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지난밤 슬픈 악몽’과 ‘도시 직장여성의 찌든 일상’ 사이를 오가며 읽는이의 감성을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들어 일깨우는 듯했던 배수아의 문체는 ‘몸’이라는 오늘날 가장 즉물적이고 가장 중요시되는 소재와 만나 스물여덟 편의 감각적인 산문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주 분야인 소설에서 이미 그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바 있는 몽환적 정취는 ‘몸’이라는 물화된 존재를 상업적으로 통용시키려는 에로티시즘에서부터 일부러 멀리 비켜간다. 몸을 이야기하는 배수아의 에세이들은 냉소적이면서 다정하고, 감정적이면서 이성적이며, 환상성을 드러내면서도 무섭도록 현실적이다. “벌거벗은 육체를 구속하는 사회적 강박에 관한 스케치”라고 자신의 에세이를 정의하는 이 독특하고 고집스러운 에세이스트는 몸이 지닌 한계를 명료하게 드러내며, 정신과 육신의 모순을 껴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을 차분한 어조로, 그러나 힘차게 긍정한다.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는 그러한 모순된 시각의 기록들이다.
배수아
소설가이자 번역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서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대에 등장한 젊은 작가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독특하다. 이화여대 화학과에 입학한 배수아는 국어 과목을 아주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는 자의식으로 인해 소설을 쓰게 됐다. 1993년 서점에서 단지 표지가 이쁘다는 이유로 우연히 집어든 문학잡지 [소설과 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취미로 글을 쓴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문학적 엄숙주의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당혹스럽고 생경하며 파격적이다. 배수아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온하고 불순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한결같이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늦된 아이들이며 주로 스무살 안팎의 주변적 존재이다. 이들은 사회규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진화를 거부하는 인물이며 ‘스스로 선택한’ 이상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신세대적 일상을 파고들며 신세대적 일상에 숨어 있는 존재의 어둠과 불안, 삶의 이중적 풍경에 대한 감각적 묘사로 일관하다. 체험과 사실성이 강조되던 우리 문학사에서 배수아는 은폐된 존재의 어둠을 탐사하며 독특한 개성을 갖춘 신세대 작가로 성장해왔고, 이제는 미적 성숙의 단계를 완성해가고 있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이지적이면서 자기 주장이 강한 문체를 통해 남녀관계의 속물성을 파헤치고, 독신녀의 시선을 통해 보여지는 경제ㆍ섹스ㆍ결혼관ㆍ자기세계에 대한 솔직하고 쿨한 느낌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사람의 첫사랑』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버림받거나 스스로 추락중이다. 그들의 배후에는 일탈과 파격, 섬뜩한 비애가 차갑게 펼쳐져 있다. 세기말의 쓸쓸함과 밀봉된 희망, 피학적인 아픔이 한꺼번에 만져지는 작품이다.
『붉은 손 클럽』은 외형의 독특함을 넘어, 단자화된 관계에 상처받으면서도 결국 또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인간의 심리, 사랑의 대상을 향한 비이성적 감성들, 일상에 물든 관계의 지리멸렬함을 포착해 내는 배수아의 섬세한 감성과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배수아의 감각적이고, 이미지적인 글쓰기가 잘 나타나 있다. 『심야통신』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녀 특유의 감각 더듬이로 포착하고 있는 창작집이다. 배수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감동하지 않는 일상인의 내부에 꿈틀거리는 목마름과 허기를 이야기한다. 그녀는 후기 산업사회의 일련의 징후를 상징하고 허무주의적 인간형과 이미지와 기호로 점철된 우리 세대의 문제적인 서사 형식을 보여주면서 자기만의 자리, 자기만의 소설을 탄생시켰다.
『철수』는 인간 존재 안의 어둠과 생의 운명적인 폭력 속으로 더 한층 깊이 탐사해 들어가는 배수아 소설의 불온한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섬뜩한 생의 이면을 보아버린 자의 어둡고 서늘한 내면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이바나』는, 소설 속의 ‘나’가 외국 여행 중에 산 중고 자동차의 이름이다. 또, ‘그녀’로 불리는 이바나는 여행기를 편집하는 편집자에겐 신비의 여성이다. ‘이바나’는 어느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고, 어느 지방에선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자신의 단편집 말미에, 배수아는 ‘나에게 제목이란 면상의 흉터와도 같아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치명적이다. …… 지금 나는 왜 모든 소설은 예외 없이 제목을 필요로 하는가 회의스럽다.’ 고 말했다. 가장 짧은 제목이 가장 좋은 제목이라고도 했는데, 이 소설의 제목 ‘이바나’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이 ‘이바나’는 내내 소설 속 화제의 중심인데 비해,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뭉개져 있다. 나, K, B, 산나, Y…… ‘죽기 전까지는 대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견디는 불면의 밤을 섬뜩하게 그리고 있다.
이 외에도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뱀과 물』, 『밀레나, 밀레나, 황홀한』,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 『동물원 킨트』, 『이바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당나귀들』, 『독학자』, 『훌』, 『에세이스트의 책상』, 『북쪽 거실』, 『올빼미의 없음』, 『서울의 낮은 언덕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등을 썼다. 산문집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창작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그 사람의 첫사랑』 등과 장편소설 『랩소디 인 블루』『부주의한 사랑』『붉은손 클럽』이 있다. 또한 몸을 주제로 한 에세이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를 펴냈다. 역서로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프란츠 카프카의 『꿈』,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 W. G.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의 골드문트』 『데미안』 등으로 2003년 한국일보문학상, 2004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전통 소설의 인물과 이야기 중심에서 벗어나 어떻게 서술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인 「무종」을 통해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월요일 독서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독특한 문체와 색깔로 열혈 독자군을 거느려 왔던 그녀는 이제 사유하는 문장의 힘으로 새로운 독자들과도 만나고 있다.
