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기술은 진보에 진보를 거듭했다.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이 그것이고 문화의 우열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비록 전쟁의 양식이 바뀌기는 했지만 그 근본은 변함이 없다. ‘열린 사회’가 승리한다는 법칙은 불변이다. 경제전쟁에서도 그렇다. 열린 사회는 안에서 치고 받는 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고 시장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기자출신인 저자가 미국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통해 우리와는 다른 나라들의 생활 방식과 다른 국민들의 사고방식에 관한 글을 모은 에세이들이다.
손현덕
한양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해 경제/금융 분야를 주로 취재했다. 2000년 워싱턴특파원으로 부임해 미국 대선,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등 굵직한 사건들을 다뤘다. 귀임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를 출입했다. 유통경제/중소기업/국제/경제/정치/증권부장(여론독자부장 겸임) 역임 후 현재 산업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한국경제의 위기를 예고하고 처방을 제시한 <매경-부즈앨런 보고서>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등 경제정책, 증권, 보험 등의 분야에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역서로는 《마스터링 매니지먼트》, 《네이비 실 리더십의 비밀》이 있다. 현재 매일경제신문 ‘매경포럼’ 코너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머리말 – ‘열린 국가’만이 승리한다.
1부=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아우슈비츠의 단상
파리의 산책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자유와 개방
싱가포르 해리스카페
지식도시 올루
오스트리아의 환경
영국 왕실의 의전
지닝의 외자유치
여기는 러시아
인도의 ‘인간시장’
베트남에서 만난 초상화 한 점
아르헨티나 탱고
마닐라 스쿼터
안데스의 칠레
브라질리아에서 본 행정수도 이전
검은 돈과 케이만 군도
자랑스런 한국인 카레이스키
2부=초강국 미국의 빛과 그늘
애포머톡스의 신사협정
생활 속의 경제교육
미국 대선은 국민축제
보수와 진보의 대격돌
1달러의 비밀
잭 웰치와 크로톤빌
외무장관이야, 딴따라야
촘스키와의 만남
골드만삭스의 워싱턴 커넥션
키신저 리스트
비밀클럽과 신고식
삼성을 보는 미국의 시각?
대통령의 거짓말
워싱턴의 파워 트립
아들과 함께한 결정의 날
월스트리트의 풍경
라스베이거스의 ‘용 아줌마’
-지식도시 올루 중에서-
필자는 테크노폴리스의 마케팅 매니저인 세포 셀그렌 씨에게 안내되었다. 그는 최근 벌어진 ‘사건’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올루대학에 근무하는 공과대학 교수 두 분이 벤처기업을 차렸습니다. 학생 몇 명과 노키아사(社)로부터 받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독립하면 사업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아예 기업을 만든 것입니다. 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일부 받고 상당 금액은 노키아가 투자를 했습니다.”
이른바 스핀오프(spin off) 사례다. 실험실에서 뭔가 사업 아이템을 얻어 떨어져 나간(spin off) 것이다. (……) 필자의 취재를 도와줬던 세포 마키 올루 시의회 경제부 이사는 “대학 캠퍼스에서의 연구가 지역경제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올루가 입증했다”고 말한다. 마키 이사는 “70년대 말만 하더라도 대학의 두뇌와 기업간의 협력은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하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으나, 실리콘 밸리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뒤부터는 대학 교육이 180도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산학협력 면에서 핀란드를 세계 1위로 꼽는 이유를 알만도 하다. 테크노폴리스를 설립한 지 5년이 지난 1990년 올루 시는 생명공학과 의료분야의 지식도시인 ‘메디폴리스’를 하나 더 만들었다.
유럽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가 건강과 복지라는 점에 착안해 미래 국가경쟁력의 근원이 될 과학단지를 조성한 것이다. 전자·통신의 테크노폴리스와 의료·생명공학의 메디폴리스. 이 두 단지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다. 통신을 이용한 원격 진료장치의 개발, 첨단 전자기술을 응용한 유전자 공학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마키 이사는 자랑한다.
올루 시는 여기에 한 술 더 떠 세계에서 유례없는 실험을 했다. 도시 자체를 주식시장에 상장시킨 것이다. 헬싱키 증권거래소 전광판에 ‘올루 테크노폴리스’란 기업의 주가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마키 이사는 본인도 올루 시의 주주로서 배당도 받고, 나중에 주가가 오르면 자본이익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마키 이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올루 시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 지식도시 올루는 이제 핀란드 국민 모두의 기업이 된 것이다. (……) 올루 테크노폴리스를 둘러보면서 가장 인상 깊은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대학과 기업이 연결되는 곳에 식당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기업 인력과 교수, 학생이 모두 이곳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한다. 산학이 자연스럽게 조우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환경 중에서-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관광지. 연 800만 명이 관광 온다는 도시. 성수기에는 현지인은 없고 관광객만 있어 누구에게 길을 물어도 올바른 답을 구할 수 없다는 그런 도시다. 필자가 잘츠부르크를 찾은 때는 비수기였는데도 모차르트의 생가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
은 이날 아침 신문 1면 톱으로 난 기사에 관해서다. 기사 내용인즉, 잘츠부르크가 모차르트 국립음대에 대해 잠정 폐쇄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결정이 있기 넉 달 전쯤 모차르트 국립음대 교수 한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전에도 2명의 교수가 공교롭게도 암으로 사망했다.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 잘츠부르크 연방위생국이 넉달 간에 걸쳐 대학 내부를 철저히 조사했다. 그 결과 건물 내에 암을 유발하는 인자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게 됐고, 그것이 석면 시멘트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런 개연성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학교 문을 닫은 것이다.
1841년에 설립한 모차르트 국립음대는 그 유명한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다닌 학교다. 미래의 모차르트, 미래의 카라얀을 꿈꾸는 수많은 음악도들이 이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그런 대학도 ‘환경’ 앞에선 의견이 일치한다. 학부모들과 일부 학생의 반발을 예상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폐쇄가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이렇듯 오스트리아에서의 환경은 필자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인제야 ‘부자 클럽’이라고 하는 OECD에서 한국의 가입을 놓고 이런 저런 요구 조건을 내걸 때 마지막 걸림돌이 환경분야였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가 환경 기준을 선진국처럼 했다가는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가야 할 길이다.
-생활 속 경제교육 중에서-
미국에는 초ㆍ중ㆍ고등학생들이 참가하는 ‘주식투자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학생들이 모의주식투자에 참여하면서 경제 흐름을 파악하게 한다는 게 그 취지다.
“10주간 계속되는 이 게임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매일 아침 누구보다 먼저 집에서 구독하는 신문의 경제, 주식란을 펼치게 된다”는게 밥 울라드 조지워싱턴 중학교 교사의 말이다.
금융교육의 포털 사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점프스타트’의 다라 두과이 사장은 “단순한 암기식 교육은 없다”며 “철저하게 생활 속 경제를 가르친다”로 말한다. 신문을 읽으면서 부모들과 자연스레 경제 흐름에 대해 토의하고 질문하면서 경제공부를 하게 된다. 부모들도 이 같은 학생들의 자세에 긍정적이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 금융교육의 장점은, 다름 아닌 가정에서부터 시장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