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성장소설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개척한 작가 류가미의 신작소설이다. 유리의 탄생으로 자신의 인생을 모두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어머니. 하지만 유리에게 피아노에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유리의 생활은 온통 피아노로 채워진다. 결국 유리는 손목을 긋게 되고 그녀의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자살을 하고 만다. 유리는 이 일을 계기로 자발적 성장을 저지 당한 채 살아가는데… 그 와중에 재회한 아버지와 클락. 그러나 아버지의 학대, 어머니의 집착으로 클락은 그녀를 떠나가고 마는데… 유년의 기억을 지우지 못한 채 엉망이된 청춘을 살아가는 유리와 클락의 슬픈이야기.
류가미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분석심리학과 대상관계이론을 공부했으며, 1999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아름다운 날」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최근에는 신화와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류가미의 환상여행」을 연재한 바 있다. 장편소설 『라디오』, 『거미 여인의 집』, 『아이온』, 『니벨룽의 반지』 등을 썼으며, 번역한 책으로는 『융, 중년을 말하다』, 『마법의 책』, 『내 주머니 속의 다이아몬드』, 『예술이라는 이름의 전쟁』(근간), 소설로 읽는 융 심리학 『생의 절반에서 융을 만나다』, 틱낫한 스님의 마음 다스리는 우화를 엮은『틱낫한의 마음 한가운데 서서』, 치열한 자기 극복 이야기『최고의 나를 꺼내라!』, 여성 리더십에 대한 탁월한 고찰인『아이언 버터플라이』등이 있다.
1. 모성이라는 감옥
2. 숲 속에 작은 이즈바
3.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4. 이제 그만 하늘에서 내려와줘
5. 조각난 세계
6. 낯선 지구 아래서
7. 중국 풍의 유곽, 항아
8. 욕망의 수수께끼, 어머니여, 어머니여, 어머니여
9. 로터스 섬의 무사태평
10. 시간 밖의 도둑들
11. 마야, 환상의 제국
12. 카디즈의 카니발
13. 거미 여인을 찾아서
14. 초록빛 잉크? 바다
15. 사중주
16. 거미 여인의 집
전통적인 문학 장르를 거부한 파격과 실험정신으로 주목받는 류가미 신작 장편소설!!
풍부한 상상력과 신화적인 모티브, 시공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문학 세계!!
문학계의 새로운 별로 떠오르는《라디오》의 작가 류가미 신작소설
1999년『문학과 사회』봄호에 「아름다운 날」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며 첫 장편소설 《라디오》(문학과 지성사) 로 전통적인 문학 장르의 그물을 벗어난,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라는 호평과 함께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던 작가 류가미의 신작 《거미여인의 집》이 나왔다.
풍부한 상상력과 신화적인 모티브, 시공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이야기 전개로 판타지 성장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작가 류가미의 신작 소설,《거미여인의 집》은 어머니의 자살, 학대, 무관심 등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두 주인공, 유리와 클락의 이야기이다. 유년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한 채 얼룩진 청춘 시절을 견뎌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읽는 이의 가슴에 연민과 함께 서늘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 버린 고대 도시 우르 시를 배경으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때로는 신화 속의 전설처럼, 또 때로는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처럼 펼쳐 보이는 이번 작품 ‘거미여인의 집’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작가 특유의 문체와 환상적인 문학 세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치 수천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작가의 힘은 일반 상식과 약간의 지식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처음과 끝이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는 다의적이고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 온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과거와 악수를 청하고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듯 수많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던 독자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기에 충분하다.
■작품의 구성 및 줄거리
잿빛 하늘처럼 흐리고 위태로웠던 유년 시절, 나이 먹기만을 기다렸던 높은 담장 아래서의 학창 시절, 눈물과 이별로 얼룩진 청춘, 그리고 시작도 하기 전에 깨어진 사랑……
운명을 짜는 거미여인의 이야기
이 소설은 삼중 구조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소설 속에 두 개의 액자 소설이 서로 거미줄처럼 엉켜 있기도 하고 때론 별개의 이야기처럼 시공을 넘나든다.
첫 번째 구조는 이 소설의 전체 주인공이자 작가의 분신으로 보이는 ‘나’의 이야기이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80년대, 대학을 다닌 ‘나’는 자기 존엄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희생과 투쟁만을 강요하는 현실에 깊은 회의와 절망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비로소 미친 사랑에 빠지고 만다. 사랑은 ‘나’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진실이다. 그러나 사랑은 감상적인 낭만도 아닐 뿐더러 삶의 도피처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열리지 않는 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 사랑도 동시에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운명을 감당하지 못한 채 방황하던 ‘나’는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물의 운명을 엮을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들에게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본다. ‘나’는 고백한다. 나는 이제 내 마음의 풍경 속에서 나를 닮은 피조물들과 숨바꼭질을 하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이 소설의 두 번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유리와 클락이 탄생하게 된다.
