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의 늙은 은행나무 밑에 오래된 여인이 앉아 있다. 본래 경로당 노인들의 공간이었으나 어느새 703호 할머니의 차지가 되었다. 노인들이 그와는 어울리기 싫다며 발길을 뚝 끊었기 때문이다. 회색 크로셰 모자에 엷은 보라색 안경을 쓰고 검정색 니트에 외로운 분위기가 마치 나의 어머니 같아,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넨다. “은행잎이 참 아름답네요.” 그날부터 703호 할머니와의 기묘한 우정이 시작된다. 한편, 어릴 적 아버지가 데려온 난초라는 여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사로잡히는데.
문순태
저자 : 문순태
1941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고, 조선대, 숭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4년 ≪한국문학≫에 「백제의 미소」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작품집으로 「고향으로 가는 바람」, 「징소리」, 「철쭉제」, 「시간의 샘물」, 「된장」 등이 있고, 장편소설 『타오르는 강』, 『그들의 새벽』, 『정읍사』 등을 발표했다. 한국소설문학 작품상, 광주광역시 문화예술상, 이상문학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