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시간의 차원, 환상 공간과 현실 세계를 오가는 욕망과 고독에 관한 통찰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죄의식, 잔인성을 드러내는 데 특이한 개성과 성취’를 보여주면서, ‘서로 어긋나 있는 시간의 차원을 겹쳐 보임으로써 일상을 위협하고 있는 불가해한 힘을 드러내는 데 재능’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김하서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불안으로 인해 질주한다. 그러면서 타인의 결핍에 귀 기울인다.
<줄리의 심장>
아내는 줄리가 죽기 몇 달 전부터 새로운 취미에 빠져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아내가 베개로 아이의 얼굴을 짓누른 이후, 아내 안에서 무언가가 붕괴되기 시작했지만,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신경이 쇠약한 아내의 눈을 피해 7년 전부터 키운 강아지 ‘줄리’의 시체를 냉동고에 넣어둔 후, 아내의 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감지한 ‘나’는 아내의 뒤를 밟는다.
우스꽝스럽지가 않았다. 오히려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구구단은 경건한 라틴어 기도문을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구구단을 외우는 남자였다. 삶의 어떤 시련이 남자가 지하철을 걸으며 2단만 외우게 한 걸까. 타인에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금테 안경 너머에 있는 남자의 삶의 역사에 호기심이 생겼다. 언젠가 햄버그스테이크를 까맣게 태우던 날, 아내가 정신없이 읽던 책 ‘타인의 삶’이 떠오르며 남자의 메마른 목소리 너머의 간절함에 홀려 저기 있는 거라는 의혹이 들었다. (<줄리의 심장> 중에서)
1975년생으로 단국대학교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영국 노팅엄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비평을 공부했다. 「앨리스를 아시나요」로 2010년 제2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후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2년 『레몽뚜 장의 상상 발전소』를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