비뚤어진 모성의 감옥에 갇힌 유년의 상처
유리와 클락은 비뚤어진 모성의 감옥에 갇혀 씻을 수 없는 유년의 상처를 안게 된다.유리의 탄생으로 자신의 삶을 몽땅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유리 엄마는 우연한 기회에 유리가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부터 유리의 인생은 오로지 검은색과 흰색의 건반 위를 오르내리게 된다. 피아노가 지겨워진 유리는 자신의 손목을 긋고 유리 엄마는 이 사건으로 인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이 일로 인해 유리는 급성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며 자발적인 성장이 저지 당한 채 자신만의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하늘을 나는 흰 고래와 숲을 다스리는 마녀를 찾아 환상 속을 헤매던 유리는 아버지와의 재회로 인해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그 후 성인이 된 유리는 미오와 클락을 만나면서 우정과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어머니가 유리에게 남긴 상처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모두 작별 인사조차 남기지 않고 떠나가 버린다. 잠시동안 유리의 거처에 머물던 클락은 유리가 일하러 나간 사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또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잿빛 수염과 함께 과거의 시간 속으로
클락의 소설은 자신의 미래이자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한 잿빛 수염을 만나 타임 채널을 통해 과거로 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클락은 이미 두 번째 이야기 속에서 그의 불우한 가족사가 밝혀진다. 클락의 어머니는 클락이 커갈수록 아들의 모습 속에서 아들이 아닌 연인의 모습을 찾게 되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미심쩍게 보게 된다. 이때부터 아버지의 학대가 시작되고 불행한 시간이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홀연히 그들 곁에서 사라지고 클락과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낀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클락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클락의 육체와 감정 그리고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어머니로부터 도망쳐 나온 클락은 유리 곁에 잠시 머물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타임 채널을 통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클락의 판타스틱한 모험기이다. 클락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즉 클락이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잿빛 수염, 압둘 바킬, 항아, 라만 쿨, 하피, 도베르만 등은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관련된 인물들이다. 특히 클락을 도베르만이라 부르며 조롱하고 마음대로 움직이던 하피는 클락의 또 다른 모습이며, 자신을 유혹의 늪에 빠뜨리는 항아는 바로 어머니의 과거였던 것이다.
현실로 돌아온 클락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임으로써 더 이상 분노와 혐오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았다.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가슴에 담아두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긴 방랑에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소설의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등장해서 어둡고 우울한 유리의 모습은 한없는 외로움으로 점철되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일 뿐만 아니라 지옥 같은 소유욕이나 얼음 같은 무관심이 아닌 진실한 사랑을 필요로 했던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고백한다.
□ 이 소설의 세 가지 층위
1. 경계선적 장애의 여자가 자기애적 장애의 남자를 만났을 때,
이 소설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성장 소설이다. 이 소설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어떻게 어머니(모성)로부터 독립하여 하나의 독립된 인격을 형성해나가는지를 추적한다. 유리와 클락은 자라면서 둘 다 억압적이고 파괴적인 모성을 경험한다. 유리의 어머니는 유리가 자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하는 순간 자살함으로써 유리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있는 길(결국은 어머니로부터 떠나갈 수 있는 길)을 차단한다. 유리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것은 결국 그녀의 환경이었던 어머니, 곧 세계를 파괴하는 위험한 일이다.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는 유리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녀는 주체가 없는, 자신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통해 살아가려고 한다. 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형성하지 못한 유리는 거기서 오는 공허를 ‘깨지지 않고 변하지 않은 대상’을 소유함으로써 채우려고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사랑은 그 공허를 채워줄 유일한 길이었다.
반면 클락은 자기를 통해 살려고 했던 어머니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어머니는 그에게 인간의 이름이 아닌 클락이라는 슈퍼맨의 이름을 붙인다. –니체의 초인 (uberman)이 미국으로 건너와 슈퍼맨(superman)이 되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 유리가 주체 없이 타자들의 욕망에 따라 산다면 클락은 타자 없이 자신의 욕망만 끝없이 확장된 세상에서 산다. 어머니의 신이었던 그는 자신이 한계를 가진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사실 그와 어머니와의 심리적 근친상간은 그에게 사회적 규범과 개인으로서의 한계를 가르칠 아버지를 잃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품에 있는 한 그는 세상의 지배자였지만 어머니를 벗어나는 순간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기묘한 딜레마가 그로 하여금 어머니 곁에 머물 수도 또한 현실 속에 머물 수도 없게 만든다. 그는 자신을 신으로 만들어주는 어머니로부터 도망치지만 또한 희로애락에 물들고 생로병사를 거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으로 내려오지도 못한다.
