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우리가 즐겨하는 상상의 여러 가능성을 보여주는 특별한 소설이다. 상상은 만져보지 못한, 만져보고 싶은, 곧 만질 수 있으리라고 믿는 머리칼을 접촉하게 해주고, 아직은 소유되지 않았지만 소유하고 싶은 사람과 입맞춤도 가능케 해준다. 즉 그리워하는 사람을 마음껏 불러 낼 수 있다. 증오하는 사람도 불러내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해할 수 있는 곳이다. 즉, 상상의 공간은 모든 가능한 곳이다. 정말 그럴까? 도리어 상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뒤집어 보여주는 특이한 소설이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어긋나면서 상상이 더 이상 무죄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즐겨 하는 상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여덟 편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다. 지은이는 우리의 상상력이 제도와 권력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혼자서만 즐기는 은밀한 상상의 밀실을 들켜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만큼 상상을 철저하게 해부한다. 각 단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위험한 상상||^ – 한 여고생이 자신이 사랑하는 선생님과의 성적인 관계를 상상하며 재미삼아 쓴 일기를 남긴 후 자살을 했고, 그 일기로 인해 교사는 성희롱과 자살 방조죄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개만도 못한 소망||^ – 어느 날 갑자기 가출한 아내가 낯선 여자로 돌아와 남편과 외도를 하게 된다.
||^말(馬)과 말(言)||^ – 육체의 정조를 벗고 하룻밤의 정사를 치르기 위해 두 여자가 남자 헌팅에 나서지만 동성애자를 만나게 되는 과정
||^교차로||^ –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던 아내가 미행을 하다가 자신이 외도에 빠지게 된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 – 육체적인 사랑만을 원하는 교수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제자에게 낙태 수술을 받게 하려고 벌이는 이중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다.
||^관계의 비밀||^ – 한 교수는 보험설계사로부터 개인의 은밀한 비밀을 보장받을 수 있는 보험에의 가입을 종용받지만 거절하다가, 결국 자신의 젊은 애인이 아들의 여자친구라는 비밀이 탄로나 가정은 파탄에 이른다.
||^올림피아 호텔 입구의 회전문||^ – 한 남자의 아내와 내연의 여자가 서로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만나기로 약속하고, 각각 이기적인 타산을 한다.
||^부자와 시인||^ – 문예 잡지를 창간하고자 하는 시인이 자수성가한 갈비집 여사장에게 스폰서 제의를 하지만 애매 모호한 표현 속에서 여자는 청혼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불러냈건, 그가 불러냈건 같은 상상의 침대에 들어 있었는데 이렇게 타인처럼 시선 한번 없이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현실로 되돌아온 상태인테 상상력의 마법이 아직 남아 있을 때부터 문제가 된다. 상상은 더 이상 무죄가 아닌 것이다. 작가가 ||^상상의 형벌||^이나 ||^상상의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이라고 표현했듯이 상상은 언제나 피를 즐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상력이 왜 더 이상 자유롭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상상의 밀실이 더 이상 개인의 영역으로 남아 있지 않고 눈치채지 않게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의 상상력도 제도와 권력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이 소설집은 여덟 개의 단편과 한 개의 중편으로 엮어졌다.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여자와 남자 주인공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 속에서나 차리는 밀실을 현실에 차린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낯선 자와의 하룻밤 정사, 아들의 연인과 육체적 쾌락을 즐기는 아버지, 남의 남편과 동거, 제자를 임신시키는 스승, 갈비집 여자와 시인의 사랑 등 그들의 사랑 방식은 따라서 ||^그릇될 비(非)||^의 연속이다. 비열하거나 비겁하거나 비도덕적이거나 비윤리적이거나 비현실적이거나 비순수하게 보인다.
김다은은 이러한 관계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 도리오 이렇게 관계가 생겨난 근원을 파헤치고 있다. 그것은 언어가 가지고 잇는 애매성이든가 인간의 운명이 가지고 있는 희극성 그리고 삶의 바전 등이 문제가 되며, 이러한 의식은 특히 새로운 글쓰기 기법을 추구하는 작가의 정신과 맞닿아 줄거리를 엮는 방법, 시간과 장소의 이동, 시점의 다양한 제시, 우연과 필연의 적절한 배분 등으로 새로운 글쓰기 영역을 개척해 놓고 있다. 특히, 작가는 각자 자신의 고유 영역이라고 믿는 상상력이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감시당하고 있음을 폭록하고 있어,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상상의 밀실이 들킨 끔찍한 경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상상의 공간이 바로 이 소설 주인공들의 현실이다. 깨끗하고 우아한 것이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으나 볼품없이 것을 대면하여 질실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소설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외면을 열어 복잡한 내면의 썩은 내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때문이다.
김다은
이화여대 불어교육학과 및 불어불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장편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Ⅰ.Ⅱ』가 1억 고료 ’96 제3회 국민 문학상(1996년)에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및 창작집 『이상한 연애편지』『러브버그』『사인사색』『위험한 상상』『푸른 노트 속의여자』를 펴냈으며, 산문집 『껍질 벗긴 소』, 문화 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 현상』, 서간집『작가들의 연애편지』『작가들의 우정편지』가 있다. 프랑스어 소설 「Imagination dangereuse」「Madame」을 발표했으며, 번역서로 『다른 곶』(데리다) 『에쁘롱』(데리다) 『모데르니테 모데르니테』(앙리 메쇼닉)가 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교수로 소설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1.위험한 상상
2.개만도 못한 소망
3.말(馬)과 말(言)
4.교차로
5.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
6.관계의 비밀
7.올림피아 호텔 입구의 회전문
8.貴자와 시인
9.초대받지 못한 그림들
상상의 칼날 위에서 추는 춤
만져보지 못한, 만져보고 싶은, 곧 만질 수 있으리라고 믿는 머리칼과의 접촉. 아직은 소유되지 않은, 하지만 소유하고 싶은, 앞으로 소유되리라고 믿는 사람과의 입맞춤, 그 상상의 열정.
그리워하는 상대방을 내 마음껏 불러내듯, 지금 이 시간에 나는 누구에게 불려나가 푸른 바람결 같은 부드러운 손길로 애무받고 있을까! 아니면 누구에게 불려나가 미움받고, 저주받고 이미 살해되어 있는 것일까! 상상의 어깨 위에 기대고 있는 나, 혹은 살해되어 부패되어 누워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인가, 아닌가?
첫 만남에서 부끄러움을 타게 만드는 사람 앞에서는 끝없이 부끄러움을 타듯이.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결코 멈출 수 없는 상상의 형벌, 상상의 중독성. 시공간을 초월한 그 숨막히는 만남 뒤에 되돌아온 현실. 그 여전히 변함없는 무감각성. 내가 불러냈건 그가 불러냈건 우리는 같은 상상의 침대에 들어 있었는데 이렇게 타인처럼 시선 한 번 없이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그 따로 나 따로,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이 끝없는 어긋남, 정말 상상은 무죄이고 현실은 유죄란 말인가?
밀실! 저주하고 사랑하고 위선을 벗어버리는 그 상상의 밀실! 도덕의 잣대를 분지르며 마음껏 놀아나는 정신적 방탕. 제도와 권력이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더 강한 반동으로 치솟는 그 욕망의 탄력. 페로의 동화 속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두꺼비와 살모사들처럼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갈망들의 범벅.
분류하고 규칙을 만들고 서열 세우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제도권 밖. 아웃사이더. 비사회. 하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사회의 시선이 감시하고 있는 그 밀실,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제러미 벤덤의 판옵티콘!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칭 수 있다는 철없는 상상은!
김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