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사냥꾼은 신대륙이나 아시아의 새로운 식물들을 유럽으로 가져온 사람들을 말한다. 이 책은 유럽의 정원에서 처음으로 백합, 난초, 선인장을 볼 수 있게 했던 파울 헤르만, 알렉산더 폰 훔볼트, 아달베르트 폰 샤미소, 필립 프란츠 폰 지볼트 등 여덟 명의’식물 사냥꾼’들이 펼치는 위험하고 자극적인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들은 ‘녹색의 황금’을 찾아오기 위해 먼 길을 떠났던 위대한 독일 식물 사냥꾼들의 초상을 생생하고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다. 어떤 이들은 학문적 열성에서 그러했고, 또 어떤 이들은 물질적 욕심에서 그러했다. 안과의사였던 프란츠 폰 지볼트는 차 씨앗이나 지도 등을 일본에서 밀반출시켜 독일로 보냈고 결국에는 스파이 혐의로 추방되었다. 주로 아프리카 지역을 탐사했던 게오르그 슈바인푸르트, 난초 사냥꾼 빌헬름 미홀리츠, 선인장에 미쳐 있던 쿠르트 바케베르크와 함부르크의 어느 무역회사에 고용되어 호주 퀸즐랜드에서 최초의 여성으로 식물계를 탐사했던 아말리에 디트리히에 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60컷이 넘는 풍부한 도판으로 화려한 식물들과 식물에 미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동북아식물연구소 현진오 박사가 꼼꼼한 감수로 정확성을 높였다.
케여 힐셔
케여 힐셔(KEJ HIELSCHER)
독일의 마이닝겐에서 태어났다. TV, 라디오, 연극 무대에서의 배우 경력이 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런던에서 가든 디자인을 전공했다. 함부르크 정원 문화 장려 협회의 공동 창설인이다.
레나테 휘킹(RENATE HUCKING)
독일의 베르돌에서 태어났다. 문예학 전공으로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년 동안 TV 기자로 일하면서 신문과 라디오에 글을 기고했는데, 책으로도 여러 권 출간되었다.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며, 함부르크의 정원 문화 장려 협회 잡지의 책임을 맡고 있다.
두 저자는 함부르크에서 흙을 밟으며 살고 있다.
옮긴이
김숙희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 동양통신 기자로 활동하다가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수학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외국어학부 독어 전공 교수이다.
역서로 《제7의 십자가》, 《11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칼립소》, 《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등이 있다.
감수
현진오
서울대학교 식물학과와 동대학원 식물학과를 졸업했다. 이학박사이며 현재 동북아식물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아름다운 우리꽃》, 《설악산 생태여행》, 《덕유산의 꽃》, 《식물 뿌리깊은 내 친구야》 등이 있다.
서문 – 식물 사냥꾼과 ‘생물 해적’
1장 식물에겐 너무 예쁜 그대 이름이여 – 파울 헤르만
2장 신세계에서의 모험 – 알렉산더 폰 훔볼트
3장 온 세계를 한 바퀴 돈 식물 채집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4장 푸른 수국의 리본 속에서 – 필립 프란츠 폰 지볼트
5장 자연과학자 여사님 – 아말리에 디트리히
6장 아프리카 심장부에서의 식물 사냥 – 게오르그 슈바인푸르트
7장 난초대왕을 위한 사냥 – 빌헬름 미홀리츠
8장 가시 투성이의 황야에서 – 쿠르트 바케베르크
감사의 말
참고문헌
역자의 말
찾아보기
동아시아는 19세기 식물 사냥꾼에게 완전히 새로운 처녀지를 열어 주었다. 식물 사냥꾼은 탐욕스런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학문적 열성에서 그러했고, 또 어떤 이들은 물질적 욕심에서 그러했다. 이 책은 유럽의 정원에서 처음으로 백합, 난초, 선인장을 볼 수 있게 했던 파울 헤르만, 알렉산더 폰 훔볼트, 아달베르트 폰 샤미소, 필립 프란츠 폰 지볼트, 아말리에 디트리히, 게오르그 슈바인푸르트, 빌헬름 미홀리츠, 쿠르트 바케베르크, 이 여덟 명의 위험하고 자극적인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60컷이 넘는 풍부한 도판으로 화려한 식물들과 식물에 미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식물 사냥꾼>은 동북아식물연구소 현진오 박사의 꼼꼼한 감수로 신뢰를 더하고 있다.
:: 식물 사냥꾼. 한 식물을 ‘노획’하여 ‘강제로 데려가려는’ 그들의 소망에는 분명 폭력과 파괴가 담겨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로 이 식물 사냥꾼들 덕분에 그토록 아름답고 다양한 색과 형태의 식물들이 머나먼 나라와 대륙으로부터 우리의 일상에 건너오지 않았는가.
시대를 뛰어 넘는 식물에의 열정
16세기와 17세기의 위대한 식물학자들은 모두 의사였다. 왜냐하면 식물학이 의학의 분과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약용식물과 초본을 키우는 식물원은 의과대학생들의 실습용 정원이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의사였던 독일인 파울 헤르만은 17세기 중반, 식물 사냥에 나섰다. 항해 도중 승선자의 절반이 사망하는 일도 빈번한, 악명 높은 동인도행 상선에서의 고통 끝에 그는 희망봉에 도착했다. 헤르만이 남아프리카에서 처음 보았던 것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식물군이었다. 두어 달 후 그는 스리랑카에서 또 한 번 완전히 다른 식물들을 만났다. 이런 식으로 그는 평생 이국 식물을 수집했고 의대 교수로서 식물 연구에 헌신했다.
