연적인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모소의 모든 남자들은 아내라는 이름으로 결코 여자를 소유하지 않는다. 모소의 모든 딸들은 자궁에 충만한 우주에너지로 영원히 아들이며 연인이며 손님인 아들을 낳고, 그 아들에게 여자는 영원히 어머니이며 인인이며 누이인 것이다.>-<소설가 송기원>
이경자
1948년 강원도 양양에서 출생했다.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확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88년 여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집 『절반의 실패』로 당시 사회에 큰 충격과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후 독립적 인격체로서 여성의 근원성을 깊이있게 성찰하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소설집 『할미소에서 생긴 일』, 『꼽추네 사랑』, 『살아남기』, 연작소설집 『절반의 실패』, 장편소설 『혼자 눈뜨는 아침』, 『사랑과 상처』, 『情은 늙지도 않아』, 『그 매듭은 누가 풀까』, 『계화』, 『천 개의 아침』, 『빨래터』, 『순이』, 『세 번째 집』, 산문집 『반쪽 어깨에 내리는 비』,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 『남자를 묻는다』, 『딸아, 너는 절반의 실패도 하지 마라』, 『시인 신경림』등이 있다. 올해의여성상, 한무숙문학상, 제비꽃서민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고정희상, 현대불교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민중문학상을 수상했다.
1. 몸을 옮기다
2. 우리는 누군가
3. 루그 호로 돌아오다
4. 마음 한켠의 집
5. 시간은 둥글다
6. 아주 오래된 나
7. 푸른 아침
8. 자연의 자궁으로 돌아가다
9. 아마 냐 누 푸우!
<절반의 실패>의 작가 이경자, 아버지가 없고 남편이 없고 아내도 없는 땅을 가다!!
이경자하고는 여러 번 같이 여행을 했다. 같이한 여행 중 잊혀지지 않는 것은 모계사회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알려진 중국 운남성 려강(麗江)의 용천사라는 곳이다. 나는여기가 샹그리라가 아닌가 싶게 그 퐁요하고청정한 자연환경과 순후한 기후에 매혹당했지만 모계사회의 흔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씌워진 지독한 중노동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모계사회에 대한 꿈을 접지 않고 줄기차게 수소문한 끝에 드디어 운남성의 오지로 모계사회를 찾아 떠났다. 단신으로 두려움 없이 마음껏 설레면서. 그는 드디어 목적을 달성한 모양이다. 떠나면서 공항에서 걸어온 목소리는 생기가 묻어날 듯 싱그럽더니 한달 만에 돌아와서 건 목소리 또한 그러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곳의 사람 사는 모습은 인간의 본성과 가장 가까운 평화 그 자체였다. ―박완서(소설가)
가부장제 사회의 여자로서, 바로 그 가부장제의 모순 때문에 가족이 찢어지고, 사람이 위아래로 분리되고, 여자로 태어난 것이 치욕이 되고, 심지어는 여자가 다른 여자의 인격을 부정하는 모순된 삶을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한 한 중년의 여자가 마침내 ‘깊고 짧은 반란’을 일으켰다. 작가 이경자. 중년의 그가 달랑 배낭 하나늘 멘 채 필생의 업인 양 홀홀단신으로 중국 운남서의 오지 루그 호에 있는 모소족을 찾은 것이다.
이 숨겨진 모계사회에서 작가 이경자는 무슨 구원처럼 주혼(走婚)이라는 결혼 풍속을 만난다. 모소의 모든 남자들은 아내라는 이름으로 결코 여자를 소유하지 않는다. 모소의 모든 딸들은 자궁에 충만한 우주에너지로 영원히 아들이며 연인이며 손님인 아들을 낳고 그 아들에게 여자는 영원히 어머니이며 연인이며 누이인 것이다. ―송기원(소설가)
남자라는 권위로 여자를 억누르지 않는 곳,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의무가 없는 곳―
이 책은 그간에 유행처럼 출간되었던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절반의 실패> <혼자 눈뜨는 아침> 등의 문제작들을 발표한 중견 소설가 이경자가 오랜 동안 들고 있던 화두가 환하게 열리는 과정을 담고 있으며, 내면의 발견과 확인에 대한 가감 없는 체험이며 그에 대한 느낌과 고백이 주를 이룬다.
작가는 처음부터 관광 같은 여행에 초점을 두고 모소족 사회를 찾은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며 느끼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초기 작품부터 여성성에 대한 문제를 천착해 온 이경자는 실제로 이 책에서 여러 번 운다. 유교적 가부장제가 지배하고 있는 이 땅에서 울 수밖에 없었던 그런 울음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북받치는 감격의 울음이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가부장 사회는 내 인생의 ‘익숙한 지옥’이고 루그호의 모소족 모계사회는 ‘낯선 천국’이었다. 익숙한 지옥과 낯선 천국 사이에서 내 영혼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디를 선택하라고 윽박지른다면 나는 미칠 것이다. 하나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다른 씨앗으로 환생하기엔 마땅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그 사이의 시간이 인생이고 역사라는 것도.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말(단어)이 없는 곳에서는 그와 관련된 모든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소족 사회에는 ‘아버지, 남편, 아내’ 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모소족이 모계사회를 이루고 산다고 해서, 남성 중심 사회의 반대적 개념으로 ‘여자가 권력을 잡고 있는’ 사회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곳에는 권위나 필요 이상의 욕심이 없다.
모소족이 모여 살고 있는 리거촌에는 실제로 권위를 갖고 있는 어떤 조형적 상징물도 없다. 모든 일상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진행되므로 분쟁이 없다. 그래서 그곳 남자들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는 의무감 따위를 갖고 있지 않다. 남자는 장가들지 않으며 여자는 시집가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자식들은 어머니와 같이 산다.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소족 사회가 난혼(亂婚)이라거나 성에 관해 분방하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오산이다.
12세까지 모소족 아이들은 남녀의 구분이 없다(남녀의 옷 구분조차도). 그러나 13세 때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남자와 여자는 각기 성에 따른 옷을 구분해 입는다. 그후 3년 동안 이성에 대해 살피며 서로 맘에 드는 상대를 찾는다. 그리고 그후 3년 동안은 남자를 만나서 사귈 수 있다. 그리고 그후 3년 동안 남자와 여자는 합방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는 것인데, 둘만이 알 수 있는 신호를 통해 남자는 여자의 집으로 가 합방을 한다.
이때 여자의 집에 드나드는 남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시간(자정에서 새벽 5시 사이)에만 여자의 방에 머물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여자 쪽에서 남자가 마음에 안들 경우, 남자에게 방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교제하는 동안 남자가 마음에 들면 둘은 주혼(走婚) 관계가 되는데 여자 집으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그렇다고 남자가 여자의 집에 가서 살지는 않는다. 생활은 자기 어머니 집에서 한다. 모소족의 남자들은 영원히 어머니의 아들이므로.
모소족은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한다. 특이한 점은 태아의 자세 그대로(어머니 뱃속에 웅크린 자세)로 시신을 안치하고 그 주위에 사각형으로 나무를 쌓아 화장을 한다는 점이다. 모소족이 살고 있는 리거촌에는 자연이라는 만물의 어머니와 여성이라는 인간의 어머니가 함께 살아 숨쉬고 있다.
권위나 헛된 소유욕이 없이 자연의 흐름대로 살고 있는 모소족 모계사회는 지금 우리 시대에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그곳에서 소설가 이경자는 여성의 ‘반란’이 아닌 우리가 돌아가야 할 ‘자연’을 되찾는 일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 참되고 오래된 평화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