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의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한 여류소설가의 장편. 삶에 절망한 애인을 던져두고 떠나버릴 수 있었던 일본 남자 다모와 주인공, 무라트는 서로 국적은 다르지만 주인공의 부엌을 매개로 교분을 이어가는데. 불합리와 부조리 가득한 세상에 냉연해지는 방법, 그 속에 처한 자기를 냉철하게 수긍하는 방법을 그리고 있다.
오수연
1964년 서울 출생. 1994년 장편 《난쟁이 나라의 국경일》로 현대문학 주관 장편공모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하고, 1997년 작품집 《빈집》(도서출판 강) 출간하였다.
90년대 말 그는 2년간 혼자서 외국에서 살았다. 그리고 타인들과 외로움과 더위 속에서 얻은, 인간의 관계와 삶에 관한 사유의 고리를 소설로 엮어냈다. 작가로서 여성의 분냄새를 풍기지 않는 문체, 낯설지 않은 이국적 분위기와 특유의 환상, 건조한 듯 명징한 이미지로써 3편의 연작은 탄탄한 장편을 일구고 있다.
1. 부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2. 나는 음식이다
3. 땅 위의 영광
-작가의 말
-해설
80년대에 운동했던 이들의 90년대를 그린 장편《난쟁이 나라의 국경일》, 부조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현실을 그린 작품집 《빈집》의 작가 오수연의 연작 장편 소설 《부엌》을 이룸에서 출간했다. 문단에서 소식을 전해들을 수 없었던 최근 몇 년간 그는 자신의 치열한 삶 속에 은둔해 있었으며, 그 중 2년은 인도에 바쳐졌다.
낯선 곳에서의 체험이 아닌, 그곳에 살기 위한 인도 체류의 기록들은 세 편의 중편소설로, 그리고 《부엌》이라는 한 편의 연작 장편으로 완성되었다. 제3의 나라에서 묘한 인연으로 엮인 타국적의 두 여자와 두 남자, ‘부엌’이라는 생존의 바닥에 모인 외로운 존재들의 뒤늦은 성인식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오수연 작가의 삶과 인간에 대한 끈질긴 고민의 소산이다.
감정의 사치나 미화된 감상을 경계하는 한편 불가해한 자아, 소통 불가능한 관계의 문제에 천착함으로써 묘한 중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이 소설은 여타의 여성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아름다움과 힘을 발휘한다.
정신적인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의 도정
“이 작품은 성장소설이다. 등장인물들의 나이가 이십대 후반이거나 그 이상이지만 성장소설이라는 개념에 신체적 연령의 제한이 있지 않다면 그렇게 부르고 싶다. 늙어 죽을 때까지 철부지인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나는 여성의 성장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여성이라고 해서 소녀에서 갑자기 어머니로 질적 전화하는 놀라운 능력을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소년이 어른이 되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이 소녀의 경우에는 생략되었을 뿐이다. 나는 다 늙어서라도 그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수연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부엌》은 성장소설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 소설은 한 여자 혹은 두 여자가 타인과의 관계맺음에서 비롯되는 모든 상처와 실패와 수용의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방민호는 “그녀에게 있어 성장한 사람이란 세상의 부조리를 수긍할 수 있는 자”라고 말하며 “《부엌》은 불합리와 부조리 가득한 세상에 냉연해지는 방법, 그 속에 처한 자기를 냉철하게 수긍하는 방법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인도라는 곳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불합리한 세상의 대명사인 양 실제 현장 스케치들을 통해 세세히 묘사되어 있다. 사회구조적 모순에 순응하면서 신분제도에 길들여진 현지인들,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과 생활을 대하면서 이방인인 주인공은 참을 수 없는 분노 그리고 뒤이어 엄격한 자기 분석을 하게 되고 그들을, 타인을 수용하게 된다. 이것은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인 두 남자 사이에서 타인을 수용하는 혼란스런 과정을 겪게 되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나 있다.
‘부엌’은 성인식을 치르는 제사장으로 상징된다. 세 남녀의 관계는 음식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데, 극단의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는 꼭 그만한 극단의 가치관으로써 한 여자를 혼란 속으로 밀어넣고, 그녀는 이곳에서 성인이 되는 열병을 앓게 된다.