1장 그대보다 더 그대 몸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1. THE HAIR
2. 여자에게 왜 가슴이 있는 걸까
3. 소마가 필요한가요
4. 비만을 두려워하는 이유
5. 트리거 포인트
6. 네이키드 라이프
7. 어둠 속의 목소리
2장 욕망은 기호의 문제일 뿐이다
1. 관음증에 관하여
2. 당신 안에 있는 나르시스
3. 인신공양
4. 미화의 오류
5. 고독인가 관계인가
6.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7. 통유리와 칸막이, 혹은 시선의 테러
3장 에로티시즘은 그 대상의 부정성으로 인해 더 빛난다
1. 친구에게 성욕을 느낄 때
2. 입었는가 벗었는가
3. 사람들은 왜 차에서 하는 것일까
4. 정치인의 섹스 어필
5. 옥사나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
6. 버스 안에서
7. Sexless marriage
4장 인간의 몸 안에는 서로 다른 시계와 달력이 들어 있다
1. 육식의 한 형태
2. 시체란 무엇인가
3. 색의 기원
4. 달팽이
5. 유한하므로 그립다
7. 욕망이 사라질 때
발문 : 경멸과 두려움 _ 이충걸
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본 적이 있는가. 연인이 당신의 몸을 사랑하듯
당신, 아는가? 당신은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배수아를 통해 우리는 방부 처리되어 있던 몸의 상투성에 도전하게 된다.
(이충걸, 〈GQ KOREA〉편집장)
“시간이 흐르면 연인의 마음은 변하고 손길은 둔감해진다. 그러나 당신 안에 있는 나르시스는 그렇지 않다. 그는 당신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아도 당신을 사랑한다”
절대로 공유할 수 없는 극단, 개인적인 모든 감각의 절정, ‘몸’
에세이스트 배수아의 단 하나뿐인 에세이집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전면 개정판!
‘배수아의 아름다운 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자음과모음(이룸)에서 2000년 4월에 출간하여 당시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동명의 산문집을 출간 11년 만에 디자인과 편집을 새로이 갈무리하여 선보이는 책이다. ‘소녀의 지난밤 슬픈 악몽’과 ‘도시 직장여성의 찌든 일상’ 사이를 오가며 읽는이의 감성을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들어 일깨우는 듯했던 배수아의 문체는 ‘몸’이라는 오늘날 가장 즉물적이고 가장 중요시되는 소재와 만나 스물여덟 편의 감각적인 산문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주 분야인 소설에서 이미 그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바 있는 몽환적 정취는 ‘몸’이라는 물화된 존재를 상업적으로 통용시키려는 에로티시즘에서부터 일부러 멀리 비켜간다. 몸을 이야기하는 배수아의 에세이들은 냉소적이면서 다정하고, 감정적이면서 이성적이며, 환상성을 드러내면서도 무섭도록 현실적이다. “벌거벗은 육체를 구속하는 사회적 강박에 관한 스케치”라고 자신의 에세이를 정의하는 이 독특하고 고집스러운 에세이스트는 몸이 지닌 한계를 명료하게 드러내며, 정신과 육신의 모순을 껴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나르시시즘을 차분한 어조로, 그러나 힘차게 긍정한다.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는 그러한 모순된 시각의 기록들이다.
육체, 욕망 혹은 삶의 다양성에 대한 독특한 시각
배수아는 이 책에서 인간의 육신과 그 안에 담겨진 욕망에 대한 자유로운 글쓰기를 시도했다. 어떤 글에서는 짧은 분량 안에서도 인문학적 깊이를 담아내며 다양한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주제를 세밀하게 파고 들어가는가 하면 어떤 글에서는 이에 얽힌 과거의 개인적 체험이나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글들은 모두 하나같이 매우 진지하며, 작가가 몸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인간의 몸을 둘러싼 모든 것에 깊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러한 몸과 몸 주변의 시선들을 통해 우리 삶의 유한성과 육체가 가진 원래의 가치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자의 가슴에 대해 언급하며, 젖가슴이 갖는 선정성을 선험적인 것이 아닌 문화적인 유산이라고 보는가 하면, 단지 미적인 감각 때문이 아니라 종양과 같은 신종 세포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도하게 되는 현대인의 심리를 명쾌하게 지적한다. 또한 휴식의 한 형태로 ‘네이키드 라이프’ 즉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는 발가벗고 지내기를 권하고, ‘본다’는 행위에서 ‘보여 준다’는 행위까지도 쾌락의 영역으로 집어넣은 관음증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가 하면, 욕망은 기호의 문제일 뿐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인생의 중요한 도구로서의 육체와, 진정한 우정이라는 전제하에 친구와 나눌 수 있는 성욕의 문제, 성행위 없는 결혼의 문제, 성 정체성, 성도착자, 여성주의 등 몸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간 사회의 여러 모습이 무엇인지를 배수아는 특유의 문체에 실어 솔직하게, 때로는 도발적으로 독자들 앞에 드러내 보인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배수아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에 실린 글들은 모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이었으므로 내 문체와는 다르게 글들이 짤막짤막한 편이고 어느 정도 분량도 일정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구성과 화법보다는 산만하고 핵심이 분산되어 보이는, 어수선한 나열식 서술을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그것은 내가 칼럼니스트가 아니라 소설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만약 이 책의 제목만 듣는다면 이것이 육체에 관한 칼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벌거벗은 육체를 구속하는 사회적 강박에 관한 스케치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