2. 과정으로서의 시간, 역사, 이야기
작가는 유리와 클락의 성장을 그리면서 한 가지 수수께끼를 던진다.
“너는 지금 존재하는 그것인가 아니면 되고자 하는 그것인가?”
방 안에 서 있는 사람은 동시에 방밖에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방 안을 걸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방밖으로 나갈 수 있다. 작가는 존재가 고정된 양태가 아니라 끝없는 되어감 (becoming) 속에서 있다는 화이트 헤드의 입장에 서있다. 인간이 이러한 되어감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시간을 통해서만이다.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변화의 과정을 인간 사회 안에서는 역사라고 부르면 소설 안에서는 이야기(narrative)라고 부른다.
작가는 자신의 주인공들로 하여금 구원을 찾아 평행 우주를 방황하게 만든다. 주인공들은 평행 우주를 여행하면서 자신들의 복수 자아를 만난다. 작가는 교묘하게 중첩되고 비틀어진 이러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기존의 역사철학을 비판한다. 작가는 시간이 구원을 향해 나가가고 있다는 (역사철학이 표현대로라면 역사는 발전한다는) 전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작가는 그 구원의 역사가 기존의 역사철학이 주장하듯이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작가는 물리학의 다세계이론을 가져오면서 시간이 하나의 원인에서 하나의 결과에 이르는 결정론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다세계이론은 모든 결정의 순간마다 우주들이 갈라져 나온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한사람이 결혼을 선택한 순간, 그가 결혼한 우주와 그가 결혼하지 않은 우주가 갈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선택의 순간마다 우주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물리학자 호킹은 다세계 이론에 한가지 가설을 덧붙이는 데, 이렇게 갈라져 나온 평행우주들이 서로 다른 우주들과 에너지 교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리와 클락, 두 주인공들은 평행우주들을 여행하면서 다른 우주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자신들을 만난다. 주인공들은 평행우주에 사는 또다른 자신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성장을 이루어낸다. 작가는 현재의 사건을 통해서 미래가 결정되는 기존의 이야기 방식에서 벗어나 여러 개의 다양한 미래가 현재의 선택의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수많은 미래의 내가 선택을 고민하는 현재의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게 말을 걸어오는 그 수많은 ‘미래의 나’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과거의 역사철학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정해진 코스를 달리는 기차여행이었다면 작가가 주장하는 역사는 스스로 목적지를 정하고 그에 이르는 길들을 선택하는 자동차여행이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평행우주가 갈라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 우리는 선택을 통해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3. 고전 형이상학에 대한 도전
작가가 소설 속에 정신분석학 이론과 화이트 헤드의 과정철학, 물리학의 다세계 이론을 끌어들인 것은 고전 형이상학의 이원론을 부정하기 위해서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고전 형이상학이 주장하는 본질(essentia)과 실존(exsitentia), 창조주와 피조물, 주체와 객체, 허구와 현실의 대립항이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은 한 ‘외로운 여자’가 이야기를 씀으로써 유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외로운 여자’가 창조주인 존재자(essentia)라면 유리는 그녀의 피조물인 실존이다. ‘외로운 여자’가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주체라면 유리는 허구 안에 존재하는 객체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유리는 자신의 창조주의 고통을 이해할만큼 성숙한다. 마지막에 유리는 자신의 창조주의 고통을 달래주기 위해 ‘외로운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제 피조물인 유리는 자신의 창조주인 ‘외로운 여자’를 창조하는 위치에 선다. 현실 속에 있던 ‘외로운 여자’는 그녀가 만든 허구의 인물인 유리가 쓰는 허구 속의 인물이 된다. 처음에 창조의 주체였던 ‘외로운 여자’는 끝에 가서는 창조되어지는 객체가 된다. 허구의 인물이었던 유리는 ‘외로운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씀으로서, 자신의 현실성을 입증한다.
작가는 본질과 실존, 창조주와 피조물, 주체와 객체, 허구와 현실이라는 대립항을 전복시킨다. 작가는 본질이 실존이 되고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고 주체가 객체가 되고 현실이 허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는 실존이 본질이 되고 피조물이 창조주가 되고 객체가 주체가 되고 허구과 현실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고전형이상학의 이원론적 대립항이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른 것으로 전이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설 말미에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세계는 그렇게 두 명의 거미여인 사이(외로운 작가와 유리)를 오가며 팽창과 소멸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진동만이 영원한 존재의 모습인 것이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시작과 끝도, 실재와 허구도, 너와 나도 없다. 진실이란 것은 그녀가 사는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 중 하나가 아니라 그녀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어우러짐으로서 풍성해지는 의미들이었다.”
작가는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는 다른 것을 배제한 순결이 아니라 이쪽과 저쪽을 아우는 불순하지만 풍성한 의미를 선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