부엌이란 인간 생존의 바닥이자 관계맺음의 시작점으로서, 그녀는 자신의 부엌을 필요로 하는 두 남자를 거부하지 못한다.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한쪽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기에. 그러나 결과적으로 관계란 상처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깊어지는 것. 채식주의 남자에게 상처를 받고 육식주의 남자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과정은 말하자면 성인식의 통과제의인 것이다.
세계시민으로서의 간접경험을 주는 한국소설
《부엌》이 지닌 또 다른 매력은 소설 공간의 확장이동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이 한국 안에서 씌어진 한국소설은 독자들에게 밀착된 설득력을 지닌다는 강점만큼이나 그 한계성도 지니고 있다. 외국을 배경으로 이국적인 소재를 다룬 많은 한국소설은 이러한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피상적인 묘사에 그쳐 작품의 주제를 수용하지 못하고 겉도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부엌》에서 인도라는 공간은 소설 속에서 이물감 없이 주제를 증폭 수용하는 효과를 보여준다. 이것은 오수연 작가가 지닌 힘이다. 2년간 그곳에서 살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애썼던 노력은 낯선 타지에서 낯선 타인들과의 관계를 소설화하는 데 독특한 강점으로 상승작용한다.
이에 대해 해설에서는 “《부엌》은 좁은 민족주의와 공동체주의로부터 세계를 향해 열린 새로운 주체로 거듭난 작가를 표현해 준다. 고립적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난 사람들, 국적을 버리고 세계시민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림으로써 작가는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를 드러내 보인다. 이것이 내가 《부엌》을 높이 평가하는 마지막 이유이다. 독자들은 이 《부엌》에서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는 오수연의 새로운 근본주의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예측이 불가능한 생소한 공간에서 주인공은 완전한 타인을 경험한다. 생활습성과 가치관이 다른 현지인, 그리고 그녀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는 동양 남자와 아프리카남자 사이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묘한 문화적 충돌과 더불어 새로운 조화를 느끼게 된다. 울타리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간 ‘세계시민’으로서의 간접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끼르띠무카의 상징
세 편의 소설 속에는 주제를 암시하는 한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영광의 얼굴’이라는 뜻을 지닌 인도의 귀신, 끼르띠무카. 한없는 굶주림의 형벌로 인해 자신의 몸뚱어리마저 먹어치운, 결국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 하나만 남은 이 귀신의 형상은 전편의 여자와 후편의 여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다. 뿐만 아니라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의 상징이기도 하다.
끼르띠무카에게 잡아먹히는 인간의 몽롱한 모습, 희생제의의 열광적인 참여자로서 자원하여 제물이 된 사람들의 표정, 그것은 고통과 환의를 동시에 느끼는 듯한 절정의 기쁨을 나타내고 있으며 여주인공은 피식자가 되고 싶어한다. 음식이 되어 포식자 앞에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피식자.
작가는 자신이 살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삶, 항상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모순된 삶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남의 살로 키워져서 남을 죽여 제 배를 채우고, 남이 새끼를 죽여 제 새끼를 키우는 다 자란 수컷 혹은 암컷으로. 남을 죽이고는 미안해하고 미안하지만 또 남을 죽일 수밖에 없는 죄 많은 성인으로. 사랑과 혐오의, 존경과 멸시의, 신뢰와 의심의, 타인과 나 사이의 경계는 어디인가. 어른들은 다 알면서 자기들끼리만 고개를 끄덕이는 그 경계선.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서부터 남인지. 세상에 많은 사람들 중에 누가 내 가족이며 친구, 동지, 동포, 내 계급, 내가 먹여줘야 하고 아프면 돌봐줘야 하며, 죽으면 가슴을 치며 울어주어야 할 내 편, 내 사람인지……”
피식자와 포식자의 관계에 대한 갈등 혹은 희생제의에 관한 관심은 소설 곳곳에 포진해 있다. 차별된 신분에 따라 사는 현지인들에 대한 미움과 연민 속에서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음식이라도 되고자 하고, 관계의 거리를 어쩌지 못하고 목숨을 끊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원래부터 부조리한, 불완전한 것이 정상적인 세상에서 완벽한 관계를 고통스럽게 묻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부조리한 세상을 인정하게 되는 ‘성인’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 처절하고 비루한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을 온전히 비춤으로써, 성장하지 못하는 인간 혹은 인생에서 생략된 성인식을 대신 치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