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주의와 합리주의로 물든 우리 시대에 대한 성찰!
분열된 언어를 넘어 진정한
기쁨의 여정으로 향하는 길을 제시하다
“누군가 그 자체로 비현실적인 것,
소유 불가능한 것과 관계를 맺고 소통할 줄 안다면
그에게는 현실과 긍정적인 것에 접근하고
그것을 향유하고 소유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 사회는 소위 ‘빅데이터’ 사회라 할 만큼 너무나 많은 양의 지식과 정보로 이루어져 있다. 지식과 정보는 여러 상품과 학문 등으로 일상에 스며들어 이윤을 창출하는 데 사용되고 있고,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보다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 객관적이고 계량화하고 명확하게 검증할 수 있는 정보를 요청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은 일견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면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숫자로, 하나의 담론으로, 하나의 프레임으로 제한하고 규정지으려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발견한다. 객관주의와 합리주의에 물들어 늘 정확하게 분석하고 예측하고 그것을 토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가장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현대인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자 현재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삶이 배제된 삶과, 인격이 사라진 앎과 지식, 무엇을 알고 무엇을 기뻐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부재’이다. 늘 관계하고 있지만 그 관계는 연결되지 않은 일방적 관계이며, 결국 우리는 그 무엇과도 소통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이윤과 성장의 논리로, 하나의 담론, 하나의 프레임 안에 가두고 진정한 앎과 기쁨의 길로 향하지 않는 잘못된 문화 속에 현대인이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계속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에서 과연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겠는가?
행간이라는 비현실적인 것의 차원을 분석하는 조르조 아감벤의 텍스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현실에 기인한다. 우리의 문화를 위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잃어버린 진정한 앎과 기쁨을 회복하는 하나의 시선으로 당당히 마주하고 진실한 물음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룬 유령이라는 테마의 얼굴을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안에 내재된 유령의 접근 불가능성을 규명하고, 필연적인 허구와 완성된 현실이라는 허구 사이에 유령의 세계가 부재의 형식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 그것이 바로 『행간』의 저자 조르조 아감벤의 진실한 물음이자 ‘삶’이며, 독자인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과제’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행간’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대상을 통과하는 것이자 대상과 관계하는 것이며, 인격적 주체로서의 고유한 인식을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현실’로 확장해가는 전복적 행위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서문
1부 에로스의 유령
1. 정오의 악령
2. 멜랑콜리아 I
3. 우울증에 빠진 에로스
4. 잃어버린 물건
5. 에로스의 유령들
2부 오드라덱의 세계: 상품 앞에 선 예술작품
1. 프로이트 혹은 부재하는 대상
2. 마르크스 혹은 만국박람회
3. 보들레르 혹은 절대상품
4. 보 브럼멜 혹은 비현실의 도용
5. 팽쿠크 부인 혹은 장난감 요정
3부 말과 유령: 1200년대 사랑의 시에서 나타나는 유령 이론
1. 나르시스와 피그말리온
2. 거울 앞의 에로스
3. “환상적 영”
4. 사랑의 영
5. 나르시스와 피그말리온 사이에서
6. “결코 끝나지 않을 기쁨”
4부 퇴폐한 이미지: 스핑크스의 관점에서 바라본 기호학
1.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2. 고유한 것과 고유하지 않은 것
3. 저항선과 상처
후기
옮긴이의 말
인명색인”
“세계가 주목하는 미학자이자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문제작
행간을 통해 드러낸 인간 문화에 대한 이해,
‘고귀한 사랑’을 상실한 시대에 던지는 진실한 물음
1977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행간(Stanze)』은, 어떤 식으로든 소유하지 말아야 할 것을 소유해야 한다는 불가능한 과제 앞에서 인간의 영혼이 대답을 시도하는 공간인 ‘행간’의 위치를 특유의 해석학적 체제로 그려낸 조르조 아감벤의 대표 저작이다. 아감벤은 서양문화의 근간이 된 ‘유령’이라는 테마를 토대로, 왜 비현실적인 것에 주목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해왔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단테의 시 분석과 함께 사랑을 절대적인 위치에 놓는 도덕관 속에서의 유령 이론, 상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예술작품이 차지하는 위치, 교부철학자로부터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우울증의 개념이 거쳐온 변화, 1500년대의 상징학이 현대의 기호학으로 발전하게 된 배경 등 책을 구성하는 주제들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인류의 문화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 즉 ‘유령’과 항상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는 사실에 있다. 『행간』은 바로 이 거대한 테마 속에서 읽을 수 있는 행(行)들의 관계를 연구한다. 벤야민적 비평과 바르부르크적 분석 방식을 과감하게 혼용하면서 아감벤은 아베로의 철학과 보들레르의 시, 단테의 시와 소쉬르의 기호학 이론, 중세 의학 이론과 라캉의 정신분석을 도마에 올려놓는다.
『행간』에는 동일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유령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다양한 이름이 등장한다. 우울증 환자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악령과 부정의 언어 속에서 탄생하는 페티시즘의 주물(呪物)과 인간의 환상을 주재하는 프네우마와 표징, 상징, 기호 등이 바로 유령의 또 다른 이름들이다. 아감벤이 추적하는 것은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유령들이 상이한 차원에서 드러내는 동일한 특징, 즉 운명적인 이유에서든 인간적인 필요에 의해서든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기 위해 명명되거나 창조되었다는 특징의 흔적들이다.
『행간』은 지금까지 한국에 번역된 아감벤의 정치철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책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작품이다. 아감벤의 미학자로서의 면모를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책이며, 아감벤이 기본적으로 취하는 비평적 자세와 철학적, 문헌학적 방법이 다른 어떤 텍스트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글이다.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영혼에 관한 물음에 관해 아감벤이 내놓은 대답이 동문서답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동문서답을 통해 드러내는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이 결코 틀린 답이 아니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유령이라는 동일한 매커니즘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까지 확장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만큼 중세와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있는 까닭이다. 중세문화와 현대문화의 공통점을 찾는다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도 아감벤의 『행간』보다 적합한 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