1827년 헤르만의 식물표본은 영국의 조셉 뱅크스 경이 수집한 다른 식물학 보물들과 함께 1827년 대영박물관의 소유로 넘어갔다. 뒤이어 1881년 자연사박물관의 식물학부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이 연약한 식물들은 300년이 넘은 후에도 끄떡없도록 두꺼운 2절판의 서적 형태로 잘 보존되고 있다. 그동안 이것을 복사하도록 허용한 일은 아주 드물었으며, 이 놀라운 수집품에 접근이 허용되는 연구자도 극소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박물관 담당자들의 결정에 의해, 누구든지 인터넷(www.nhm.ac.uk)으로 이 표본들을 관찰할 수 있다. 17세기로부터 21세기에 이르는 멀고 먼 길이라 하겠다.
신세계에서의 모험
1799년 7월 16일,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친구인 식물학자 에메 봉플랑과 함께 남미에 도착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맥박을 느낀다”라고 그 당시의 흥분을 적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식물 사냥을 떠날 때마다 엄청난 양의 편지를 유럽으로 보내곤 했다. 그 덕분에 이 편지들은 파리, 마드리드, 런던, 베를린 등지에서 출간되었고 두 사람의 모험에 찬 여행담은 유럽의 살롱들에서 끊임없는 화제가 되었다. 훔볼트와 봉플랑은 명사들과의 교류로도 유명했는데, 훔볼트는 미국 제퍼슨 대통령에게는 자신이 지도와 멕시코에 관한 자료들을 복사하도록 허락해주고 친구가 되었다. 봉플랑은 훔볼트보다 활동적인 성격으로 나폴레옹의 아내인 조세핀 황후의 온실 소장으로 일하면서 장미 정원을 맡기도 했다. 훔볼트는 자신의 작업을 위해 다른 식물학자를 고용해야 했는데, 오늘날 라틴어 식물명 다음에 붙어 있는 약자 H/B/K는 각각 훔볼트(Humboldt)/봉플랑(Bonpland)/쿤트(Kunth)를 가리키는 것이다.
온 세계를 한 바퀴 돈 식물 채집
?차라리 꽃들을 알고 사랑하려고 해보게. 그러면 결코 외롭지 않을 걸세!? 샤미소의 오랜 친구 루이 드 라 포예가 그에게 충고했다. 이 한 통의 편지는 샤미소에게 사명으로 다가왔고, 그 때부터 샤미소는 자연을 쏘다니기 시작했다. 베를린의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할 생각으로 스위스를 떠날 때, 그의 나이가 이미 31세였다. 그 후 샤미소는 루릭 호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국 식물들을 유럽으로 실어 날랐다.
모으고, 모으고, 모으는 데 사로잡힌 사람들!
당시 대부분의 대규모 발견 항해는 경제적인 목표를 갖고 있었던 까닭에 식물 사냥을 대체로 부차적인 일이었고, 원정대장에게는 귀찮은 일이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문인이자 식물학자였던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는 선상에서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몇몇 여행자들은 일기를 쓰거나 편지를 썼다. 특히 훔볼트는 글쓰기의 달인이었다. 5년이나 고국을 떠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베를린 살롱에서 화젯거리였다. 식물 채집은 상류사회에서 가장 즐기는 취미로 발전했다. 학교에서는 일찍부터 말린 식물 다루는 법을 가르쳤다. 샤미소는 교과서에 말린 식물의 표본 작성법을 상세히 제시하기도 했다. 여성 자연과학자 아말리에 디트리히는 자신이 수집하고 압착시킨 식물들을 팔아 가족을 먹여 살렸으며 그러다가 마침내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은 함부르크의 부유한 상인 세자르 고데프로이에 의해 식물 사냥꾼으로 취직되었다.
원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식물 사냥은 직업이 되었다. 전문 사냥꾼들은 더 이상 식물계의 다양함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려 하지 않았다. 오직 내국 시장을 위해 매력적인 식물을 노리고 찾았다. 난(蘭) 사냥은 고도로 전문화되었는데, 빌헬름 미홀리츠 같은 난초 사냥꾼은 그를 고용한 고용주의 세밀한 지시를 받고 전 지대를 샅샅이 훑어서 번번이 그 지대를 몽땅 ‘쓸어갔다.’
:: 수국, 양귀비, 백합, 제라늄, 난초 그리고 선인장-식물 사냥꾼들의 풍요로운 노획물인 이들은 유럽의 온실을 이국 식물로 가득 차게 했다. 이 책을 쓴 두 저자는 ‘녹색의 황금’을 찾아오기 위해 먼 길을 떠났던 위대한 독일 식물 사냥꾼들의 초상을 생생하고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다. 이들은 남아프리카에서 제라늄을 발견했던 파울 헤르만 같은, 이제는 거의 잊혀진 식물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중남미 여행으로부터 6천종 이상의 식물을 본국으로 보냈으며, 그 가운데에는 멕시코에서 보낸 달리아의 종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날 그 누가 알겠는가? 동화 〈페터 슐레밀〉의 작가인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가 실은 자연 과학자였으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노랑 양귀비를 발견한 식물학자였다는 것 또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안과의사였던 프란츠 폰 지볼트는 차 씨앗이나 지도 등을 일본에서 밀반출시켜 독일로 보냈고 결국에는 스파이 혐의로 추방되었다. 주로 아프리카 지역을 탐사했던 게오르그 슈바인푸르트, 난초 사냥꾼 빌헬름 미홀리츠, 선인장에 미쳐 있던 쿠르트 바케베르크와 함께 함부르크의 어느 무역회사에 고용되어 호주 퀸즐랜드에서 최초의 여성으로 식물계를 탐사했던 아말리에 디트리히에 관해서도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