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장편소설 『징을 두드리는 동안』. 자신처럼 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준성 오빠와의 어긋난 관계로 학교를 쉬고, 뱃속의 아이를 잃으면서 가족들과 한바탕 소용돌이를 겪은 수린. 학교 도덕 선생님인 엄마는 미혼모 센터에서 봉사하며 인권 존중에 앞장섰지만 딸의 실수에 대해선 무자비하기만 했다. 죽음의 문 앞까지 다가간 수린에게는 깊은 상처만 남아 있다. 하지만 수린은 청소년 사물놀이 패와 함께 러시아로 봉사를 떠나면서 자신만 아픈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박재희
저자 : 박재희
저자 박재희는 충북 제천.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중앙대학교.
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 산조 최옥삼 류 이수자.
1989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춤추는 가얏고’ 당선.
작품: 중단편소설집 『양구』, 장편소설 『더러운 사랑』, 장편동화 『대나무와 오동나무』, 어린이 정보책 『우리 음악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흥과 멋이 묻어나는 전통음악』 『단소교실』 『가야금 교본』 등.
집필 계획: 어떤 귀신 곡할 일이 생길지, 귀신 자리를 비워두고 무작정 기다림. 감히 혼불을 기다림.
개떡 마니아
주유나이 패
단짝은 변덕쟁이
말라깽이의 비밀
시는 내 몸을 떠나지 못해
해골의 침묵
오빠를 믿지?
종아리구이춤
너도 돌칼을 들어!
징을 두드리는 동안
진실 게임
아직 손가락도 없는 손
내 심장으로 들어와
징이 지잉지잉
통성기도
불공평해!
피할 수 없으면
작가의 말
추천의 글
『춤추는 가얏고』의 작가 박재희의 신작
어린 예술가들의 러시아 여행기!
붉은 모스크바 광장에서 펼치는 진실 게임!
― 내 심장으로 들어와, 다이몬.
남자의 심장으로 들어가면 어떤 결과를 맞을지 알아버린 열일곱 살.
나는 무력해서 내 몸의 앵두알을 지키지 못했다…
빗줄기가 나를 두드리는 동안 난 모든 걸 잊어!
우박, 천둥, 번개, 장구 소리 같은 소나기…
완전 사물놀이야. 하늘의 사물놀이!
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 산조 최옥삼 류 이수자인 박재희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소설. 누구도 우리의 사물놀이와 청소년 이야기를 이만큼 그려내기는 힘들 것이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감성 풍부한 어린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전통 음악과 무용, 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작가에게서 독특한 소재의 청소년문학으로 탄생한다. 우리 타악기의 소리와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울림이 되어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외고생 수린은 여름방학 동안 문화관광부에 계신 아빠의 주선으로 청소년 사물놀이 패와 함께 러시아로 봉사를 떠난다. 사물놀이 패는 예고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사촌 오빠와 오빠의 예고 후배들로 구성되었다. 시를 사랑하는 수린은 한글 강습을 담당하기로 하고, 한국에서의 기억들을 지우려는, 지우개와 같은 여행을 시작한다.
자신처럼 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준성 오빠와의 어긋난 관계로 학교를 쉬고, 뱃속의 아이를 잃으면서 가족들과 한바탕 소용돌이를 겪은 수린. 학교 도덕 선생님인 엄마는 미혼모 센터에서 봉사하며 인권 존중에 앞장섰지만 딸의 실수에 대해선 무자비하기만 했다. 죽음의 문 앞까지 다가간 수린에게는 깊은 상처만 남아 있다.
하지만 수린은 이 여행에서 자신만 아픈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단짝이 된 말라깽이 춤꾼 이난희나 사촌 갈두 오빠, 리틀 파파가 된 사연으로 힘들어하는 주영배, 그런 영배와 연인인 유은우 역시 꽹과리, 징, 북, 장구들을 두들기며 사춘기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사물놀이 패 친구들 역시 장애 가족과 가난 등 힘든 현실을 극복하며 저마다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었다.
깊은 수렁에 빠져 힘들어하던 수린과 친구들이 마음을 다독이며 성장통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청소년들의 감성과 언어에 눈높이를 맞추고 섬세한 문학으로 피어난다. 자신들의 아픔, 현실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청소년들, 그들의 가까이에서 이해하고자 한 작가를 느낄 수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두두 웃뜨 웃뜨” 사물놀이 하는 청소년들의 몸놀림이 그려지고 북, 징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그 소리에 집중하고 빠져들기에 충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의 말
황금빛 꽹과리의 초대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 귀신 곡할 노릇이군, 하고 혀를 찹니다. 오래전, 사물놀이를 인터뷰하러 돈암동을 찾아 갔습니다. 건물 2층의 한쪽은 사무실이고 나머지는 넓은 연습실이었습니다. 김용배가 연습실 창문을 전부 닫고 꽹과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악기 중에 꽹과리를 제일 싫어하는데, 높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정말 불편한데, 김용배의 소리는 달랐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시끄럽지 않았어요. 뿐만 아니라 저에게 말을 걸었어요.
무슨 말이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날부터 저에게도 귀신 곡할 일이 생겼습니다. 김용배의 황금빛 꽹과리 소리가 제 귀에 붙어서 떠나지 않는 겁니다. 들을수록 마음이 말랑해져서, 모르는 사람의 마음도 슬그머니 두드리고 싶어지는 겁니다. 싫은 것들, 미운 것들,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원수에게도 슬그머니 손을 내밀고 싶어지는 겁니다.
이 작품은 고등학생들, 대학생들의 러시아 여행기입니다. 어린 예술가들이 너무 아름답고 너무 불쌍해서, 쓰는 동안 너무 행복하고 또한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너무,의 남용에 관대하시길~
고2, 재수생인 아이들을 두고 월악산에 틀어박힌 고집쟁이를 감당해준 남편에게 가없는 사랑과 존경을 보냅니다. 남편은 늘 남의 편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내 편이네요. 사족,에 너그러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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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어김없었다. 단숨에 다 읽어버린 박재희의 소설.
늘 그랬다. 잠시의 시간이 있으므로 잠깐만, 하고 펼쳤다가는 중요한 약속도 잊을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십대들과는 한참 멀리 있는 나이였음에도 몰입에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징과 꽹과리, 북, 장구가 마구 등장하여도 역시나 전혀 지장이 없었다.
아니, 사물놀이가 이 소설의 중요한 배경이었으므로 책읽기의 속도는 더욱 고조되었다. 단절되고 파열된 삶의 상처마다에 격렬한 타악기들이 거침없이 파고들며 앞으로 나가라고, 한번 나가보라고 마음을 두드렸다. 이런 소설, 내가 아는 한 박재희 말고 는 아무도 쓸 수 없다.
『징을 두드리는 동안』은 지금 막 인생이란 이름의 긴 터널에 진입하는 청소년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은 그냥 놓아두라고, 돌아갈 수 없는 과거 때문에 부디 추락하지는 말라고 당부하는 소설이다. 그 당부는 나에게도 참 유효했다.
우박과 천둥, 번개와 소나기는 하늘이 펼치는 사물놀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놀라운 전언 앞에서 문득 숨을 고른 것도 그래서 였다. 이런 문장을 청소년 독자들이 지금, 너무 늦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_양귀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